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방도가 없다” 금호, 아시아나항공 매각 가닥

입력
2019.04.14 21:39
수정
2019.04.14 21:4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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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아시아나그룹이 채권단의 추가 자금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지난 4일 김포공항 내 아시아나항공 항공권 구입 창구. 연합뉴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채권단의 추가 자금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지난 4일 김포공항 내 아시아나항공 항공권 구입 창구. 연합뉴스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결국 채권단으로부터 추가 자금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금호그룹이 제출한 자구안을 거부하고 실효성 있는 대안 마련을 촉구한 채권단의 압박에 오너인 박삼구 전 회장과 그룹 측이 사실상 백기를 든 것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호그룹은 채권단과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포함한 경영 정상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날 “금호그룹 수정 자구안 내용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시나리오 가운데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무게가 실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인 금호산업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경영 정상화를 위한 자구계획 수정안’을 마련하고 이번주 초 이사회에서 의결할 전망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금호 측이 최대한 서둘러 수정 자구계획을 제출할 예정이며, 공식 제출되면 채권단 회의 등 관련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수정 자구안 신속 마련한 금호 

앞서 금호그룹은 지난 10일 박삼구 전 회장 일가의 금호고속 지분을 담보로 맡기는 조건으로 채권단에 5,000억원을 지원해달라는 내용을 담은 자구계획안을 산업은행에 제출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다음날인 11일 회의를 열고 자구안 수용을 거부했다. 사재 출연 또는 유상증자 등 실질적 방안이 없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미흡하다는 게 이유였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박 전 회장이 물러나고 아들이 경영하겠다는데, 그 두 분이 뭐가 다르냐”며 오너 일가가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에 금호그룹 경영진은 11일 오후 비상경영위원회를 열어 “아시아나항공 매각 외에는 경영을 정상화할 방도가 없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이튿날 산업은행에 이 같은 의견을 전달하며 채권단과 재협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측의 신속한 대응은 자금난이 그만큼 심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시아나항공은 오는 25일 6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를 맞는데 차환 등 채권단의 추가 지원이 없으면 회사채와 연동된 자산유동화증권(ABS)까지 조기 상환돼 유동성 위기에 몰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금호그룹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외엔 자금 마련 방도가 없고 사실상 박 전 회장의 결단만 남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지베구조 그래픽=박구원 기자
금호아시아나그룹 지베구조 그래픽=박구원 기자

 ◇금호그룹 위축은 불가피 

금호산업이 이사회 의결을 거쳐 수정 자구계획을 산업은행에 제출하면, 산업은행은 채권단 회의를 소집해 자구안 수용 여부와 자금 지원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금호산업이 보유 지분을 파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금호산업의 아시아나항공 지분은 33.47%로, 현재 가치로 3,000억원가량이다. 아시아나항공이 매각되면 박 전 회장이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수직계열화해 지배하고 있는 그룹 지배구조도 변경된다. 그룹 측은 매각 대금으로 금호고속, 금호산업 등 남은 계열사들의 경영 정상화를 꾀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룹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아시아나항공의 이탈로 금호그룹은 중견기업 수준으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 지분 공개매각 의사를 밝히면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은 매각 절차를 즉각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과 금호그룹이 이미 매각을 전제로 자금수혈 규모, 매각 방식, 채무의 출자전환 등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금호그룹이 요청한 5,000억원을 출자전환 옵션이 있는 영구채 형태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이 에어부산(보유 지분율 44.2%) 아시아나IDT(76.2%) 아시아나에어포트(100%) 아시아나세이버(80%) 아시아나개발(100%) 에어서울(100%) 등을 계열사로 보유하고 있는 점을 들어 민간에 아시아나항공과 자회사들이 통째로 매각하는 시나리오도 제기된다.

아시아나항공 잠재 인수 후보군으로는 자금력이 충분한 SK그룹, 항공기 엔진 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화그룹, 저가항공사(LCC) 제주항공을 보유한 애경그룹 등이 거론되고 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아시아나항공 예상 매각 절차 그래픽=박구원 기자
아시아나항공 예상 매각 절차 그래픽=박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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