[重讀古典] 옛 일본 육군의 통수강령

입력
2019.07.30 04:40
25면
강경화 외교장관이 16일(현지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한반도 안보와 안정에 관한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해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경화 외교장관이 16일(현지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한반도 안보와 안정에 관한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해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역은 경제 전쟁이다. 실제로 무역 갈등은 전쟁이 되기도 한다. ‘상품이 국경을 넘지 못하면 군대가 국경을 넘는다.’는 말이 있다. 요즘 우리는 일본과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하고 있다.

2차 대전에서 패망하고 일본은 그야말로 거덜 났다. 자원조달처인 식민지를 상실했고 해외 일본인이 대거 귀국하여 아사자가 속출했다. 한국전쟁으로 한숨을 돌린 뒤, 나라 전체가 상사(商社)가 되기로 작정했다. 무역밖에 살길이 없었다. 패전 후 일본의 무역 분투기는 ‘불모지대’라는 유명한 소설에 잘 나와 있다. 우리도 한때 ‘상사맨’이 최고 엘리트로 선망 받았다. 역시 무역밖에 살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일본은 병법을 경영학에 도입한다. 군대는 회사, 전장은 시장, 승전은 이익으로 치환된다. 전쟁과 경영의 목적은 유사한 점이 있다. 이익의 확보와 우세 유지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책 곳곳에는 일본식 병법이 스며들어 있다고 본다.

일본의 병학은 손자병법을 기초로 한다. 일본에 최초로 중국 병법서를 전수한 사람은 백제의 달솔(達率) 목소귀자(木素貴子), 곡나진수(谷那晉首) 등으로 AD663년 이후로 추정한다. 그 후 오랜 내전에서 얻은 스스로의 경험으로 병법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지속된다. 근세에 오면 메이지 시대에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1832)’을 수입하여 병학을 현대화하였다. 그런 시도의 일환으로 서양의 전쟁사와 제1차 대전, 그리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경험을 더하여 새로운 형태의 병법서를 편찬하기 시작한다. 그중 1928년에 나온 ‘통수강령(統帥綱領)’은 고전으로 손꼽히는 책이다.

‘통수강령’은 구 일본 육군 참모본부와 육군대학의 브레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다. 군단급 이상 부대 지휘관과 최고급 참모만이 엄격한 통제 속에 열람하던 대외비의 기밀문건으로 일본제국이 망하고 나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중 몇 구절을 옮겨 소개해 본다.

우선, 일본이 직면한 시대에 부응하는 전략을 추구했다. “작전지휘의 취지는, 공세로써 신속하게 적군의 전투력을 격멸하는 것이다.” “추종을 불허하는 창의와 기도(企圖)로 적을 제압해야 한다. 단지 용병의 범위에서만 이것을 추구하지 않고 과학의 영역에서도 적을 제압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서양의 전쟁사를 가지고 지휘관의 역할을 짚어내기도 한다. “군의 의지는 장수의 의지이며, 군의 승패는 주로 장수의 의지에 달려있다. 고올을 정복한 것은 로마인이 아니라 시저였다. 무적의 로마를 전율케 한 것은 카르타고군이 아니라 한니발이었다. 멀리 인도까지 원정한 것은 마케도니아군이 아니라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세 배의 우세를 자랑하던 유럽 연합군에게 7년간이나 대항하여 국가를 지킨 것은 프로이센군이 아니라 바로 프리드리히 대왕이었다.”

선제권을 강조하는 내용도 있다. “적보다 앞서 자주적으로 나의 의사를 결정하고, 조속히 방침을 확립하는 것이 선제권을 장악하여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작전 지휘를 하기 위한 첫째 요건이다. 특히 강자의 전법을 채택한 지휘관은 주요 작전 방향의 결정은 물론, 결전 장소, 결전 시기 등도 자주적으로 결정한다. 상황의 추이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법칙을 적에게 강요해야 한다. 이는 병력을 경제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다.”

위는 손자병법을 응용한 것이 분명하다. 손자가 말했다. “무릇 전쟁터에 먼저 자리를 잡고 적을 기다리는 군대는 편안하고, 뒤늦게 전쟁터에 도착하여 서둘러 싸우는 자는 피곤하다.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적을 나의 의도대로 이끌 뿐 적에게 끌려가지 않는다.”

문득 일본이 앞으로 취할 행보가 궁금해져서 서가 구석에 꽂아 두었던 ‘통수강령’을 들척이게 되었다. 정신승리법에 도취하여 타국을 오랑캐 취급하다가 자멸한 청나라와 조선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상대를 연구하는 것 밖에 길이 없다. 우리는 스스로의 지정학적 위치를 얼마나 절감하고 지피지기(知彼知己)에 공을 들였는가.

손자가 말하길, “적의 실력을 알고 자신의 실력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적의 실력은 모르고 자신의 실력만을 알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적의 실력도 모르거니와 자신의 실력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위태롭다. 현명한 임금과 훌륭한 장수가 싸우기만 하면 승리하고 탁월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까닭은 사전에 적의 상황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의 실정을 아는 자에게 정보를 얻어야 한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百戰不殆)! 중국, 러시아 그리고 미국에 대한 전략도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전문성과 실무 능력을 갖춘 인사가 외교 전쟁에 나서야 할 때다. “국제관계를 개인 간의 교제와 대비하는 것은 공상이다. 영국에게 영원한 우방도 없으며 또한 영원한 적도 없다. 다만 영원한 국가이익이 있을 뿐이다.” 파머스턴 영국총리가 했던 말이다. 나라의 존엄과 이익을 지킬 수 있는 전략가의 출현을 고대한다.

박성진 서울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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