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의원 ‘외유 출장’ 4년간 127억… 혈세 샌다

입력
2018.08.02 04:40
수정
2018.08.02 09:16
1면

 #1 

 방문 목적과 무관한 일정 대부분 

 열흘 중 8일이 관광인 경우도 

 결과 보고서 심사 받는 곳 전무 

 직원들이 인터넷서 짜깁기하기도 

 #2 

 경기ㆍ서울 5월까지 쓴 출장 비용 

 작년 출장 예산의 87%ㆍ84% 달해 

 임기 만료 앞두고 “최대한 쓰자” 

 #3 

 유럽 농업 견학 6박8일에 

 관련일정 단 2곳, 사진도 안 남겨 

 ‘IT 사업 유치’ 연수 다녀와서는 

 “입국심사 불친절했다” 푸념도 


2016년 1월 전남도의회 의원 15명 등 20명(의회 사무처 직원 5명 포함)은 7박 9일간 스페인과 포르투갈 주요 도시로 연수를 떠났다. 공식 서류에 적시된 연수 목적은 ‘저출산ㆍ고령화ㆍ장애인 복지 제고’. 하지만 이들은 마드리드를 통해 스페인 입국(1월 12일) 사흘 뒤(1월 15일)에서야 남서부 도시 세비야의 한 사회복지기관을 방문해 이곳 직원들과 첫 면담을 가졌다. 마드리드에서 세비야까지는 고속철 아베(AVE)로 2시간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입국 후 이들은 이틀간 세비야와 동떨어진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을 ‘문화탐방’ 목적으로 경유했다. 주말에 ‘전통시장과 수목원 방문’ 일정으로 포르투갈 리스본을 다녀온 이들은 다시 ‘문화탐방’ 명목으로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성당과 몬주익을 감상하는 등 줄곧 연수 목적과 무관한 일정을 진행했다. 귀국 전날(1월 19일)에서야 마드리드의 또 다른 장애인 협력재단을 방문했다. 7박 9일간 주제에 어울린 일정은 단 두 곳. 원래 일정에 있던 바르셀로나 요양시설 방문 내용은 아예 연수 결과 보고서에서 찾아볼 수 없었고, 포르투갈은 관광 일정이 전부였다. 활동 기간(2014년 7월~2018년 6월) 중 가장 많은 의원이 참여한 이 연수에는 농수산위원회, 안전건설소방위원회 등 출장 주제와 무관한 각종 상임위원회 의원들이 대거 포함됐고, 총 8,800만원(동행 직원 포함)의 예산이 소요됐다.

해외 선진 시스템을 배우기 위한 지방의회 광역의원들의 해외 출장이 사실상 ‘공짜 여행’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출장 목적과 동떨어진 온갖 관광 활동을 ‘의원 역량 함량’, ‘문화 탐방’이란 명분으로 합리화하고, 지역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짜깁기식 결과 보고서를 쏟아내는 사이 아까운 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지난 4년간(2014년 7월~2018년 5월말 기준) 전국 17개 시ㆍ도의회 의원 총 789명(2014년 지방선거 당선자)의 국외연수에 들어간 예산을 분석한 결과, 국제교류ㆍ상임위원회 연수ㆍ해외 비교 시찰 등 각종 명목의 해외 출장에 총 127억원(동행 직원 포함)가량의 의회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의 허술한 출장 계획을 걸러 낼 공무국외연수 심사위원회는 사실상 100%의 승인율로 ‘프리패스’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7월 최악의 수해 기간 연수를 떠났던 충북도의회가 최근 개혁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고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만큼 자성의 목소리는 미약한 상황이다. 엉성한 감시망 아래 지방자치제도의 파수꾼이 되어야 할 의원들이 실익이 거의 없는 해외 활동에 혈세를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임기 말 올해 상반기 해외 출장 몰려 

광역의원 해외출장에 투입되는 금액은 상당했다. 지난 4년간 17개 시ㆍ도의회 광역의원 789명이 해외 출장 명목으로 사용한 의회 예산은 127억7,928만원. 순수하게 의원 개인에 쓰인 금액이 88억4,817만원, 이들을 의전하기 위해 동행한 의회 직원에게 들어간 돈은 39억3,110만원이었다. 중소기업벤처부가 지난 3년간 청년상인 육성사업에 투입한 금액(127억8,700만원)과 맞먹는 수치다. 총비용은 광역의원의 국외여비와 동행한 의회 직원의 예산을 합한 것으로 전국 시도의회의장협의회나 시ㆍ도청 주관 등으로 의회 예산이 투입되지 않은 건은 제외됐다. 여기에 시ㆍ도 내 교육청, 시청 등에서 동행한 이들의 비용 역시 제외돼 이를 더할 경우 수십억원 가량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의원 1인당 출장 비용의 지역별 격차도 컸다. 경기가 1,859만원(4년 기준)으로 가장 많았다. 이는 가장 적게 사용한 대전(1,187만원)보다 57%나 많은 금액이다. 대전광역시 의원들은 조사한 17개 시ㆍ도의회 중 유일하게 2014년 동안 해외 출장을 가지 않았다. 경기에 이어 전북이 1,791만원, 대구가 1,725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서울은 1,681만원으로 6위에 올랐다. 인천(1,367만원)과 광주(1,382만원)는 1인당 비용이 대전에 이어 낮게 나타났다. 1인당 비용은 의원 출장에 수행 직원이 따라붙는 점을 감안해 의원과 의회 직원이 쓴 총 비용을 의원 수로 나눠 계산했다.

특히, 경기와 서울은 유독 임기 말인 2018년 상반기에 사용된 예산이 많았다. 경기의 경우 2018년 단, 5개월 동안 의원 해외 출장에 들어간 비용이 총 5억6,028만원으로 전년도(6억4,623만원)의 87%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서울 역시 2018년 지방선거 이전 5개월간 2017년(4억3,290만원)의 84%에 해당하는 3억6,511만원을 사용했다. 전직 경기도의회 관계자는 “관행적으로 임기가 끝나는 해 반기(6개월) 동안 국외연수비로 책정된 1년 예산을 전부 쓰고 있다”라며 “임기가 끝나 도정활동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국외여비를 임기 내 최대한 쓰려고 무리하게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별 총 비용은 의원 수가 가장 많은 경기가 23억8,063만원(128명)으로 가장 많았고 두번째로 많은 서울이 17억8,219만원(106명)을 사용했다. 가장 적게 쓴 곳은 대전(2억6,130만원ㆍ22명)이었다.

일반석(이코노미) 가격의 두 배에 달하는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이용한 의회도 6곳이나 됐다. 서울은 자매도시 교류 방문 23건 중 21건에서 일부 의원들이 비즈니스석을 이용했고 대전 의원들은 베트남,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비교적 근거리 출장에도 비즈니스석을 탔다. 경기는 정기열, 윤화섭 전 의장이 각각 2회, 1회 이용했고 이외 2명이 더 비즈니스석을 탔다. 충남도의회 의장은 항상 비즈니스석을 이용했으며 경남, 부산 광역의원들도 이용 내역이 있었다. 의장 등 광역의원의 경우 조례를 통해 비즈니스석 이용이 가능하지만 대부분 지방의회에서 동행 직원과 동일한 이코노미석을 이용한 점을 감안하면 출장 내용에 비해 지출이 과하다는 해석이다.

 ”입국심사 불친절” 푸념 담은 보고서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고 있지만 광역의원들의 출장과 연수 등 해외 활동은 대부분 시정을 빙자한 관광 일색이었다. 의회 예산이 투입된 17개 시ㆍ도의회 광역의원들의 결과보고서 30여개를 무작위로 골라 살펴봤지만 대부분 공식 기관 방문보다 관광 일정이 많았고, 나름대로 도출한 시사점 역시 하나마나한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 일부 보고서는 시간대별 일정과 내용을 표시하고 면담과 질의 내용을 충실하게 썼지만 상당수는 엉성한 구성에 보고서 요건조차 갖추지 못했다.

지난 1월 경기도의회 소속 22명(기획재정위원회 의원 7명ㆍ직원 15명)이 8박 10일 일정(1월10일~19일)으로 아랍에미리트ㆍ인도ㆍ태국으로 떠난 출장 보고서를 살펴보면 13일부터 18일 일정은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IT관련사업 유치 및 발전사항, MICE 사업 견학’이 목표였지만 첫 이틀간 두바이 관광청과 두바이 실리콘 오아시스 방문만이 유일하게 목적과 부합할 뿐 나머지는 모두 관광이었다. 보고서에 나오지 않는 13일부터 인도 델리로 이동해 타지마할을 보고, 재래시장을 방문했으며 태국에서는 방콕 문화탐방으로 왕궁과 수상가옥 등을 찾은 뒤 19일 귀국했다. 두바이 관광청을 다녀온 시사점에는 경기도와 연계된 내용이 없었고 아쉬운 점으로 “입국심사 때 불친절했다”는 푸념이 담겨 있었다. 한 도의회 관계자는 “의원 중 일부는 자신이 가보지 못한 나라를 정해 놓은 뒤 상임위원회 활동에 맞게 일정을 무리하게 넣는 경우도 많다”라며 “이마저도 여행사에 일정을 맡기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연구활동이 있을 수 없고, 판에 박힌 관광 일정들로 뒤덮이게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보고서 형식이 따로 없어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도 상당했다. 일부 지방의회는 분량(20페이지 이상 등)과 목차 등에 대한 지침만 있을 뿐 대다수는 형식을 정해 놓지 않아 의원들이 보좌진에 맡기는 게 관행이다. 방문을 인증하기 위한 현수막을 들고 찍은 무성의한 사진이 보고서를 가득 메우는 것도 이같은 이유다.

블로그와 온라인 백과사전 등을 그대로 옮겨 작성하는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는 무성의한 보고서도 무더기로 발견됐다. 한 제주도의회 의원이 2017년 10월31일~11월7일 ‘도시 재생 사례’를 파악하기 위해 스페인을 다녀오고 쓴 15페이지 분량 보고서는 짜깁기 그 자체였다. 스페인의 지역 축제 소개 내용을 구글 검색창에 그대로 복사해 확인한 결과 2006년 한 포털 사이트의 지식인 코너에 소개된 내용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이 의원이 ‘세계문화 유산 실태 관리’ 명목으로 방문한 알함브라 궁전, 구엘 공원 등의 소개는 2009년 한 고객이 여행사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이거나 블로거가 쓴 것과 똑같았다. 엉터리 일정은 물론 ‘랜드마크적인 문화시설이 필요하다’같이 무의미한 시사점이 적힌 페이지 한 장과 출장일정, 표지 등을 제외하면 모든 내용이 인터넷 짜깁기인 것이다.

보고서에는 아예 엉뚱한 내용이 기록되기도 했다. 2014년 9월28일~10월5일(6박8일) 유럽의 친환경농업정책을 보기 위해 강원도의회 소속 12명(의원 10명ㆍ직원 2명 동행)이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를 다녀온 뒤 작성한 보고서 중간에는 뜬금없이 “연수기간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은 부위원장님, 흥을 돋워준 의장님에게 감사하다”는 소감이 적혀 있다. 이 보고서에 출장 관련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 이들이 6일간 방문한 농업 관련 단체는 단 두 곳(로마, 파리)이었으며,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 파리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방문, 에귀디미디봉 등정 등 농업과 무관한 일정이 대부분이었다. 2017년 7월10~16일 서울시 의원 15명(동행 직원 4명)이 5박 7일로 러시아의 도시계획ㆍ건축 정책을 보기 위해 떠난 출장 보고서에는 8페이지를 할애해 러시아의 대통령제에 대한 설명과 연방헌법을 인용하고 있다. 이들이 붙임자료로 첨부한 도시별 기관방문 영문 자료는 글씨 크기가 작아 화면을 두 배로 확대해도 알아볼 수 없다.

 엉터리 결과보고서, 올리기만 하면 OK 

해외 출장의 유일한 결과물인 결과보고서가 수준 이하로 작성돼도 용인되는 것은 내외부의 감시망이 작동하지 않는 탓이다. 17개 시ㆍ도의회에 확인 결과 결과보고서에 대해 의회 자체 검토나 외부 단체의 감시를 정기적으로 받는 곳은 전무했다. 국외연수를 사전심사하는 의회의 국외공무여행 심사위원회는 연수 계획만 살펴볼 뿐 결과 보고서를 평가하진 않는다. 대부분 시ㆍ도의회는 귀국 후 15~20일 내 결과보고서 제출과 홈페이지 게재 의무만을 부여할 뿐이다. 한 전직 도의원은 “대부분 의회 홈페이지 게재만을 원칙으로 정할 뿐 출장 내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재검토하는 경우가 없다”라며 “이 문제에 대해 기구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 적도 있지만 의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당국의 감시도 없다. 의회 사무처의 예산 집행을 감독하는 감사원 관계자는 “광역의원에 대한 직접적인 감사 역할은 없다”라며 “정기적 일괄적으로 의회 사무처를 감사하기에는 행정력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의원 해외 출장에 대한 예산 책정 기준 등에 대한 지침은 제공하지만 따로 결과에 대한 감독을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중앙부처와 국회에 비해 시민단체와 언론의 관심에서도 멀리 떨어져 수십 년째 이 같은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근주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회나 지방 의회는 정치적 독립성이 강해 견제하기가 쉽지 않다”라며 “결국 의원들의 자정 노력이 가장 중요하며, 이를 위해 의회 내 지자체, 외부 전문가, 시민 등으로 구성된 준독립 기구를 만드는 등 의정 활동을 감시하는 시민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한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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