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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어느 어머니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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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을 홀로 일구고 지킨 삶의 터전에
90대 노인 방치되는 순간 예고된 불행
시스템으로도 개인 윤리 구멍 못 막아
지난해 가을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할머니를 처음 뵈었다. 작은 개울 옆 양쪽으로 집이 드문드문 박힌 골짜기 안쪽에 낡은 농가주택이 하나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과 나뭇가지 울타리만으로도 얼마나 오래됐는지 짐작이 갔다. 사립문 밖의 엉성한 비닐하우스 안에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가을걷이한 들깨를 막대기로 털고 계셨다.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혼자서 뭐 하세요?” “보면 몰라? 들깨 털지.” “연세가···?” “구십둘이야.” 깜짝 놀랐다. 외가의 장수 유전자를 물려받은 어머니도 90줄 넘는 순간 기력이 옛날 같잖으신데, 한 살 많은 분이 이리 정정하시니. 이어진 얘기는 더욱 놀라웠다. “70년을 혼자 이 집에서 이러고 살았어. 아들 셋도 다 키워 치웠지.” 얼핏 6ㆍ25 전쟁 통에 혼자 되셨나 했지만 묻지 못했다. “70년을 혼자”라는 말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했다. 남편과 함께여도 보릿고개를 힘들게 넘어야 했을 시절의 산골생활을 혼자서 버텨냈다니, 그 고생이 오죽했을까. 허리는 앞으로 60도는 휘어져 굳어졌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잔뜩 굵어진 것도 방증이었다. 갑작스레 설움이 밀려든 데다 방해가 될까 싶은 생각이 들어 얼른 “오래오래 건강하세요”라는 말로 첫 만남을 마쳤다. 두 번째 뵈었을 때는 수수를 털고 계셨다. 기력은 더 왕성해 보였다.
세 번째는 갑자기 부쩍 늙으신 듯했다. 오른 팔에 보자기를 둘러 어깨에 걸쳐 맨 모습이셨다. 눈이 내린 날 동네로 나서는 집 앞 오르막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고 하셨다. “병원에 계셔야지 왜 이러고 계세요?” “이 나이에 병원은 뭐해? 돈만 들지. 할 일도 태산이고.” 그러면서 연신 한 손으로 무 다발을 끌어 당겨 놓고, 무청을 잘라 묶으셨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무 몇 다발을 가까이로 옮겨 드렸더니 갑자기 일어서서 밭으로 가셨다. 잠시 뒤 무 한 다발을 힘겹게 끌고 와서는 가져 가라셨다. 더는 일손을 보태기가 민망했다.
그것이 할머니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해가 바뀌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친 날 할머니가 세상을 뜨셨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사람들 얘기로는 새벽에 측간에 다녀오시다 그랬다. 성한 왼 손으로 움켜잡은 바지춤을 미처 다 올리지도 못한 채 측간 앞 마당에 쓰러져 계셨고, 아침에 동네 사람이 발견할 때까지도 숨이 붙어 있었다. 급히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옮기던 도중 숨을 끊으셨다. 말 그대로의 동사(凍死). 그것도 몇 시간을 한 팔로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버둥거리다가 탈진해 식어가는 자신을 온몸으로 느끼는 고통을 동반한 죽음이었다. 너무나 끔찍해 등줄기에 한기가 흘렀다. 동시에 분노와 궁금증도 솟구쳤다. 아들이 셋이나 있다면서 90 넘은 노인이 왜 혼자 살았을까. 오른팔 골절상을 입고도 가을걷이에 매달리는 어머니를 자식들은 왜 병원, 아니 하다못해 요양원에라도 붙잡아 두지 않았을까. 그 산골짝의 겨울이 춥기로 유명한데도 왜 집 안에 화장실 하나 만들어 주지 않았을까.
동네 사람들 얘기로 궁금증은 풀렸지만 분노는 녹지 않았다. 평생을 가꿔온 밭뙈기를 몇 년 전 큰 아들에게 넘긴 게 화근이었다. 둘째와 셋째가 먼저 등을 돌렸고 나중에는 장남마저 늙어 부담뿐인 어머니를 멀리했다. 주말이면 손자손녀들 웃음 소리가 골짜기에 넘치는데도 왜 할머니 집만 고요할까 했던 의문도 풀렸다. 얼마나 사무친 외로움이었을까.
새 봄 들어 할머니 집과 800평 밭이 1억원에 팔렸다. 비닐하우스는 헐리고 반쯤 쑥대밭이 됐던 밭 전체가 말끔히 다듬어졌다. 그래도 그 근처에 가면 할머니가 떠오른다. “다 잡숫지도 못할 들깨나 수수 농사를 왜 이리 많이 지어요?” “애들 줘야지.”
노인복지 체계가 많이 나아졌다. 할머니한테도 정기적으로 복지요원이 들렀다. 그러나 자식들의 관심이 식는 순간 ‘어머니’의 비참한 죽음은 예고된 셈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눈 앞에 줄 서 있다. 아이들에게 쏟는 정성의 10분의 1이라도 노쇠한 어버이에게 쪼개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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