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먹방

입력
2018.07.30 18:58
수정
2018.07.31 17:1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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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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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 연구를 보면 인류는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선진국만의 고민이던 비만은 이제 개발도상국에서도 골칫거리다. 폴리네시아, 중동, 북아프리카, 카리브해 연안국까지 비만 인구가 20%를 넘는다. 세계 어린이, 청소년 중에 1억2,000만 명이 비만이다. 가장 비만도가 높은 나라는 부자나라 미국이다. 미 질병통제센터(CDC)는 전체 인구의 70%를 비만 또는 과체중으로 분류했다. 이처럼 ‘비만 지구’에서 한때 유행하던 식량폭동, 대기근 같은 인류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도 사라졌다.

▦ 비만이 개인 문제에서 국가 위협으로 ‘격상’된 건 비교적 최근이다. 빈부격차와 국가안보, 재정, 사회안전의 뒤에 비만이 자리한 때문이다. 문제가 심각한 미국에서는 비만 질병 치료에 매년 1,500억 달러를 쓰는데, 그로 인한 생산성 저하도 수십억 달러에 이른다. 특히 값싼 음식을 먹어야 하는 저소득층에 비만자가 많다. 어린이 비만은 성적, 집단따돌림, 우울증 문제로 이어진다. 입대 희망자의 4분의 1일은 비만으로 탈락하고 현직 소방관 70%가 비만이거나 과체중이다. 비만인 군인과 경찰에게 사회안전을 맡기는 게 꼭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

▦ 지난 24일 9개 정부 부처가 합동으로 국가 비만관리 종합대책을 내놓은 것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런데 대책에 포함된 ‘먹방 규제’가 논란이다.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을 뜻하는 먹방이 시청자의 식욕을 자극, 폭식을 유도하고 비만을 가져온다는 우려일 것이다. 하지만 먹방이 비만을 초래한다는 데에는 논리적 비약이 있다. 식욕까지 정부가 관리하느냐, 그러면 범죄 드라마도 모니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무리가 아니다. 먹방으로 대리만족을 느끼며 다이어트하는 이들도 있다.

▦ 먹방은 유튜브는 물론 지상파와 케이블TV에서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이런 먹방의 부작용이 적지 않다. 실제 TV에서 본 것과 다르다거나, 프로그램 출연자 섭외 과정에서 돈이 오간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하지만 먹방과 비만의 인과관계가 정말 성립한다면, 대중이 좋아하는 먹방을 오히려 활용하는 게 현명하다. 건강한 음식, 살찌지 않는 음식을 다루는 먹방은 어떤 비만 대책보다 효과가 높을 것이다. 먹방 규제는 모든 것을 ‘규제’ 대상으로 보는 공무원의 관성이 살짝 드러난 씁쓸한 사례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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