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 칼럼] 내부고발자 보호법을 완비하자

입력
2018.08.02 14:58

1762년 프랑스의 파리에서는 ‘사회계약론’이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그때 50세이던 장 자크 루소가 저술한 책인데, 뒷날 이 책의 영향으로 세계가 요동치던 불란서 혁명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 당시 동양의 조선에서는 다산 정약용이 태어났다. 반세기의 차이로 루소와 다산이 태어났으나, 루소의 책이 세상을 뒤흔드는 위력을 과시한 반면 정약용은 그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1818년 57세의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48권의 방대한 ‘목민심서’를 탈고했는데, 그 해 독일에서는 칼 마르크스가 태어났다. 1836년에 정약용은 75세로 세상을 떠나고, 그 31년 뒤인 1867년에 50세의 마르크스는 대저 ‘자본론’ 첫 권을 탈고한다.

‘자본론’의 위력이 어떠했는가는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목민심서’는 정약용 사후 100년이 넘은 1938년에 공간(公刊)되었으니, 책의 위력은 비교할 방법도 없다. 태어난 나라의 차이도 있고 사용한 문자의 차이까지 합하여 ‘목민심서’는 너무나 그 위력이 약하기만 했으니, 조선의 불행이자 우리 민족의 불행이었다.

정약용이나 마르크스는 국가와 사회의 부패와 타락에 대해 가장 분노하고 가슴 아파했던 학자였다. 자본주의의 병폐를 치유하려던 ‘자본론’, 썩어 문드러진 세상(腐爛)을 바로잡자는 ‘목민심서’. 완전한 치유책이 되지는 못했지만 ‘자본론’은 세계적인 고전이 됐으나 ‘목민심서’는 우리 국민들도 제대로 읽지 않는 책이 되고 말았다. 이런 불행이 계속되고 있으나 세월은 흘러 ‘목민심서’ 탈고 200주년에,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 금년이다. 한마디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세상은 부패한지 오래이고 썩어 문드러져서 나라는 끝내 망하고 말 것이라고 탄식했던 다산의 뜻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는가. 새 정부가 들어서서 그 동안의 모든 적폐를 청산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는 국민적 의지가 모아지고 있는 때가 지금이 아닌가. 그 동안의 불공정ㆍ불공평ㆍ부정ㆍ부패에서 벗어나 공정하고 청렴한 나라, 바로 ‘공렴(公廉)’의 세상을 만들자던 다산의 ‘목민심서’ 정신을 구현해내야 할 때가 아닌가. “살펴보니 암행어사나 상급자의 패악한 행위에 대하여 목민관은 상부에 보고서를 올려 거리낌 없이 그대로 보고할 수 있는 명률(明律: 명나라 법률)은 얼마나 훌륭한 법인가. 우리나라는 전적으로 체통만을 지키느라 상급자가 터무니없는 불법을 저질러도 목민관은 감히 한마디의 말도 못하니 백성들의 삶이 초췌해지기가 날마다 심해진다( 案 御史所爲及上司所爲弊政 守令能上章極論 大明之法 猗其善矣 我國專視體統 上司所爲 雖橫濫不法 守令不敢一言 民生憔悴 日以益甚矣:禮際)”라고 말하여 명나라에는 내부고발자 보호법이 제대로 정비되어 상급자의 비행을 곧바로 위로 보고할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법이 있지도 않아 백성들만 날마다 삶이 어려워진다고 탄식하고 있었다.

200년 전에 다산은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려면 내부고발자 보호법이 완전무결하게 정비돼, 함께 일하고 같이 나라의 공무를 집행하는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의 잘못을 폭로할 수 있어야만 부패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한 법의 미비로 고발하는 아랫사람들만 턱없는 피해를 보기 때문에 백성들만 살 길이 막막해진다고 여겼었다. 지금은 어떤가. 두 분 전직 대통령이 비리와 부정으로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고, 고관대작들이 부정·비리로 줄줄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부서에서 내부고발자의 폭로가 있었던가. 법의 심판대에 서 있어도 거짓말만 하는 그들에게 내부고발을 요구할 수라도 있겠는가.

공직자들의 부정과 비리는 전혀 근절되지 않고 있다. 내부고발자보호법이 완전무결하게 정비되어 있지 않고서야 비리를 근절할 방법이 없다. 근래 화제가 되고 있는 ‘미투’운동 역시 그런 제도의 불비가 가져온 일임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 그런 법적 장치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불충분한 제도 때문에 내부고발자들만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가. 불행에 빠지고, 불이익을 당하면서 누가 내부문제를 밖으로 고발할 방법이 있겠는가. 고발한 내용이 사실이 아닐 경우야 응분의 불이익을 받아야 하지만, 고발한 내용이 사실로 판명되면 고발자에 대한 포상을 통해 고발을 많이 할수록 대접을 받고 이익을 보장받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왜 고발을 꺼리고 눈을 감겠는가. 나라에도 자신에게도 이로운 제도가 제대로 제정되어 제대로 집행이 가능해야만 부정과 부패는 난무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지혜를 다산은 200년 전에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자유당 12년의 부정과 부패, 군사독재 시절의 그 엄청난 부정과 비리, 언제까지 이런 부패공화국이 계속되어야 하는지 깊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200년을 지낸 오늘이라도 ‘목민심서’의 지혜를 살려내 부패와 비리에서 벗어나는 나라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정부ㆍ국회ㆍ국민 모두가 함께 뜻을 모으고 지혜를 짜내 이제는 정말 다산이 원했던 만큼의 법이 제정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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