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존버’ 했지만… 1억이 1000만원 됐다”

입력
2018.06.28 04:40
수정
2018.06.28 13: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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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민호 기자
그래픽=김민호 기자

가상화폐 투자자 A씨는 최근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지난 1월 모아 둔 돈에 대출까지 받아 투자한 1억원이 이후 코인 값 폭락으로 1,000만원까지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A씨는 “혹시 팔고 나면 코인 가격이 뛸까 싶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B씨는 연초 코인에 5,000만원을 올인했다. 가격이 떨어질 때마 ‘존버(X나게 버티기의 약어) 정신’으로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러나 가격이 회복될 것이란 예상은 처참히 빗나갔고 수익률은 어느덧 -90%로 내려 앉았다. B씨는 “희망이 사라진 지 오래“라며 ”너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시장이 폭락하며 반등을 기대하며 버티던 투자자들 사이에 곡소리가 나오고 있다. 잇따른 대내외 악재로 가상화폐 시장이 휘청거리면서 ‘존버하면 돈 번다’는 한 때의 투자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 27일 가상화폐 커뮤니티 ‘코인판’ 게시판엔 본인의 투자 손실 내역 등을 인증하는 글이 이달 들어 이미 총 80건이나 됐다. 이들 중 투자금의 절반 이상(수익률 -50%)을 날린 이가 전체의 57.5%인 46명이었다. 수익률이 -80% 넘게 떨어진 이도 15명에 달했다. 투자금을 1억원 넘게 까먹은 이는 6명이었다. 게시판 내용도 대부분 “더는 존버할 용기가 안 난다”는 것이었다.

연초만 해도 ‘존버’는 가상화폐 투자자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 자세인양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올 들어 가상화폐 가격은 계속 폭락했다. 지난 1월5일 2,744만원으로 최고점을 찍은 비트코인은 최근에는 688만원까지 떨어졌다. 더구나 존버 투자자 중엔 가격 반등을 기대하고 추가로 코인을 사들인 이도 적지 않다.

시세 하락은 복합적인 요인들이 맞물린 데 따른 것이다. 한호현 경희대 교수는 “가상화폐 발행은 점차 늘고 있는데 돈의 유입 속도는 정체에 빠지면서 상승 유인이 사라지고 있다”며 “더구나 거래소들이 해킹에 잇따라 털리면서 시장 자체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김승주 고려대 교수는 “국내 거래소 단 한 곳도 필수 보안 인증인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정보보호관리체계(ISMS)를 받지 못했을 정도로 보안 수준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시중은행들도 거래소와 가상계좌 계약 맺기를 꺼리고 있다. 한 시중은행장은 “당국이 은행 스스로 판단하라 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뭉칫돈이 가상화폐 시장으로 몰리던 상황도 바뀌었다. 가상화폐 전체 시가총액은 연초 577조원에서 지난 25일 기준 282조원으로 반토막이 됐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가상화폐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가상통화의 한계를 짚었다. 가상통화의 근간인 분산시스템 구조(일명 채굴)를 유지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고 가상통화 사용이 늘어날 경우 장기적으로 금융안정성에 위협이 될 수 있어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게 골자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도 섣부른 제도화를 고민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업계는 내달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나올 가상화폐에 대한 공동 규제안에 주목하고 있다. 한 교수는 “자금세탁방지와 투자자 신원 확인 등에 대한 규제까지 마련되면 그간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검은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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