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북’이 오스카 작품상 받을 만한가” 뒷말

입력
2019.02.2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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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린 북'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그린 북'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그린 북’의 오스카 작품상 수상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시상식에 참석한 유명 영화인들이 수상에 불편함을 드러내는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고, 비아냥도 이어지고 있다. ‘그린 북’이 흑백 차별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그린 북’ 수상에 대해 적극 반발하고 나선 이는 스파이크 리 감독이다. 리 감독은 지난 24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1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수상작으로 ‘그린 북’이 호명되자 불쾌함을 표시하며 시상식장을 퇴장하려 출입문 앞까지 갔다가 자리로 되돌아 왔다. 리 감독은 행사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그린 북’의 작품상 수상을 “잘못된 심사”(bad call)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진 자리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이게 여섯 잔째인데, (이렇게 많이 마시는) 이유를 당신들은 알 것”이라고도 했다. 리 감독은 1983년 데뷔 이후 미국의 주요 감독이자 ‘블랙 필름’의 간판으로 평가 받았으나 2016년 공로상 수상을 제외하면 아카데미상 수상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백인 위주 오스카 문화 때문에 박대 받았다는 해석이 나오곤 했다. 최신작인 ‘블랙클랜스맨’이 그의 생애 최초로 올해 아카데미영화상 경쟁부문에 올랐다.

흑인 영웅을 그린 마블 영화 ‘블랙 팬서’의 주인공 채드윅 보스먼이 ‘그린 북’의 작품상 수상 발표 당시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모습도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블랙 팬서’는 마블 영화로는 최초로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는 실패했다.

‘그린 북’은 흑인 인텔리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박사와 그의 차를 운전하게 된 이탈리아계 서민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의 우정을 담고 있다. 셜리 박사와 발레롱가가 1960년대 흑백 차별이 극심한 미 남부 지역 순회 공연을 다니면서 인종간 편견을 극복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로드무비 형식으로 다뤄진다. 흑인 상사와 백인 부하 직원이라는 주종관계부터가 전복적인 내용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발레롱가의 아들인 닉이 각본을 썼다.

‘그린 북’은 인종간 화해, 성소수자 포용 등 정치적으로 올바른 내용을 담고 있으나 스크린 밖에서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었다. 흑백 차별을 다룬 영화이면서도 백인인 발레롱가의 시선 위주로 그려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셜리 박사의 후손이 셜리와 발레롱가가 영화와 달리 오래도록 우정을 나눈 사이가 아니라며 영화 내용의 허위를 주장한 점도 논란을 부채질했다. 닉이 2015년 도널드 트럼프의 무슬림 혐오 발언을 리트윗한 사실이 영화 개봉 후 밝혀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린 북’의 피터 패럴리 감독은 영화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1998) 촬영 당시 주연배우 캐머런 디아즈 앞에서 수시로 성기노출을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비판 받기도 했다. 닉과 패럴리 감독은 자신들의 과거 행동에 대해 사과했으나 영화 내용과 다른 성품을 지녔다는 비판은 가라앉지 않았다.

제목이자 영화의 주요 소재인 ‘그린 북’은 1960년대 흑인이 남부를 여행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식당과 숙소를 안내하는 책자의 명칭이다. 흑인의 안전을 기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나 흑백 차별을 당연한 현실로 인정하는 책이었다. 작품상 수상 결과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린 북’처럼 영화가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SNS에서는 “그린 북은 흑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인종주의 근절에 거의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백인들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린 북이 실제 어떠한 것인지 관심있는 사람들을 위해 링크를 연결한다”(Ava DuVernay) “(전편이 흑백 차별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지 못했으니) ‘그린 북’ 속편은 비고 모텐슨과 마허샬라 알리가 남부를 여행하며 모든 컬러 북(인종차별 책)을 끌어 모아 인피니티 건틀렛(‘어벤져스’ 시리즈 속 우주 최강의 무기)을 완성하는 내용이어야 한다”(Desus Nice) 등 영화 ‘그린 북’의 수상에 대해 비판적인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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