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의 외교지평] 한반도 롤러코스터, 어디쯤 와있나

입력
2018.04.0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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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비핵화 조건’ 그대로 삼키기 어려워

미ㆍ중의 안보이익 양보 가능성도 없어

4ㆍ27서 우리 입장부터 분명히 해둬야

한반도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어디쯤에서 내려올지 알 수 없지만 3ㆍ26 김정은ㆍ시진핑 회담이 하나의 단서는 되었다. 비핵화에 대한 북한과 중국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소위 ‘합리적 안보우려’를 해소해 주면 단계별로 핵을 없앨 수 있다고 하고, 중국이 이를 지지했다. 핵우산 제거, 대북 제재해제, 군사훈련 중단, 북ㆍ미 수교와 경제 보상이 그들의 비핵화의 조건이다. 한ㆍ미가 그대로 삼키기는 어려운 것들이다.

트럼프는 아예 종잡기조차 어렵다. 초강경의 국무장관 폼페이오와 안보보좌관 볼턴이 트럼프 팀의 주축으로 가세했다. 이 팀은 닭의 목을 잘라 원숭이를 겁주는 살계경후(殺鷄警猴) 전술을 동맹국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구사한다. 안보와 경제의 대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을 먼저 흔들어 자유무역협정, 방위비, 무기판매에서 성과를 올리는 중이다. 동종교배로 이루어진 정치부족(部族)이 어떤 기형적 정책을 더 낳을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북핵 협상에서 북한은 물론 한국에까지 어떤 패를 쓸지 알 수 없다.

우리 정부는 이쪽저쪽 입장을 맞추느라 힘들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금지선으로 설정함으로써 북핵을 용인한다는 오해를 불러오기도 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한칼에 해결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은 소아시아를 압도적으로 공략했다. 그가 휘두른 그 칼이 지금 동북아에서는 외교ㆍ군사적으로 가용하지 않다. 누구도 일방적으로 행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반도 상황은 다분히 미ㆍ중의 역학관계에 기초한 동북아 지정학의 산물이다. 강대국들은 자기 주변지역에서의 안보이익을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 한국전쟁, 쿠바 미사일, 크리미아 합병 사례에서 중국, 미국, 러시아가 각각 입증했다. 미국은 지금 중국을 전면적 ‘전략적 경쟁자’로 겨냥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한반도의 급속한 정세 변화를 원치 않고 미국 주도는 더욱 경계한다. 북핵 문제의 해결이 더 복잡해지는 이유이다. 강대국 정치가 한반도를 누르고 있다.

중국은 6자회담과 2005년 9ㆍ19 공동성명을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의 운용방식(modus operandi)으로 삼으려 한다. ‘쌍중단 쌍궤병행’과 ‘단계적 동시적 조치’도 이 방식에 기초하고 있다. 이 공동성명은 이미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 원칙’을 설정했다. ‘밑으로부터의 협상(bottom-up)’과 ‘위로부터의 결단(top-down)’이 결합된 것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에서는 “이번에는 위에서 결단하니 예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기대한다. 상호 이행을 강제할 구조를 갖추어야 예전과 달라질 수 있다. 희망이나 당위만으로는 달라지지 않는다.

“혼돈을 먹고 산다”는 트럼프가 중국의 입장을 정면으로 무시하면서 어떤 행동을 취할지 알 수는 없다. 국내 정치 상황에 맞춰 적절한 포장으로 ‘북핵 외교의 승리’를 선언하고 뒷일은 동북아 국가들에 넘길 수도 있다. 또는 회담의 실패를 선언하고 무력을 포함한 ‘최대의 압박’에 돌입할 수도 있다. 트럼프는 국제문제에 대한 다자적 접근을 싫어한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힘겨루기 끝에 6자회담의 틀로 돌아갈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우선 4ㆍ27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확실히 해야 한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동결과 감시체계 확립 - 대북 제재해제’로부터 시작해서 ‘북핵 폐기 - 평화체제 수립’에 이르기까지 합의구조와 이행계획 도출을 위한 중심을 잡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 문제에 대해 중재자가 아닌 주인의 위상을 가진다. 중재자는 결과에 대한 발언권을 가질 수 없다.

아울러 ‘종전선언’이라는 정치적 유혹에는 빠지지 말아야 한다. 필요하면 ‘종전을 위한 협상’을 선언할 수 있다. 휴전의 현장은 그대로 남겨둔 채 종전을 선언하면 한반도 상황을 더 큰 혼란과 위험에 빠뜨릴 소지가 크다. 마지막으로, 불신으로 가득한 남북가도에 어색한 상냥함이 갑자기 다가왔다. 침착한 자세가 필요하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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