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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개헌 아지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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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연임 대통령제 VS 이원정부제
둘 다 시대정신 뒷받침 없는 껍데기
차라리 권력구조 개편 빼어 버리라
개헌 논의가 영 시들하다. 사흘 연속 대국민 홍보를 거친 대통령 개헌안이 발의되고, 제1야당의 개헌안 골자가 소개됐는데도 그렇다.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던 이번 개헌 논의조차 봄철 아지랑이로 끝날 모양이다. 정치권이 이런 관측에 빠진 지는 오래다. 그런데도 대통령안이나 자유한국당 구상에 대한 비난과 공격으로 개헌공방 시늉을 하는 것은 지난해 대선 공통 공약이던 개헌의 불발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려는 ‘면피’가 아닐 수 없다.
한동안 정치적 이해타산이 개헌 논의 지지부진의 주된 이유로 거론됐다. 지지기반이 무너진 한국당으로서는 6ㆍ13 지방선거와 개헌안 국민투표 동시 실시 자체가 부담이다. 동시투표는 여당의 이익이 크게 마련이다. 국민투표에 부쳐질 개헌안은 압도적 찬성을 받기 십상이고, 그 관성은 지방선거 투표에도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지난해 대선에서 국민에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따져본들 소용이 없다. 야당의 소심함을 질타할 것이라고는 유권자의 채찍질뿐인데, 그마저도 시원찮다. 많은 국민에 개헌은 관심사가 아니거나 후순위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개헌 필요성을 물으면 으레 고개를 끄덕이지만, 누구도 촛불을 들고 나설 정도는 아니다.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뜨뜻미지근한 진짜 이유도 그것일 수 있다. 개헌의 최대 동력인 국민의 정치열기가 많이 식었다. ‘촛불혁명’의 열기는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과 ‘적폐 청산’을 거치며 크게 줄었다. 더욱이 북 핵ㆍ미사일 위기에서 급전한 남북ㆍ북미 정상회담, ‘미투 운동’ 등에 눈길을 빼앗겼다.
청와대와 야당이 내놓은 개헌안이나 구상이 특별한 매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가장 큰 관심이 쏠린 권력구조에서 대통령과 야당은 각각 내놓은 것은 ‘4년 연임 대통령제’와 사실상의 ‘이원정부제’다. 한때 활발히 지적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한 대통령 권한 분산은 공통적인 반면, 주축은 대통령제의 지속과 해체로 크게 엇갈린다. 공통적 문제는 헌법의 민주적 변경, 즉 개헌이 국민 정치의식의 변화를 반영해야 하는데도 어쩐지 둘 다 흘러간 옛 노래처럼 들린다는 점이다.
주지하듯,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인 현행 헌법의 개정 필요성이 처음 본격 거론된 것은 노무현 정부 말기의 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론’을 통해서였다. 너무나 빨리 찾아온 권력누수(레임덕) 현상을 ‘5년 단임제’의 필연적 귀결로 본 것이 당시 논의의 출발점이었다. 그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된 게 ‘4년 중임제(정확히는 연임제)’였다. 그러나 4년 연임제의 경우 재임 대통령의 후반기 4년이 통째로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는 반론 등이 잇따랐고, 무엇보다 정치상황과 맞아떨어지지 않아 무산됐다. 다만 그때의 활발했던 논의로 ‘4년 중임(연임)제’가 국민 뇌리에 박혔다.
이때와 달리 이명박 정부 이래의 개헌 논의의 초점은 ‘권력누수 방지’가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 수정에 맞춰졌다. 헌법이 대통령에 과도한 권한을 몰아주어 독단이나 독식이 예고돼 있고, 그런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니 으레 국민의 정치적 반분을 부른다는 지적이 무성했다. 2009년 8월31일 국회헌법자문위원회가 내놓은 이원정부제와 ‘4년 연임 정ㆍ부통령제’ 등 두 가지 권력구조 개편안이 모두 대통령 권한 쪼개기의 결과였다. 당시 자문위는 대체로 이원정부제에 기울었지만, 국민의 정치적 관성인 ‘내 손으로 대통령 뽑기’ 의식을 존중해 4년 연임 정ㆍ부통령제를 선택형으로 제시했다.
현재의 대통령안과 야당 구상은 당시 자문위안 가운데 하나씩을 골라 변형시킨 꼴이다. 적잖은 세월이 흘렀고, ‘촛불혁명’을 거쳤으면 권력구조 개편의 필연성을 떠받칠 시대정신 변화를 설파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대적 선거구제 개편이라는, ‘국론 반분’을 부분 예방할 보완책도 없이 ‘망국적’ 대통령 선거를 유지하겠다고 한다. 그런 껍데기만으로도 이견이 커서 개헌 논의를 진전시킬 수 없다면, 차라리 권력구조는 그냥 내버려 두라. 5년 단임제가 뭐가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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