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판결 파장… “동의 없는 성관계는 모두 성범죄” 목소리

입력
2019.02.07 18:11
수정
2019.02.07 22:19
10면
구독

2심, ‘의사에 반하여’ 16차례 언급…”명시적 거절 없어도 죄 성립”

“현행법상 처벌 가능”vs“법체계 구멍 여전”…법조계 의견차 여전

자신의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일 항소심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신의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일 항소심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유죄를 선고한 법원 판결을 두고, 여성계 등에서는 성별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과 불평등을 감지하는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을 정확히 이해한 판결이라는 찬사가 나왔다. 2심은 특히 1심과 달리 ‘위력’을 폭넓게 인정한 것은 물론,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의 위법성까지 분명하게 지적했다. 이를 계기로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만 성폭행(강간)을 인정하는 현행 형법체계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모두 성범죄로 보는 이른바 ‘비동의 간음죄’를 만들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현행법 안에서도 ‘폭행’과 ‘협박’의 해석 범위를 넓힐 수도 있기 때문에 굳이 처벌 범위를 넓히는 것은 과잉 입법이라는 반박도 만만치 않아 향후 논의 방향이 주목된다.

한 두발 더 나간 안희정 항소심 결론

안 전 지사의 판결문을 보면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2부는 16차례에 걸쳐 ‘의사에 반하여’라는 표현을 썼다. 항소심 재판부는 “성관계의 합의 여부에 대해 전혀 심리하지 않았다”는 검찰의 항소이유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안 전 지사와 김지은씨의 성관계가 합의에 의한 것이었는지를 여부를 집중 심리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둘의 성관계에 명시적 합의가 없었다고 판단하면서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거절하지 않았더라도 둘의 관계, 간음(성관계)에 이른 경위 등을 종합해 당시 피해자가 간음에 동의하지 않았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의사에 반한 성관계를 처벌해야 한다는 이른바 ‘노민즈 노(No means No) 룰’ 주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명시적 동의 없는 성관계까지 처벌하자는 이른바 ‘예스 민즈 예스(Yes means Yes) 룰’로 해석될 수 있는 지점이다.

비동의 간음죄는 폭행이나 협박 등 다른 구성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의사에 반하는 모든 성관계를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행법은 △폭행 또는 협박(강간) △위계 또는 위력(피감독자 간음 등)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준강간 등) 등 특정 조건을 갖춘 성관계에 대해서만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의사에 반한 성관계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확산되는 ‘비동의 간음죄’ 여론

여성계는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를 막는 것이 성범죄 관련 법의 목적이라며 비동의 간음죄 신설에 적극적이다. 여성계는 특히 비동의 간음죄가 국제적 추세라는 점을 들고 있다. 실제 미국 뉴욕주와 워싱턴주 형법은 비동의 성관계를 3급 강간죄로 정하고 있으며, 영국은 강제적 성관계를 비동의 간음으로 정의한다. 스페인에서는 18세 여성의 집단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명시적 동의 없는 성관계를 모두 성폭행으로 처벌하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법의 공백에 따라 보호를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17 상담통계 및 상담동향 분석에 따르면 ‘단순히 울면서 성관계를 거부하거나 거절 의사만을 표시하여 강간죄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사례’는 전체의 43.5%(54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국회에는 △강간죄의 ‘폭행과 협박’을 ‘의사에 반하여’로 수정하고 폭행과 협박에 대해 가중처벌 조항을 넣는 안 △비동의 간음ㆍ추행죄를 별도로 신설하는 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안 전 지사 사건을 계기로 현행 강간죄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진 만큼, 국회 차원의 형법 개정 논의도 거세질 전망이다.

“성급한 형법 개정은 과잉처벌” 반론도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입법이나 법개정이 아닌 판례 변경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수도권 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형법은 구성원 대부분이 인정할 수 있는 죄에 대한 처벌을 국가 권력으로 강제하는 것”이라며 “죄가 되는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상황에서 입법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새로운 규범으로 도리어 과잉처벌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안 전 지사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야말로 비동의 간음죄 신설 논리의 여지를 없앴다는 분석도 나온다. 형법학자인 조국 민정수석은 최근 저서에서 폭행, 협박, 위력 등이 없는 성행위까지 처벌하는 것은 “여성의 의지와 능력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비동의 간음죄 영역은 민사에 맡기고, 형사절차법을 보완해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