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정의 독사만필(讀史漫筆)] 평라선(平羅線)

입력
2018.12.06 04:40
29면

남북은 11월 30일~12월 5일에 개성역-신의주역 약 400㎞, 12월 8일~12월 17일에 금강산역-두만강역 약 800㎞ 철도노선을 함께 점검한다. 남한은 전자를 경의선, 후자를 동해선으로 부른다. 북한에서는 전자에 평의선(평양역-신의주역) 평부선(평양역-부산역), 후자에 금강산청년선(금강산역-안변역) 강원선(평강역-고원역) 평라선(간리역-나진역)의 일부 또는 전부가 포함된다. 따라서 남북이 철도연결사업을 진행하면 곧 호칭통일의 필요를 느낄 것이다. 이 점을 감안하여 우리에게 낯선 평라선을 살펴보자.

평라선은 북한 최장노선으로서(781.1㎞) 수도 평양과 동북지역 최대항구 나진을 잇는데, 기존 평원선(평양-고원) 원라선 일부(고원-청진) 청라선(반죽-나진)을 합쳐서 1976년 탄생했다. 원래 평원선(서포-고원, 212.6㎞, 1926.5~1941.4)은 일제가 부설했는데, 경원선처럼 한반도를 횡단하기 때문에 정치군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했다. 연선에는 무연탄 금 은 동을 비롯한 광산자원과 산림자원이 풍부하여 경제적 가치도 매우 컸다. 원라선은 일제가 부설한 함경선(원산-상삼봉, 666.9㎞, 1914.10~1928.9)이 기본인데, 동북부 해안일대의 수산 산림 광산 수력 등을 개발하는 사명을 띠었다. 또 두만강을 감싸고도는 ‘만철 북선선’과 접속하여 만주 연해주 일본열도를 연결하는 국제간선의 역할도 했다. 청라선(78.3㎞)은 일제가 계획한 것을 북한이 이어받아 1965년에 개통했다. 청라선은 해안선을 따라 청진과 나진을 직접 연결함으로써 두만강까지 북상하여 우회하던 평양-라진 노선을 248.6㎞나 단축했다.

여러 철도를 하나로 합쳐 재편성한 평라선은 북한의 요지를 관통하여 수송량도 제일 많다. 평라선은 동서 물동량의 85~90%를 담당하는데, 휴전선과 병행하는 청년이천선(평산-세포, 140.9㎞, 10~15%)에 비할 바가 아니다. 평라선 각역에서는 수많은 간선과 지선이 분기한다. 간선을 보면, 간리역은 평의선과 맞닿는데, 평양시 평안남북도 황해북도 서해안일대의 화물이 집중하여 전국에서 물동량이 가장 많다. 순천역은 만포선과 연결되는데, 평안남도 개천지구 평안북도 구장지구 자강도일대와 평양시 동해안일대를 왕래하는 화물을 많이 취급한다. 신성천역은 평덕선과 접속하는데, 평덕선 연선의 석탄과 시멘트를 동해안일대로 보내고 수산물 목재 등을 반입한다. 고원역은 강원선과 만나는데, 청년이천선이 운송하는 객화를 취급한다. 길주역은 백두산청년선과 연결되는데, 양강도 일대의 수송을 보장한다. 반죽역은 함북선과 접속하여 함경북도 북부지역의 운수를 담당한다. 평라선은 또 많은 지선을 통해 내륙의 광산 탄광 산림 수력발전소와 연결된다. 중요 지선은 금골선 허천선 덕성선 신흥선 고원탄광선 대건선 은산선 친성탄광선 금야선 고참탄광선 등인데, 대부분 조선총독부나 일본기업이 건설한 산업선이나 전용선의 후신이다.

수많은 간선과 지선을 거느린 평라선은 북한의 정치 군사 경제 요충지를 대부분 포섭한다. 그 연선에는 평양 순천 함흥 단천 김책 청진 등의 대도시와 공업지대가 펼쳐있다. 각 곳의 대규모 공장이나 발전소는 석탄 광석 등의 원료를 사용하여 금속 비료 시멘트 전력 등을 생산하는데, 대부분 평라선을 통해 원료와 제품을 운반한다. 평라선은 중후장대(重厚長大)한 화물을 많이 취급하여 수송밀도가 가장 높다(북한 철도평균의 2.5배). 여객수송도 다른 노선에 비해 많은 편이다. 평라선은 국제수송도 담당하는데, 두만강역에서 러시아, 남양역에서 중국과 연결된다. 주요 수출품은 광석 수산물, 수입품은 비료 금속 등이다.

평라선은 1980년대 전반까지는 그런대로 기능했지만 이후부터는 시설이 낡고 전력이 부족하여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저속운전과 운행중지, 정비불량과 사고빈발의 악순환이 심해졌다. 상황이 얼마나 나쁘면 체면불고하고 남한에 지원을 요청했겠나! 이번 공동조사에서 경의선과 동해선의 실태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부실의 원인을 엄밀하게 규명하기 바란다. 그래야 두 철도를 재생시키는데 적합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고, 또 비용지원 명목으로 뜬금없이 세금폭탄을 맞을지 모르는 국민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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