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 ‘여성 안심’ 정책이 놓치고 있는 것

입력
2019.06.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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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골목에 표시돼 있는 '여성안심귀갓길'. 맹하경 기자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골목에 표시돼 있는 '여성안심귀갓길'. 맹하경 기자

지난 5월 28일,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 영상’이 SNS에 공유되면서 여론의 큰 관심을 끌었다. 원룸 복도 CCTV 영상에서 모자를 쓴 한 남성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 여성의 뒤를 따라 들어가려고 시도하다가 현관문이 닫혀 그야말로 간발의 차로 실패했다. 그 후에도 현관문 앞에서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이리저리 시도하는 모습은 섬뜩하고 공포스러웠다. 며칠 뒤에는 같은 관악구의 봉천동에서 여성이 거주하는 반지하 원룸 창문으로 집안을 훔쳐보는 남성이 검거되었다. 두 사건은 ‘여성 1인가구’를 위협하는 범죄로 명명되었고, 언론은 혼자 사는 여성의 불안과 두려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에 서울시는 여성 1인가구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안전장치를 지원하고 안심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SS존'을 시범 지정해 운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건이 벌어졌던 1인가구 밀집지역인 관악구와 양천구를 중심으로 ‘여성안심 홈’ 4종 세트와 여성 1인 점포 비상벨 설치로 혼자 있는 여성들에게 안전장치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번에 서울시가 밝힌 ‘여성안심’ 정책은 새로운 정책은 아니다. 이미 2012년부터 각종 ‘여성안심’ 정책들이 여성가족부와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의 여성대상 범죄 예방을 위한 주요 정책으로 등장했다. 이 정책들은 여성이 혼자 있어 범죄에 취약한 곳들을 보다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제3자인 동행자 내지 감시인력(CCTV와 같은 기계를 포함)을 배치하거나 낯선 남자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별도의 ‘여성안심’ 공간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늦은 밤 혼자 걷는 귀갓길, 어두운 공간이 있는 골목길, 여성 혼자 거주하는 주거지 등 여성대상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공간은 범죄에 취약한 환경으로 진단되어 방법용 CCTV나 비상벨이 설치되고 순찰과 동행서비스가 실시되며 택배기사 등 낯선 사람의 접근은 차단된다.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이후 남녀공용 화장실을 남녀분리 화장실로 변경하도록 하는 정책이나 부산도시철도에서 실시하는 지하철 “여성배려칸”의 운영 역시 분리와 차단을 통한 안전한 공간을 구성하려는 정책이다.

그러나 이미 수년간 실시된 각종 ‘여성안심’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성 1인가구나 홀로 있는 여성에 대한 범죄나 폭력의 두려움은 오히려 더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가지는 범죄에 대한 두려움은 남성의 두려움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나타난다. 2017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결과에 따르면, 1인가구 여성들은 모든 범죄유형에 대해 가장 높은 수준의 범죄피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주거침입을 제외한 개인범죄나 손괴범죄의 피해경험은 남성들에게서 더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여성들이 가지는 높은 수준의 두려움은 ‘여성안심’ 정책으로 대표되는 분리와 차단을 중심으로 한 범죄예방정책으로 오히려 더 강화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정책은 혼자 사는 여성의 주거지나 혼자 있는 여성의 공간이 범죄에 취약하며 안전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여성 1인가구, 여성 1인점포 등 혼자 있는 여성의 공간을 범죄취약지역으로 분류하고 공공장소에서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여 접촉을 차단하거나 제3자(지킴이 혹은 CCTV)가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모든 사람들이 접근 가능한 공적 공간이나 혼자 있는 여성들은 안전하지 않다는 공포심, 낯선 남성에 대한 두려움이다. 페미니스트 지리학 연구자들은 이러한 여성의 범죄피해 두려움이 삶의 모든 단계에서 이동성을 제한하고 사회경제적 활동을 제약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성들에게 공적 공간에서의 취약성과 두려움을 재생산하는 여성대상범죄 예방정책은 결국 공적 공간은 여성의 영역이 아니며 여성이 사적 공간과 남성의 보호에 속해야 한다는 전통적 인식을 강화할 뿐이다.

여성대상범죄는 여성을 대상화하고 비인격화하는, 그래서 손쉽게 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성별위계적인 사회구조와 문화 속에서 발생한다. 이런 인식은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젠더기반폭력(gender based-violence)이라는 개념에 내재되어 있다. 여러 연구결과에서 보여주듯이,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은 실제 강간과 같은 범죄피해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경험하는 언어적인 성희롱이나 낯선 남성의 길거리 괴롭힘, 추근거림, 조롱 등으로 인해 높아진다. 이것은 여성을 대상화하고 사물화하는 남성성이 지배적인 문화일 때에 여성들이 범죄에 취약해지고 일상적인 두려움과 불안을 갖게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성의 범죄피해 두려움을 감소시키고 여성대상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은 분리와 차단을 통해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려는 방식이 아니라 성차별적인 공간을 재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안전한 공공장소를 특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공간을 안전하게 구성하도록 안전정책의 방향을 설정해야 하며, 여성들이 실제 경험하는 일상적이며 사소한 피해들로부터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정책들이 필요하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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