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전 사라진 살인 용의자 ‘동사무소 김장김치’ 미끼를 물었다

입력
2018.07.24 04:40
수정
2018.07.24 15:13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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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적도 없는 범인 

 청소 종업원과 친한 장기투숙객 

 일찌감치 유력 용의자로 지목 

 공개수배까지 했지만 실마리 없어 

 주민등록도 말소돼 장기미제로 

 

 #외로운 추격의 끝 

 경감 홀로 12년간 매월 신원조회 

 공소시효 3년 남기고 찾아내 

 기초생활수급 위해 주민등록 복원 

 주소지 인근서 주로 활동 드러나 

 

 #도움의 손길로 위장 

 연고도 가족도 없이 평생 떠돌아 

 스스로 걸어 나오게 유인 작전 

 “동사무소에서 무료로 준비…” 

 택시에서 내리던 범인에 수갑 

 

 피해자 남자관계 의심 범행 실토 

 “계획적 살인…” 12년형 선고 

 

[저작권 한국일보] 그래픽=강준구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그래픽=강준구 기자

“너는 나를 잊었겠지만, 나는 너를 잊지 않았어.”

꼬박 12년이 흘렀다. 윤광상 경사(현 경기북부경찰청 과학수사계 경감)은 고양경찰서 강력반 막내 순경이던 1995년 10월 7일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오전 10시30분쯤 ‘종업원이 칼에 찔려 숨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고양시 한 여관, 그곳에서 목격한 객실 청소원 오모(당시 68)씨의 싸늘한 시신. 과격한 몸싸움이라도 있었던 듯 엉망진창이 된 방과 오씨가 흘린 피가 낭자했던 바닥. 시간이 지날수록 그날 그곳의 기억은 선명해져만 갔다. 살인, 그러나 범인이 잡히지 않고 있는 미제 사건. 2007년 11월, 범인이 윤곽을 드러났던 그때까지 그 기억은 ‘고통’이었다.

오씨는 당시 과다출혈로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기도 전에 숨을 거뒀다. 날카로운 흉기에 목에 있는 정맥과 동맥을 두 번이나 찔려 있었다. 누가 봐도 오씨는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한 처참한 모습이었다.

단서는 현장에서 쉽게 발견됐다. 쓰러진 오씨 주변을 둘러보던 윤 경사 눈에 피가 흥건하게 묻은 외투가 포착됐다. 옷 주머니에는 ‘김희철(가명)’이라 적힌 도장이 들어 있었다. 마침 여관 주인과 다른 투숙객들도 그를 알고 있었다. 두 달 전부터 여관 106호에 장기 투숙하던 인물. 그때는 몰랐다. 이름까지 드러난 유력한 용의자의 얼굴을 보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될 줄은.

신원이 확보됐으니 경찰들 사이에서는 ‘다 잡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작 도주한 김씨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통신 수사는커녕, 현장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는 혈액형이나 겨우 알 수 있던 게 1990년대 과학수사 수준. 형사과 전 직원으로 구성된 수사본부를 설치해 김씨를 추적해 봤지만, 전국에 수배전단을 1만여장이나 뿌려 봤지만, MBC ‘경찰청사람들’ 등 지상파 공개수배 프로그램을 통해 두 차례나 사건을 방송해 봤지만, 조그마한 실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설상가상 김씨는 거주지 불명으로 주민등록이 말소돼 있었다.

사건 발생 3개월이 지난 뒤 수사 본부는 해체됐다. 윤 경사와 양호승 경장(현 인천경찰청 과학수사계 경위) 두 명이 남아 수사를 해 나가기로 결정이 났다. 김씨의 본적인 전남 여수 한 작은 섬에 가기도 수 차례, 그의 가족까지 만나 탐문 수사를 한 건 셀 수조차 없을 정도. 하지만 되돌아오는 건 ‘우리도 연락 안 하고 지낸 지 십수 년째’라는 대답뿐이었다. 그렇게 사건은 조금씩 잊혀져만 갔다. 윤 경사만 빼고.

“살아 있다면 말이죠. 언젠가는 말소된 주민등록을 되살릴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윤 경사는 매달 동사무소를 찾았다. 김씨가 혹시나 주민등록을 살렸는지 확인해야 했다. 경찰의 온라인 신원조회 시스템으로도 김씨 이름을 수없이 검색했다. 그 사이 윤 경사는 강력반을 떠나 현장 감식 업무를 맡게 됐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일. 틈틈이 근무가 없는 비번 날이면 마치 또 다른 출근을 하듯 몸에 밴 습관처럼 김씨를 쫓았다. 휴가 때면 김씨의 기록상 마지막 주소지(경기 평택시)와 여수로 여행을 떠날 정도였다.

“당신, 대체 언제까지 그럴 거야!” 아내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윤 경사는 “한번만 참아줘. 올해 안엔 잡겠지”라는 너스레를 떨며 가족들을 달랬다. 물론 진척 없는 수사에 지쳐가는 몸과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범인이 누군지 뻔히 아는 상황에서 찾지 못해 못 잡는다면 피해자가 얼마나 한스러울까’ 하는 생각에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지치지 말고 꼭 내 손으로 잡아야겠다고 다짐했죠.” 윤 경사는 막막했던 당시를 그렇게 떠올렸다.

2007년 11월 14일, 드디어 그가 나타났다. 평소와 다름 없이 김씨의 신원 조회를 했던 윤 경사 입에서 “아!”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김희철, 김희철이 떴어.” 12년 동안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평택을 마지막으로 그 동안 말소됐던 김씨의 주민등록이 9월 28일, 충남 천안시 원성동에서 되살아났다. 윤 경사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었고, 생활고를 겪던 김씨가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해 보조금을 받기 위해 주소를 이전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김씨는 동사무소에서 오는 연락을 받기 위해 휴대폰도 개통했다.

“이번에 잡지 못하면, 또 어디로 꽁꽁 숨을지 모를 일이었죠.” 전담팀도 사라지고 외롭게 사건에 매달려 온 지 12년, 외로운 추격의 끝이 보였다. 그 다음날 윤 경사는 바로 4일 휴가를 내고 김씨의 천안 주소지로 내려가 양 경장과 함께 잠복을 시작했다.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쉽게 나타나지 않을 거라 짐작은 했다. 주소지 건물은 다 쓰러져 가는 폐가였다. 물론 성과가 아주 없진 않았다. 동사무소를 통해 60대 중반의 김씨 사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가 살아있다는 것, 또 현재 그의 실제 얼굴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실패는 아니었다. 12년 만에 비로소 눈으로 확인한 김씨 사진을 만지작거리며, 윤 경사는 그와 곧 조우할 것을 직감했다.

또 다른 단서도 손에 들어왔다. 잠복하던 윤 경사 눈에 우체통에 꽂힌 휴대폰요금청구서가 들어왔다. 기본료를 겨우 넘긴 요금청구서는 김씨의 빈약한 사회 생활과 관계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 사건이 일어났던 1995년과는 판이하게 다른, 발전된 수사 역량도 든든했다. 김씨 휴대폰 번호로 통화내역과 실시간 위치추적을 실시한 결과, 김씨는 주소지와 3㎞ 정도 떨어진 천안 중앙시장 인근에서 주로 활동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시장이 평소 유동인구가 평일 3만명, 주말 6만명이 넘는 번화가라는 점에서 저 혼자 힘으로는 어림이 없는 일이었겠지만 지난 12년을 생각하면 힘이 절로 났습니다.”

김씨가 거쳐간 약국도 파악 가능했다. 경기 남양주, 천안, 서울 동대문구, 충북 예산. 병원 한번 제대로 가지 못하고 약국을 전전하며 떠돌이로 살아온 모습이 단박에 그려졌다. 한 달 동안 단 ‘2회’ 사용하긴 했지만 김씨의 통화내역도 유의미한 정보였다. 게다가 두 번은 다름아닌 기초생활수급자를 위한 물품을 받기 위해 동사무소 직원과 나눈 통화였다.

“이 놈을 어떻게 유인한담.” 윤 경사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아직 수사팀을 꾸리기에는 ‘결정적인 단서’가 부족했다. 여전히 비번인 날을 이용해 수사를 해야 하는 처지. 공소시효는 3년이 채 안 남았다. 연고도 가족도 없이 평생 떠돌며 산 김씨라 ‘여기서 놓치면 정말 끝이다’라는 직감이 어깨를 무겁게 눌렀다.

고민 끝에 김씨를 제 발로 찾아오게 만들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12년간 꽁꽁 숨어 지내던 김씨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기초생활수급자 보조금을 타기 위했던 것. 마침 12월을 보름 정도 앞둔 11월 중순, 슬슬 연말연시를 맞아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성금을 모금하고 동사무소에서는 형편이 좋지 못한 이웃들에게 두꺼운 겉옷이나 연탄, 김장김치 따위를 지급하던 때였다. 목 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 배고픈 김씨가 도움의 손길을 찾을 게 뻔했다.

“12년 동안 쫓았던 놈입니다.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윤 경사가 천안 원성1동사무소의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간청했다. 처음에는 무뚝뚝하기만 했던 담당 공무원이 조심스럽게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뚜, 딸깍!’ “여보세요? 김희철씨 되시죠? 여기 동사무소인데, 김장김치 받으러 오늘 오후에 오세요. 기초생활보호대상자 분들 드릴 김치를 준비했어요.” 김씨를 유인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미끼였다. “네, 알겠습니다.” 김씨에 대해선 낱낱이 알았지만 정작 목소리는 처음 듣는 순간이었다. 터질 듯한 심장 박동을 숨긴 채, 윤 경사와 양 경장 두 추격자는 동사무소 인근에 잠복했다.

이윽고 오후 4시13분, 김씨가 택시에서 내렸다. “김희철씨, 당신을 12년 전 오○○씨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겨울을 날 김장김치를 받기 위해 동사무소를 찾은 김씨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다, 이내 체념한 듯 어깨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김씨가 밝힌 범행 동기는 ‘치정’이었다. 김씨는 범행을 저지른 해 여관에 머물며 오씨와 친밀한 관계로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오씨가 갑자기 자신하게 싸늘해지자 남자 관계를 의심하게 됐고, “이제 아저씨와는 끝났어요”라는 말에 격분해 살인을 하게 됐다는 게 김씨 얘기다. “12년 동안 정말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인 것처럼 버텼는데. 아직까지 나를 쫓고 있을 줄 어느 누가 알았겠어요.” 김씨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경찰 눈을 피해 도망쳤던 김씨는 서울역과 천안역 등 전국 도처의 역을 전전하며 노숙하기를 여러 해, 혹시나 들킬까 봐 서류상으로 이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쥐 죽은 듯 지냈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건설현장 등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을 반복하며 정처 없이 떠돌다, 결국은 천안 시내에 정착했다. 일흔을 앞둔 김씨와 함께 막일을 하던 일꾼들이 “김형! 나이도 많으니, 동사무소에 가면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는 쌀이나 연탄이나 받아요”하는 소리에 혹하지만 않았다면.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하겠다며 주민등록만 되살리지 않았다면. 김씨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늦은 후회였다.

2008년 1월, 1심 재판부는 “피해자를 계획적으로 살해한 점 등을 미루어 중형을 선고함이 불가피하다”며 “김씨가 초범인데다 범행을 순순히 자백하고, 체포되기 전까지 12년 가량 노숙과 구걸로 힘들게 살아온 점을 고려해 징역 12년의 실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후 탄원서를 제출하며 항소와 상고를 이어갔지만, 같은 해 7월 대법원에서 원심이 그대로 확정됐다.

고양=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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