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대 소재ㆍ부품 핵심기술, 일본 102개 vs 한국 0개

입력
2019.07.03 04:40

한국은 완성품 제작에 치중… 원천기술 脫일본 시급

일본 경제산업성. 뉴시스

일본 정부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인 소재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며 경제보복 조치를 단행하자, 대일 경제 의존도를 서둘러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우리 정부와 재계가 일본 중간재를 수입해 완성품을 만들어 이익을 보는 재미에 빠져 산업구조를 개혁하는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지만 선진국이 수십 년이 걸려 확보한 원천기술을 우리가 단기간에 모두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그들의 기술을 활용해 경쟁력 있는 완성품을 만들어 파는 게 한국의 현실적인 ‘선택지‘였다는 반론 역시 나오고 있다.

2일 재계에 따르면 우리 경제의 일본 의존도에 대한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부각 된 것은 1990년대였다. 1990년 당시 한국 정부는 일본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가 당시 기준으로 역대 사상 최고치인 59억달러 기록하자 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1992년에는 무역역조 개선을 위해 업종별 민간발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은 부품과 소재에 대한 국산화 전략을 추진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적자폭이 줄어들지 않자 약 10년 뒤인 2001년에는 ‘부품소재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부품 소재 전문 기업 육성에도 나선다. 그러나 대일본 무역역조는 2010년 361억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소재 국산화 전략을 시작했던 1990년에 비해 6배 이상 늘어났다.

익명을 요구한 전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소재와 부품 국산화 노력은 이미 30년 전에 시작됐지만 현재 대일본 적자폭이 말해 주듯 그 효과는 거의 전무했다"며 "일본의 중간재를 수입해 완성품을 만들어 파는 게 우리만의 독특한 경쟁력이 된 상황에서 돈과 시간을 들여 원천기술을 확보하려고 나서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게 원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술 개발에 소홀했다고 기업들만 탓하기는 어렵다. 어렵사리 일본 의존도를 낮추는 데 성공한 경우도 없지 않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일본이 독점하고 있던 하이브리드 자동차 관련 원천기술을 국산화했다. 1985년부터 연구가 본격화한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1997년 일본 도요타가 ‘프리우스’를 양산하며 상용화가 시작됐다. 현대기아차는 도요타가 독점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특허(직∙병렬식)를 피하기 위해 독자 시스템(병렬형)을 개발했고, 이를 2011년 중형 세단 ‘쏘나타’와 ‘K5’에 적용했다. 현대기아차의 독자 시스템은 일본식에 비해 구조가 간단하고 부품 수도 적어 기존 내연기관 구조를 토대로 자동차를 쉽게 하이브리드화할 수 있고, 비용 상승 요인을 줄이는 데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 주력산업인 조선업 기술도 국산화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예를 들어 조선업 현장에서 선박 후판은 국산을 80% 이상 사용하고 나머지 20%는 일본과 중국산을 쓴다. 만약 일본과의 통상 마찰이 생기면 국산이나 중국산 비중을 늘리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철강 분야 원천기술도 거의 국산화가 완료돼 통상 마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산업 전체로 보면 원천기술이나 핵심소재 국산화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화학과 금속, 세라믹 등 ‘200대 소재ㆍ부품 기술분야’에서 미국은 211개, 일본은 102개, EU는 68개의 최고 기술을 보유한 반면 한국은 단 1개도 보유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311개 소재∙부품 분야로 범위를 넓혀도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문제는 원천기술을 많이 보유한 미국과 일본 등이 자국 이익에 따라 보유한 기술력을 언제든 경제보복의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최근 증명됐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이들의 중간재를 활용해 경쟁력 있는 완제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해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조치를 서둘러 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양종석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오래 전부터 우리 소재∙부품 분야는 원천기술 확보와 장기 투자를 외면한 채 외국에서 싸게 들여와 공급하는 구조를 지속해왔다”며 “단기 성과주의를 벗어나 장기 계획을 세워 연구개발로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단기적으로는 수입선 다변화로 협상력을 높여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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