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학 칼럼] 문재인 정부 명운 쥔 ‘경제위기론’

입력
2019.06.03 18:00
수정
2019.06.03 18:04
30면

경제위기 과장된 공격이나 ‘조짐’은 있어

‘경제 성공하고 있다’는 인식 너무 안이

남은 3년 민생경제 살리기에 ‘올인’ 해야

지금 한국경제는 ‘위기’인가?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은 2%대 중반으로 추정된다. 최근 20년 간의 저성장 추세를 감안하면 지극히 정상적인 성장률 경로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보수세력은 ‘경제 폭망’ ‘민생현장이 지옥’이라며 당장 외환위기가 재연될 것처럼 공포감을 부추기고 있다. 사진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달 25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장외집회에서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금 한국경제는 ‘위기’인가?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은 2%대 중반으로 추정된다. 최근 20년 간의 저성장 추세를 감안하면 지극히 정상적인 성장률 경로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보수세력은 ‘경제 폭망’ ‘민생현장이 지옥’이라며 당장 외환위기가 재연될 것처럼 공포감을 부추기고 있다. 사진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달 25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장외집회에서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11년 전 ‘자영업 절대 하지 마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외식업에 도전했다 3년 만에 점포를 정리한 친구의 경험담을 인용했다. 고객들로 늘 붐비는 서울 강남역 부근 가게였는데도 3년 간 수지를 맞춰보니 겨우 인건비 정도 건졌다는 것이다. “직장인이 은퇴 후 자영업에 뛰어드는 건 망하는 지름길이야. 차라리 월수입 200만원을 목표로 대리운전이나 아르바이트 하는 게 나을걸.”

당시에도 서울 시내 음식점 3곳 중 1곳이 문을 닫을 정도로 자영업은 어려웠다. 자영업자 비중이 선진국의 3배에 달할 만큼 포화상태였기 때문이다. 내수시장 규모는 작은데 경쟁자가 많으니 견뎌낼 도리가 없다. 온라인 쇼핑 확산에 따른 소매점 시대의 종말이 겹쳐 자영업 침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최근 2년 간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이 취약한 자영업에 더 큰 부담을 준 게 사실이지만, 최저임금을 자영업 몰락의 주범으로 보기 어려운 배경이다.

한국경제의 흐름도 자영업 쇠락과 닮은 꼴이다. 진보 보수를 떠나 최근 20년간 경제성장률은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참여정부(4.48%)→ 이명박 정부(3.20%)→ 박근혜 정부(2.98%)를 거치며 ‘역대 최악의 성장률’을 반복했다. 문재인 정부 2년간 평균 경제성장률은 2.90%. 올해와 내년은 2%대 중반으로 추정된다. 생산가능인구 감소, 제조업 경쟁력 저하라는 구조적 문제를 감안할 때 저성장 추세의 정상적 범주에 속한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일반적 평가다. 미중 무역전쟁 등 어려워진 대외 환경을 감안하면 선방했다고도 볼 수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주장처럼 ‘경제 폭망’ ‘민생현장이 지옥’ 수준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보수세력은 마치 소득주도성장 탓에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경제위기가 닥친 것처럼 공격한다. 참여정부 때도 그랬다. 당시 경제성장률이 이전 정부보다 다소 낮긴 했으나 저성장 추세를 감안하면 그리 나쁜 수준이 아니었다. 수출 3,000억달러,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했고, 외환보유액은 2,400억달러를 넘겨 세계 5위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보수 야당과 언론은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참여정부 5년 내내 경제위기론을 조장했다.

보수정권 9년 동안 잠잠하던 경제위기론이 참여정부 2기인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불거졌다. 진영논리가 개입된 과장된 공격이지만 위기 조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한국경제를 지탱해 온 수출이 흔들리는 게 제일 걱정이다. 기업은 글로벌경기 둔화를 우려하며 투자를 미루고, 국민은 미래 불안 탓에 지갑을 닫고 있다. 지금처럼 성장률 하락이 지속되고 신산업에서 활로를 찾지 못한다면 진짜 위기가 올 수 있다. 국민은 경제낙관론을 펴는 정부보다 ‘한국은 예상보다 첨예한 경기 둔화에 노출돼 있다’는 OECD의 경고를 더 무겁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미래차, 바이오헬스 등 고부가가치 신산업은 장기 성과를 노려야 하는 분야다.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한 혁신성장은 중요하지만, 당장은 자영업 등 민생경제가 더 걱정스럽다. 자영업자가 다소 줄긴 했으나 아직도 전체 취업자의 21%(564만명)나 된다. 자영업이 어려우면 상가 공실이 늘어나고 서민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호남 여론과 수도권 호남향우회 여론이 다르다’는 얘기가 자주 들리는 것도, 수도권에 경기 한파를 실감하는 호남 출신 자영업자가 많기 때문이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보수의 경제위기론은 더 거세질 것이다. 혐오 정치에만 매달리는 한국당에 희망이 안 보이니 ‘경제 폭망론’을 부추기는 게 유일한 대안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왜곡된 주장도 되풀이하면 먹히는 게 현실이다. 구조개혁을 외면하고 4대강 토목공사와 주택경기 부양으로 위기를 부풀려온 보수정권 탓이라고 얘기해 봤자 통하지 않는다. 경제 상황을 적극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내수를 살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위축된 경제 심리를 계속 방치하면 다음 총선과 대선은 여당에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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