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조국의 ‘애국’과 ‘이적’

입력
2019.07.21 18:00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연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대일 여론전 선봉에 나서고 있다. 류효진 기자, 페이스북 캡처

정부ㆍ여당이 일본의 ‘경제보복’을 ‘경제침략’으로 바꿔 부를 즈음부터 타협을 통한 사태 해결보다 일전불사의 ‘주전론(主戰論)’이 힘을 얻는 양상이다. 물론 처음부터 대뜸 싸우자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지난 1일 일본의 무역규제 강화 조치가 발표됐을 때만 해도 정부는 일본의 조치를 비판하되, 외교적 해결이 우선이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 뒤 무역 실무회의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일제 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에 대한 추가 절충을 시사했음에도 일본의 답이 없자, 당장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탓이 크다.

□ 전운이 고조되면 사기를 북돋기 위한 독전(督戰)의 목소리도 거칠어지기 마련이다. 최근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전쟁터의 독전관이라도 된 듯이 연일 SNS에 올리고 있는 강경 메시지들이 화제다. 조 수석은 지난 13일 동학농민전쟁을 소재로 한 TV드라마 ‘녹두꽃’에 사용된 80년대 운동권 가요 ‘죽창가’를 페이스북에 올려 일본을 겨냥하기 시작했다. 21일에는 “일본의 국력은 분명 한국 국력보다 위”라면서도 “지레 겁먹고 쫄지 말자”고 사투리까지 곁들인 ‘야성적’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 조 수석의 목소리가 거칠다는 건 잡배들 싸움판 냄새나는 사투리 때문만은 아니다. 입장과 처지가 절박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상황 인식과 논리에 무리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조 수석이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올린 ‘애국론’만 해도 그렇다. 그는 현 상황을 ‘경제전쟁’으로 규정한 후,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닌, ‘애국이냐 이적이냐’라고 했다. 또 다른 SNS 메시지에서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부응하는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은 친일파”라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 하지만 정부의 핵심 공인으로서 현 상황을 전쟁으로 규정하고, 일본을 적으로 칭한 건 아무리 SNS라고는 해도, 매우 신중치 못한 행위다. 애국이니 이적이니 하는 얘기도 그렇다. 무슨 전시동원체제도 아닌 터에 애국과 이적을 양단하는 것부터가 유치하고 뜬금없다. 언론의 정부 비판이 야속해도, 일본이 밉다고 우리의 허물까지 덮어 둬야 한다는 식도 옳지 않다. 국제정치는 결코 소아적 법리나 감정만으로는 풀 수 없다. 격앙된 웅변보다, 깊은 지혜와 통찰로 일본을 달래며 국민을 안심시키는 모습을 보고 싶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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