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 칼럼] 6월 30일은 세계 소행성의 날

입력
2019.06.26 04:40
29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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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쪽 하늘을 수직으로 낙하하는 파란 불빛이 보였다. 이윽고 하늘이 둘로 갈라지면서 거대한 검은 구름이 피어올랐고 잠시 후 천지를 진동시키는 큰 소리로 인해 모두들 심판의 날이 온 것으로 생각해 저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이 목격담을 듣고 순간 6,600만 년 전 지름 10㎢짜리 거대한 운석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충돌하는 장면을 전하는 티라노사우루스나 트리케라톱스를 상상했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면 운석이 지구에 충돌하기 전에 공중에서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6,600만 년 전 공룡이 아니라 최근 사람이 목격한 장면이다.

1908년 6월 30일 현지 시간 오전 7시 17분, 시베리아 퉁구스카 강 유역의 숲에서 운석이 공중에서 폭발한 사건으로 시베리아 중앙에 있는 작은 마을 사람들의 목격담이다. 커다란 불덩어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날아오면서 폭발했다고 한다. 불덩어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혜성, 소행성, 유성, 별똥별, 운석….

우선 혜성은 확실히 아니다. 혜성은 긴 타원궤도를 그리며 태양 주변을 공전한다. 혜성은 지구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천체다. 또 소행성은 주로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태양궤도를 선회하는데, 가끔 지구 궤도 안으로 진입하기도 한다. 태양계에는 수억 개 있다. 혜성이나 소행성의 부스러기가 지구로 돌진하는 것을 유성이라고 한다. 모래알만한 것에서부터 수백 미터까지 그 크기는 다양한데, 지표면 90㎞ 상공에서부터 불에 타기 시작한다. 별똥별이 바로 유성이다. 유성 가운데 일부는 모두 타지 않고 지표면에 도달하기도 하는데 그걸 운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1908년 퉁구스카 공중에서 폭발한 천체의 정체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소행성이었다. 작은 소행성이었든지 아니면 소행성의 부스러기였다. 이게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 다가오다가 지구 대기에 의해 불에 타기 시작했다. 유성, 즉 별똥별이 된 것이다. 그런데 큰 덩어리는 지표면까지 도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폭발 잔해는 작은 운석으로 지표면에서 운명을 마무리했다.

퉁구스카 유역의 숲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전 세계 사람들이 알아챈 까닭은 폭발의 규모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450㎞ 떨어진 곳에서 달리던 열차가 전복됐다. 수백㎞ 바깥에서도 검은 구름이 보였다. 2,150㎢에 걸쳐서 약 8,000만 그루의 나무가 쓰러졌다. 15㎞ 떨어진 곳에 방목된 순록 1,500마리가 죽었다. 1,500㎞ 떨어진 마을의 집 유리창이 깨졌다. 당시 한밤중이던 런던과 스톡홀름은 신문 글씨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밝아졌다. (섬광 때문이 아니라 낙진에 반사된 햇빛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이런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건에 정작 러시아 정부는 관심이 없었다. 아니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차르 니콜라이 2세는 무능했으며, 라스푸틴을 비롯한 간신배들의 국정농단으로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게다가 러일전쟁에서 패한 지 채 3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러시아가 망하고 소련이 세워진 다음에야 과학조사단이 꾸려졌다. 13년이나 지난 1921년의 일이었다. 1929년에는 유성이 대기권을 통과하던 중에 용해되었다가 공중에서 폭발하여 쪼개진 작은 조각이 지구에 충돌한 후 다시 굳어서 작은 공 모양이 된 운석이 발견되었다.

그 후 과학자들은 1908년 6월 30일의 사건을 재구성했다. 지름 80m의 비교적 큰 천체가 시속 25~40㎞의 속도로 대기권에 진입하였다. 퉁구스카 상공 8㎞ 상공에서 폭발하였는데, 이때 폭발 에너지 위력은 히로시마 원자폭탄 1,000개와 맞먹는다.

6,600만 년 전의 소행성 충돌, 1908년의 퉁구스카 유성 폭발 같은 사건이 과연 과거만의 일일까? 만약 퉁구스카 유성 폭발이 대도시 상공에서 일어난다면, 아니 소행성이 충돌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현대 과학은 지구로 날아오는 소행성을 발견하면 그 방향을 바꿀 방책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지구에 위협이 되는 지름 40m급 소행성 100만 개 가운데 단 1퍼센트만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지구에 위협이 되는 소행성을 매년 1,000개씩 찾아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천문연구원의 외계행성탐색시스템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 과학자들은 그 수를 100배는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10년 안에 100만 개를 다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2015년부터 6월 30일을 세계 소행성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중력파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은 킵 쏜 박사, 리처드 도킨스, 생태학자 최재천, 록 밴드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 만화가 윤태호 등이 제안한 날이다. 매년 세계 소행성의 날에 세계 각국에서 소행성에 관한 강연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이번 주말에는 과학관을 한번 찾아보는 게 어떨까? 굳이 과학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도 인류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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