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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마가 된 문 정부의 약속들] '왜 1만원인지’ 검증 없이 공약… 자영업자 비명에 “최저임금 속도조절”

입력
2018.12.26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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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ㆍ끝> 최저임금 1만원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 강행에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 속출 

 정부 “최임위 이원화”… 최저임금 결정 기준 마련이 더 시급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8월 9일 오전 서울 세종로사거리에서 '소상공인 119민원센터' 개소식 기자회견을 갖은 후 유인물을 보여주고 있다. 연합회는 2019년도 최저임금( 8,350원) 고시에 반발하여 민원센터를 만들었으며 29일 광화문광장에서 궐기대회를 열 예정이다. 김주성 기자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8월 9일 오전 서울 세종로사거리에서 '소상공인 119민원센터' 개소식 기자회견을 갖은 후 유인물을 보여주고 있다. 연합회는 2019년도 최저임금( 8,350원) 고시에 반발하여 민원센터를 만들었으며 29일 광화문광장에서 궐기대회를 열 예정이다. 김주성 기자

“최저임금(시급)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인상하여 노동자가 살아갈 수 있는 최소 기반을 만들겠습니다.”(2017년 5월1일 대선 후보 시절 본인 페이스북)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으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습니다. 결과적으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 드립니다.”(2018년 7월16일 수석ㆍ보좌관 회의)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릅니까? 솔직하게(말해 주세요)”(2018년 12월11일 고용노동부 최저임금 담당 공무원들과 만나)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최근까지 최저임금에 대해 한 이런 발언들은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의 부침(浮沈) 과정을 잘 보여준다. 지난해 5월 대선 당시 거의 모든 유력 후보가 내걸 정도로 지상 과제였던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은 지금 정부의 발목을 잡는 대표 정책이 됐다. 최저임금 인상을 골자로 하는 소득주도성장은 J노믹스의 핵심이었지만 이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최저임금 정책이 격차 해소라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경착륙하게 된 것은 경기 둔화의 영향도 없지 않지만, 정책 자체와 그 이행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우선 왜 ‘1만원’인지부터가 불분명했다. 대선 공약집이나 국정 과제를 봐도 그 이유가 나와있지 않고 당국자들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사실 최저임금 1만원은 알바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2013년부터 내세운 것으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필요하다’는 뜻을 담은 정치적 구호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이는 문 대통령 공약으로 이어졌다. 적절한지 검증하는 과정조차 없이 무조건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된 것이다.

‘1만원’이 부각되면서 자영업자들이 과연 대폭 인상된 최저임금을 줄 능력이 있는지,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지 않을지 등 중요한 질문들은 부차적인 과제로 밀렸다.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수준”(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이라는 평가를 받는 2년 연속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2018년분 16.4%, 2019년분 10.9% 인상)을 감행하면서도 정부가 일자리안정자금 도입 이외에는 이렇다 할 보완책을 내놓지 않은 것도 이런 맹목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지난해 최저임금을 16.4% 올렸을 때 생각보다 부작용이 크다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지만 이런 부작용을 완화시킬 만큼 충분히 강한 확장적 재정 정책을 쓰지 않았고 오히려 막대한 초과 세수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연도별 최저임금_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연도별 최저임금_김경진기자

통계를 입맛에 맞게 왜곡하려 한다는 논란까지 빚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도 하위 20% 저소득층 소득이 오히려 뒷걸음질쳤다는 통계가 나오고, 월별 취업자수 증가폭이 지난 7월 5,000명, 8월 3,000명으로 급락했지만, 정부는 “고용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고 거듭 강변했다. 그러나 최저임금 정책의 부작용 정황들이 속출하자 결국 영향을 제한적으로나마 인정하며 뒤늦게 속도 조절 카드를 꺼내 들었다.

최저임금 산정기준에 법정 주휴시간을 포함하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두고 재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것도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에 따른 후폭풍이다. 제도면에서 지금과 달라지는 것은 없는데, 마치 기업들의 부담이 갑자기 커지는 것처럼 아우성치는 것은 가파른 최임 인상에 따른 부담을 다른 쪽(주휴수당)에서 줄여보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셈이다.

뒤늦게 정부가 꺼내든 대안은 최저임금의 결정 방식 개편이다. 현재 한 몸인 최저임금위원회를 ‘최저임금 구간설정위원회’와 ‘최저임금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한다는 아이디어인데, 먼저 전문가인 공익위원들로만 꾸려진 구간설정위가 최저임금 상ㆍ하한선을 결정하면, 노ㆍ사ㆍ공익위원으로 구성된 결정위가 이 범위 내에서 최저임금을 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최저임금 1만원’의 족쇄는 여전히 단단하다. 대통령이 사과까지 했지만, 일방적인 후퇴를 노동계가 그대로 받아들일 리는 만무하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의 후퇴를 위한 명분 만들기가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권순원 교수는 “지금과 같은 노ㆍ사ㆍ공익위원 교섭 방식의 틀을 그대로 둔 채로는 이원화를 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정 방식보다도 사회 구성원들이 수긍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시장 수용성, 지불여력, 경제파급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되도록 하겠다”(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선언적 수준의 발언에 그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기준 마련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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