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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흥남철수 美 선원에 “만나고 싶은데 일정이…” 답장

입력
2018.04.05 15:5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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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국에 온 벌리 스미스씨

지난 1월 “만나고 싶다” 편지

보훈처가 대신 환영오찬 열어

한국을 찾은 벌리 스미스(오른쪽)씨와 그 아내. 스미스씨는 1950년 흥남철수 작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가 타고있던 메러디스 빅토리아호 승선원이었다. 스미스씨 제공
한국을 찾은 벌리 스미스(오른쪽)씨와 그 아내. 스미스씨는 1950년 흥남철수 작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가 타고있던 메러디스 빅토리아호 승선원이었다. 스미스씨 제공

1950년 흥남철수 작전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아호 승선원이었던 벌리 스미스(89)씨가 5일 한국을 방문했다고 국가보훈처가 밝혔다. 스미스씨는 방한 전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문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의향도 전달했다. 문 대통령의 부모님이 흥남철수 때 빅토리아호 피난민이었던 인연에서다.

흥남철수 작전은 1950년 12월 함경남도 흥남항에서 한국군과 미군이 약 10만명의 피란민을 경남 거제로 철수한 작전이다. 빅토리호는 같은 해 12월23일 흥남항에서 출항한 마지막 배로, 군수물자를 포기하고 피란민 1만4,000여명을 태운 것으로 유명하다. 문 대통령의 부모도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탑승해 거제로 내려와 터전을 잡았고, 1953년 거제에서 문 대통령이 태어났다.

때문에 아시아 지역으로 크루즈 여행을 앞두고 있었던 스미스씨는 지난 1월 문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청와대에 따르면 스미스씨는 편지에서 “최근 문 대통령의 부모님이 1950년 크리스마스에 흥남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탑승했던 피난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문 대통령이나 흥남철수를 이야기를 아는 시람을 거제도에서 만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이에 문 대통령은 답신을 보내 “마음 같아서는 직접 맞이하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지만 대통령으로서의 일정이 이를 허락하지 않아 매우 아쉽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대신 국가보훈처에 스미스씨 일행을 예를 다해 맞이해줄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스미스는 이날 부산에서 개인 일정을 소화한 뒤 6일 보훈처가 주관하는 환영 오찬을 갖는다. 오찬에 앞서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있는 흥남철수 작전 기념비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 승선원 등을 기리는 추도 행사에도 참석한다. 추도 행사에는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손양영씨와 이경필씨 등도 나올 예정이다. 스미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조기 등을 보훈처에 기증하고, 보훈처는 문 대통령의 기념품인 손목시계를 스미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아래는 벌리 스미스 씨의 서신

문재인 대통령님께

최근 저는 대통령님의 부모님이 1950년 크리스마스에 흥남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탑승했던 피난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승선원 가운데 생존해있는 3명 중 1명으로, 친구들에게 농담 삼아 오래전에 한국 대통령님의 부모님과 같은 배에 탄 적이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대통령님께서 최근에 당시 빅토리호의 사무장이었던 로버트 루니(Robert Lunney)를 만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기관사였던 메를 스미스(Merle Smith)와 항해사였던 저는 대통령님의 부모님과 함께 흥남에서 거제로 향했습니다.

저는 4월에 약 15명의 미국인 친구들과 함께 윈드스타 크루즈의 레전드호를 타고 중국 텐진에서 제주도, 부산, 일본을 항해하려고 합니다. 4월 6일 부산에 배가 닿으면 ‘거제도 피난민 메러디스 빅토리호 기념비’를 방문하고자 버스를 예약해 두었습니다. 흥남철수를 기획했던 해병대 대령의 손자인 네드 포니(Ned Forney)를 거제도에서 만나기로 했고, 최근에 돌아가신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 세례명 Marinus)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장을 성인으로 추대하려는 천주교계의 움직임에 앞장서고 계신 이균태 신부님을 부산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만약 대통령님이나 대통령님의 어머니 혹은 흥남철수 이야기를 아시는 친구 분이나 지인 분께서 4월 6일 거제도에서 저희들과 만나주실 수 있다면 더 없이 감사하겠습니다. 미국인 친구들이 대통령님이나 대통령님의 부모님, 피난민이 이루어낸 훌륭한 성공담을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저희의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최근 남북대화가 성사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평창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대통령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벌리 스미스 (Burley Smith) 드림

아래는 문재인 대통령의 답신

Burley Smith 님께.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원이셨던 귀하의 한국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또한 짧은 일정임에도 나의 고향인 거제도를 방문해서 메러디스 빅토리호 기념관(the refugee/Meredith Victory memorial)도 보신다니 매우 기쁩니다.

나는 지난해 6월말 미국 방문시 장진호 전투 기념비에 헌화하고 미군들의 희생과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원분들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Burley Smith 님을 비롯해서 씨맨십(seamanship)을 가진 훌륭한 선원들이 없었더라면 나의 부모님이 거제도에 오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스미스 씨를 직접 부산에서 맞이하고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만, 대통령으로서 나의 일정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아 매우 아쉽습니다. 나의 어머니도 연세가 91세로 고령이셔서 인사드리러 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런 이유로 국가보훈처 국장이 나를 대신해서 귀하와 일행분들을 맞이할 계획입니다. 여러분의 일정이 허락한다면 오찬도 대접하고, 거제에서 흥남철수에 대한 설명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다섯 아이인 ‘김치 5’ 중의 몇 분도 여러분과 함께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이 스미스씨와 일행분들 모두에게 좋은 추억이 되기를 바라며, 귀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2018년 2월 20일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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