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안 가는 게 속 편하죠”… 명절 세태 변화 가속화

입력
2019.02.04 16:01

 명졀 연휴 해외여행 이용객 역대 최다, 호텔은 ‘북적’ 

설 연휴 이틀째인 3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이 이용객들로 붐비고 있다. 뉴스1
설 연휴 이틀째인 3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이 이용객들로 붐비고 있다. 뉴스1

#서울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김진아(34)씨는 설 연휴 친구들을 만나 밥을 먹고 영화를 보면서 보내고 있다. 김씨가 명절 연휴에 고향인 천안에 내려가지 않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씨 사연은 이렇다. 김씨 부모는 딸의 생각과 결정을 존중하는 편이다. 김씨의 천안행을 가로막은 건 큰아버지 부부. 이들은 조카가 내려오면 “언제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할 거냐”며 부모보다 더 극성이다. 한두 해는 참았지만 매년 이러니 인내의 임계치를 넘어버렸다. 김씨는 “올해는 마지막까지 고민하느라 체계적인 연휴 계획을 못 세웠지만 내년에는 해외여행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중견 건설회사에 다니는 현상훈(48)씨는 올해 설 연휴도 여느 명절 때처럼 서울 시내 호텔에서 수영과 독서를 즐기면서 호젓하게 보내고 있다. 예전에는 동남아권 국가로 여행을 갔지만 5년 전부터는 호텔이 명절 연휴를 즐기는 성소가 되고 있다. 현씨는 “40대에 들어서니 결혼하라는 가공할 압박에 명절에는 가족 모임에 일절 나가지 않고 있다”며 “명절이 호텔 비수기라 비싸지 않은 데다 편안하게 심신을 재충천할 수 있어 너무 편하다”고 설명했다.

명절 세태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1인 가구 증가, 비혼과 만혼 등으로 명절을 쇠려고 가족의 모든 구성원들이 고향으로 모이는 경우는 갈수록 줄어든다. 대신 해외나 호텔에서 연휴를 즐기는 호캉스족(族)은 증가 추세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올해 설 연휴기간(1~7일)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하는 여객은 일 평균 20만3,719명에 달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전년도 설 연휴 기간 일 평균 여객수(19만377명) 보다 7% 가량 많은 수치다. 특히 3일의 경우 예측치가 21만3,032명(출발 11만1,138명, 도착 10만1,894명)에 달해 인천공항 개항 이후 역대 명절 연휴 중 일일 최다여객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호캉스족 증가도 마찬가지. 서울 유명 호텔은 평소 20%를 약간 상회하는 한국인 투숙 고객이 명절 기간이 되면 3배 이상 늘어난다는 게 업계 얘기다. 호캉스족이 호텔의 각종 편의시설을 집중적으로 누리는 기간이다. 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20, 30대의 국내 호텔 숙박권 구매량은 2017년보다 75% 증가하는 등 젊은층들이 주로 애용한다.

취업ㆍ결혼을 입에 달고 사는 고향 어르신들의 대체적 생각은 이런 현실보다 뒤처져 있다. 이 괴리로 인한 고통은 대부분 미혼 남녀의 몫이다. 오죽하면 한 포털의 ‘영어 번역 문장’ 코너에서 ‘Please, stop talking about employment, dating, and marriage’(취업ㆍ애인ㆍ결혼 이야기는 제발 그만해 주세요)라는 문장이 소개됐을까.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라는 관습적 표현이 소멸 중이다. “부모의 관습적 시각으로 자식 세대의 행동 양식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세평을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되는 시대다.

배성재 기자 pass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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