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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만 몰 수 있게… ‘고령자 운전제한’ 검토

입력
2019.03.12 17:59
수정
2019.03.12 19:59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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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건부 운전면허 추진… 저시력 청장년층 야간운전 제한도 검토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한해 동안 고령 운전자가 야기한 교통사고 사망사건은 전체의 22.3%. 65세 이상 고령운전자가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의 9.4%를 차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고령자의 운전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얘기다. 최근 96세 남성이 운전하는 차에 치여 30대 여성이 숨지는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고령 운전자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문제는 현행 제도에선 자격이 없는 부적합 고령 운전자를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올해부터 75세 이상 운전자의 정기 적성검사 주기가 5년에서 3년으로 짧아지긴 했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1시간 가량 인지능력 테스트만 거치면 돼 갱신 과정이 까다롭지 않은 데다 설령 인지능력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도 면허 반납을 요청하는 것 외 고령자 운전을 제한할 방법도 없다.

이에 경찰청이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다. 65세 이상 노인의 면허를 갱신할 때 테스트를 통과하지 않을 경우 ‘현재 살고 있는 지역’ 등 일정 조건 아래서만 운전을 허용하는 제도다. 경찰청은 12일 고령자 교통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신체능력을 고려한 조건부 면허제도 등 근본적인 제도개선’을 대책에 포함시켰다.

경찰은 노인의 이동권까지 감안해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를 조심스럽게 꺼내 든 것으로 알려졌다. 갱신 아니면 취소 두 축으로 운용되는 운전면허 체계에서, 인지능력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고령 운전자의 면허를 즉시 취소한다면 당장 노인 이동권 제한이라는 비판이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노인복지법상 고령자로 분류되는 65세라 해도 신체가 건강한 경우가 많아 이런 연령 기준을 면허 갱신의 엄격한 잣대로 삼기도 힘들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세부 기준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경찰은 조건부 면허 제도에 나이 제한은 두지 않을 방침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인지능력 테스트 결과 도로주행은 어렵지만 살고 있는 동네에서 운전 가능한 고령자가 있다면 별도의 평가를 거쳐 조건부 운전면허를 내줄 수 있다”고 했다. 시력이 나빠서 일반 면허를 따기 어려운 청장년층을 대상으로 주간에만 운전할 수 있는 조건부 면허도 검토 대상이다. 경찰은 연내 연구용역을 거쳐 세부기준을 정하고 조건부 면허제도 도입이 확정되면 별도의 번호판도 제작할 예정이다.

경찰은 이와 함께 고령 운전자가 면허를 자진 반납할 경우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운전자에게 10만원 교통 이용권 등을 지급하는 일부 지자체의 제도를 확대하겠다는 취지다. 교통전문가들 사이에선 매년 과태료 등으로 걷히는 8,000억원을 관련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경찰의 이 같은 대책이 당장 효과를 거둘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우선 조건부 면허 제도나 3자 요청에 따른 수시 적성 검사 제도는 모두 법 개정이 필요해 도입까진 상당한 시간이 불가피하다. 경찰청 관계자는 “노인협회 등 관련기관과 신속한 협의를 통해 최적의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고령 운전자 대책이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미국은 1989년부터 교통부 산하 교통안전국에서 고령운전자의 안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면허 갱신 땐 필기 및 주행시험을 다시 치러 부적합 고령운전자를 철저히 걸러낸다. 영국은 고령운전자에 대한 면허 갱신 요건을 엄격하게 하진 않았지만 다양한 정책 시행으로 1990년부터 2010년까지 고령자 교통사고 사망자가 절반 넘게 줄었다. 일본 역시 고령 운전자 사고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2016년부터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 추진 중이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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