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진 칼럼] 이 뼈저림, 잊지 말자

입력
2019.07.11 18:10
수정
2019.07.11 18:32
30면

한국산업 약점 치고들어온 아베 정권

새삼 취약점 절감하게 된 건 되레 기회

이념 정파 떠나 일본 넘기에 합심을

서울 서초구에 있는 삼성전자 홍보관 삼성딜라이트에 전시된 삼성전자 반도체. 배우한 기자
서울 서초구에 있는 삼성전자 홍보관 삼성딜라이트에 전시된 삼성전자 반도체. 배우한 기자

아베 신조 총리가 진두지휘하는 일본의 경제 보복에도 우리 국민들은 비교적 차분하다. 대규모 반일 시위, 욱일기(旭日旗) 화형식 같은 극단적 행위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일본 제품 판매 중단과 불매, 일본관광 취소 움직임들만 조용하고도 묵직하게 전개될 뿐이다. 근거 없는 선동으로 반한 감정을 부추기는 아베 정권의 졸렬함과 대비되는, 의연하고 성숙한 모습이다.

하지만 자제 분위기가 지속될지는 불투명하다. 독도영유권, 역사왜곡 관련 망언이나 망발은 민족감정을 쉬이 끓게 하지만 경제ᆞ통상 문제는 다르다. 수출 규제 보복의 특성상 피해 발생까지는 시차가 있는 만큼 이 차분함은 일시적일 수 있다. 대기업들의 생산ᆞ매출이 급감하고 그 여파가 협력업체로 번져 위기를 체감하게 되면 일본을 향한 분노는 비등점을 넘을지 모른다.

일본의 보복 경고에 안이하게 대처한 정부를 향해 거센 비난이 분출하지 않는 것도 특이하다. 정부 대처에 잘못이 없다거나, 정부에 할 말이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닐 것이다. 다만 잘잘못은 나중에 가리고 지금은 정부에 힘을 실어야 할 때라는 인식이 우선한 것 아닐까 싶다.

그러나 겉과 달리 속은 타들어간다. 분노와 낭패가 교차하고, 믿고 싶은 마음과 의문ᆞ의심이 부딪친다. 보복의 배경과 아베 정권의 궁극적 노림수를 놓고 강제징용 배상 문제부터 한일관계 대전환까지 다양한 분석이 나오지만 정부는 ‘정치적 목적’ 한마디다. 정부는 비책이 있는 듯 분위기를 잡지만 기실 뾰족수는 없다. 국제무대 외교전이 언제 결실을 거둘지도 미지수다. 일본이 요구하는 중재위 구성 등에 정부의 불수용 입장은 단호하지만 국민들은 그 이유를 잘 모른다. 미국이 개입할지 수수방관할지, 미일 사이에 경제 보복 밀약이 있는지, 그러면 대미 외교는 실효적인지 의문은 꼬리를 문다. 답답증만 커진다.

그렇다고 유의미한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아베 총리를 정점으로 한 일본 우익 정권의 민낯을 국민 모두 직시하게 됐다. 눈앞의 참의원 선거 승리를 통해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속셈을 파악했다. 아베 정권이 지향하는 자위대 재무장과 군국주의의 부활, 그것이 동북아와 국제 질서에 끼칠 해악도 느끼게 됐다. 군사대국화를 위해 명분도 논리도 가차없이 팽개치고 극우매체를 통한 혹세무민으로 일본 국민들의 눈과 귀를 흐리는 우익 정권의 폐해도 목도했다. 당연히 묵직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인다. 저 득의양양한 일본 우익에 우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철저히 국익 중심인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도 새삼 절감했다. 그토록 동맹 정신을 강조해온 미국은 일본의 억지가 열흘 넘게 이어지는데도 침묵 중이다. 세계 패권을 다투는 중국과 핵무기로 위협하는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동맹이 필요하다면 적극 중재에 나설 법한데도 이번 사태의 이해득실만 따지고 있다. 영원불변의 동맹은 허울 좋은 수사(修辭)일 수 있음을 모두가 알게 됐을 것이다. 그것도 작지 않은 소득이다. 저런 미국과 일본의 유착에 대한 대응책은 무엇인가.

뼈아픈 것은 첨단 소재ᆞ장비의 심각한 대일 의존도에 대한 새삼스런 자각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 선진국 도약은커녕 미래 생존을 위협받게 될 것이라는 걸 절감했다. 고통스럽다. 글로벌 톱이라 자부해 온 삼성전자의 총수가 허겁지겁 일본으로 향하는 모습만큼 위기를 체감케 한 장면도 없다. 우리가 고작 이 정도인가, 그동안 무얼 했나, 일본은 ‘넘사벽’인가, 낭패가 깊어진다. 하지만 민관이 첨단 소재ᆞ부품의 중요성과 국내 산업 체계의 문제점을 알게 된 것은 쓴 약이다.

남은 건 절치부심(切齒腐心)이다. 우리 정부와 국민을 농락하는 아베 정권의 졸렬함과 야비함에는 조용히 분노하되 그 에너지를 내부 역량 축적에 쏟아야 한다. 이념과 정파를 떠나 구호가 아닌 실질적 극일(克日)을 도모하자. 문제도, 해결 방법도 안다면 남은 건 실행 뿐이다. 우리에겐 그럴 만한 능력과 경험이 있다. 그건 자부할 만하지 않은가.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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