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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주년 맞는 민들레국수집 서영남 대표 “하루하루가 기적”

입력
2018.03.27 17:02

각박해진 세상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갈수록 인생의 무게는 버겁기만 하다. 반복된 생활과 익숙함에 취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단한 일상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 일터에선 새로운 희망과 꿈을 찾아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기에 나선 사람들의 작은 몸부림이다. 그들의 애환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본다.편집자주

서영남(왼쪽) 민들레국수집 대표가 지난 26일 식당을 찾은 한 노숙자에게 직접 배식을 하고 있다.
서영남(왼쪽) 민들레국수집 대표가 지난 26일 식당을 찾은 한 노숙자에게 직접 배식을 하고 있다.

“자반 고등어 맛 좀 보세요. 계란말이도 있습니다. 어르신, 김도 챙기셔야죠. 자~, 된장국도 많이 있어요.”

목소리에선 신이 났다. 한상 차려진 뷔페식을 무료로 제공하면서도 얼굴은 싱글벙글이다. 오히려 잔반 없이 먹어주는 이들이 고마울 뿐이다. 호주머니가 허전한 손님들은 덩달아 함박웃음이다. ‘1식10찬’의 공짜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다. 인천 화수동 달동네 끝자락에 자리한 노숙자 무료 급식소 ‘민들레국수집’에선 벌써 15년간 익숙한 풍경이다. 지난 26일 이 곳에서 만난 서영남(65) 민들레국수집 대표가 노숙자들을 맞이하는 모습도 자연스러웠다.

“시간이 참 빠르네요. 그저 하루 하루가 기적이었어요. 언제까지 계속될 지 장담할 순 없지만 제 몸이 움직이는 한 문은 열어야죠.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은데….” 다음달이면 문을 연 지 15주년을 맞는 민들레국수집 이야기를 꺼내자 그의 답변에선 걱정과 기대가 엇갈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003년 4월1일 문을 연 민들레국수집은 철저하게 시민들의 자발적인 지원과 자원봉사만으로 운영됐다. 외부 도움의 손길 없이는 민들레국수집 운영은 사실상 어렵단 얘기다. 하지만 희망의 끈은 이어지고 있다. 100원짜리 동전부터 쌀이나 반찬은 물론 옷과 화장지, 연탄 등 지원 받는 품목도 다양하다. “오늘도 한 수녀원에서 계란 50판을 지원해주고 갔어요.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한 중국집에선 매주 100인분의 짜장을 들고 찾아옵니다. 이런 분들 덕분에 민들레국수집이 지금까지 문을 열고 있어요.” 그는 민들레국수집의 15년 운영 비결로 주변인들의 도움을 꼽았다.

서영남(왼쪽 첫번째) 민들레국수집 대표가 지난 26일 식사 중인 한 노숙자에게 직접 김을 얹어 주고 있다.
서영남(왼쪽 첫번째) 민들레국수집 대표가 지난 26일 식사 중인 한 노숙자에게 직접 김을 얹어 주고 있다.

25년 카톨릭 수사 생활 접고 세상 속으로

15년 전 서영남 대표가 종잣돈 300만원과 6인용 식탁 하나로 2평 남짓한 공간에서 문을 연 민들레국수집은 요즘엔 하루 평균 350여명이 몰려들 만큼 소문난 ‘맛집’으로 통한다. “많이들 찾아와주니까, 고맙죠. 식당에 들어올 때는 겸연쩍어 하던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갈 때 환하게 웃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 그걸로 그만입니다.” 오른손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척골신경마비ㆍ지체장애 4급)이 불편한 그였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식당 안을 돌면서 반찬 배식과 식탁ㆍ의자 정리 등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실 노숙자들의 보금자리로 자리매김한 민들레국수집의 탄생은 어려웠던 그의 가정 형편과도 무관치 않다. 부산 범내골에서 7남매 가운데 다섯 때 아들로 태어난 그는 8살 때, 열차 사고로 부친을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생활은 좀 팍팍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여유로웠어요. 가족들끼리는 잘 지냈거든요. 지금도 그 때 생각이 많이 납니다.” 그는 힘겨웠던 어릴 적 기억을 그렇게 떠올렸다. 그가 천주교 한국순교복지수도회에 입회(1976년), 25년간 지내왔던 수사의 길을 포기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다가간 것도 그의 유년 시절이 동기 부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서영남 민들레국수집 대표가 지난 26일 15년 전 내걸었던 빛 바랜 식당 간판을 가리키면서 지나온 세월을 회고하고 있다.
서영남 민들레국수집 대표가 지난 26일 15년 전 내걸었던 빛 바랜 식당 간판을 가리키면서 지나온 세월을 회고하고 있다.

100% 민간지원만으로 운영…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도

15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민들레국수집은 지금도 열악하다. 예전처럼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할 처지는 아니지만 보름 이후 상황을 장담할 순 없는 형편이다. 지금도 건물 주인과 현재 50만원인 월세 인상을 놓고 ‘밀당’ 중이지만 여의치 않다.

사실 그에겐 ‘꽃길’로 들어설 기회도 있었다. “‘제1회 국민추천포상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을 때였으니까, 2011년일 겁니다. 청와대에서 재단을 설립해 안정적으로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이 왔어요. 일부에선 받아들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제가 거절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고 싶진 않았습니다.”그는 청와대 제안 거절 이유에 대해 “초심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루머도 돌았다. “어떤 분들은 제가 모아둔 재산이 꽤 많은 줄 알아요. ‘지원 받은 걸 빼돌린 게 있지 않겠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에겐 통장이 한 개도 없는데도 말이죠. 언론에 소개되는 것도 꺼려지더라고요.”

지난 26일 인천 화수동 희망센터를 찾은 노숙자들이 독서하고 있다.
지난 26일 인천 화수동 희망센터를 찾은 노숙자들이 독서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민들레 사랑 뿌리 내려

그래도 부인(세례명 베로니카)과 딸(모니카)의 응원은 언제나 든든한 힘이다. 민들레국수집 인근 허름한 건물에 어린이 공부방(2008년)과 노숙자들의 사랑방인 희망센터(2009년)까지 열게 된 것도 가족 덕분이다. 특히 2015년부터 새롭게 개방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 중인 희망센터는 각종 도서와 컴퓨터(PC), 샤워실, 수면실, 세탁실 등을 갖추면서 노숙자들에겐 단연 인기다. “희망센터에 오면 남 부럽지 않아요. 우리 같은 사람들을 누가 이렇게 대해 주겠습니까. 내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고 좋아요.” 이 곳에서 만난 박춘배(68)씨는 심리적인 안정까지 찾았다고 했다.

지난 23일 필리핀 마닐라 나보타 현지 민들레국수집을 찾은 아이들과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민들레국수집 제공
지난 23일 필리핀 마닐라 나보타 현지 민들레국수집을 찾은 아이들과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민들레국수집 제공

민들레국수집의 소외계층 사랑은 이미 해외에서도 뿌리 내리고 있다. 지난 2014년부터 필리핀 마닐라 나보타스와 카비테의 제네랄 마리아노 알바레즈 지역 허름한 빈 건물을 무상으로 지원 받아, 현지 무료 급식 사업과 장학금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서영남 대표가 2013년 ‘포스코 청암상 봉사상’을 수상하며 받은 2억원의 상금 가운데 1억원은 민들레국수집에, 나머지 1억원은 필리핀 급식 사업에 내놓았다.

서 대표는 지난 1995년부터 전국 교도소를 방문, 재소자들에게 영치금과 책을 보내주는 일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필리핀 민들레국수집 개점에 신경쓰면서 고혈압과 당뇨가 함께 찾아왔지만 서 대표는 “남은 여생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들레국수집엔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 옵니다. 그들에게도 작지만 ‘비빌 언덕’이 필요해요. 제가 서 있어야 할 곳은 바로 거기입니다.” 그는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다시 한번 앞치마 끈을 동여맸다.

인천=글ㆍ사진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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