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긱 노동자’, 미국에서는 노동자로 규정… 우린 갈 길 멀어

입력
2018.06.26 04:4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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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우버 운전자 교섭권도 보장

獨은 백서 등 발간 공론화장 마련

정부, 제도적 문제 의식에 공감

‘긱 노동자’ 실태 8월부터 조사

대리운전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리운전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긱 경제(gig economy) 시대의 도래에 따라 선진국들은 이미 신종 비정규직인 긱 노동자의 모호한 지위를 새롭게 규정하고 법적 보호 테두리를 마련하기 위해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25일 고용노동부의 용역 보고서 ‘새로운 노무제공방식 관련 실태 및 제도적 대응방안’에 따르면 미국에선 향후 20년 간 노동의 수요와 공급을 중개하는 플랫폼이 1만개 이상 생겨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디지털 중개 플랫폼 기반 긱 노동자가 늘어나며 이들을 근로자로 볼 것인지, 아니면 자영업자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쟁도 뜨거워 지고 있다. 이미 미국에선 운전기사와 차량, 승객 등을 중개하는 ‘우버‘(Uber)의 기사 근로자성 인정 여부를 두고 70건 이상(2016년 8월 기준)의 소송이 제기된 상태다.

이에 미 노동부는 2015년 7월 독립적인 계약으로 근로를 제공해 노동자로 분류되지 못하는 사람도 ‘공정노동기준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행정 해석을 변경했다. 미 워싱턴주 시애틀시도 2015년 12월 미국에서 처음으로 우버처럼 앱을 통해 일감을 구하는 운전자들의 단결권과 교섭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례까지 통과시켰다.

독일 정부는 2015년 4월 디지털 산업사회에서 고용 환경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로드맵을 담은 보고서 ‘노동 4.0’을 발표한 뒤 정ㆍ재계와 노동계 등 각종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공론화장을 마련했다. 이를 토대로 이듬해 말 관련 법안의 제정 방향을 제시하는 백서도 발간했다.

우리 정부도 지난달 ‘혁신성장 보고대회’에서 “앞으로는 ‘일감’ 중심의 다양한 고용형태 확산이 예상되는데도 여전히 우리 노동시장은 산업화 시대의 낡은 제도가 지속되고 있다”며 문제 의식을 드러냈다. 정부는 이어 현재 고용에 관한 국내 사회안전망 수준을 비교ㆍ분석해 ‘혁신형 고용안전 모델’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4차산업혁명과 함께 기존에 없던 비전형 노동자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조속히 고용 안전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긱 노동자에 대한 실태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갈 길은 아직 멀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긱 노동자의 규모, 노무제공 형태와 근로환경 등을 파악하기 위해 오는 8월부터 실태 조사에 착수, 연내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통계청도 그 동안 노동자 규모가 과소 추계됐다는 지적을 받아온 특수형태근로노동자(사업주와 계약하지만 상품이나 서비스 직접 제공해 실적에 따라 소득을 얻는 노동자)의 조사 범위를 확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간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성격을 모두 가진 특수형태근로노동자는 임금근로자 조사 범위에만 포함됐다. 통계청은 비임금근로자들을 대상으로도 특수형태근로 여부를 조사하면 온라인 중개 플랫폼 사업자에 종속돼 노무를 제공하는 긱 노동자들도 조사 범주에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현행 노동법 체계에서 포괄하기 어려운 플랫폼 노동의 종류가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며 “실태조사, 법률 정비 등을 통해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와 긱 노동자의 관계를 정립하고, 긱 노동자가 새로운 시대의 약자가 되지 않도록 사각지대를 없애 사회 보호망을 두텁게 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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