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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올림픽 또한 곧 지나가고

입력
2018.02.22 17:18
30면

북미 대화 실마리 끝내 풀리지 않아

북핵ㆍ미사일 위기 되돌아 오더라도

축제와 현실만 확고히 구분한다면야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스포츠 문외한의 마음까지 뒤흔들어 밤 늦게까지 TV 앞을 지키게 만든 올림픽이다. 우리 선수들의 선전에 환호한 것은 물론이고, 하프 파이프 같은 생소한 종목에서 외국 선수들이 펼쳐 보인 묘기에도 절로 탄성이 나왔다. 잠시도 진화(進化)를 멈추지 않는 여자 컬링의 ‘다섯 김씨(Five Kims)’는 나라 안팎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모든 올림픽에는 감동이 장착돼 있다. 경기 자체의 매력에 더해 선수들의 피땀과 눈물, 의지가 하나같이 영화나 소설 주인공 못지않기 때문이다. 평창올림픽은 이런 올림픽 보편의 감동 요소에 88 서울올림픽 이래 30년 만에 우리 땅에서 열리는 대회라는 특이요소가 덧붙었다. 북한의 극적인 참여로 “우리는 하나”라는 외침까지 울려 퍼졌으니 더 바랄 게 없다.그 축제가 곧 지나가려 한다. 봄날 만개한 벚꽃 아래 가슴을 떨던 첫사랑처럼, 여름날 해변의 태양 아래 등이 따갑던 청춘처럼, 오래지 않아 기억으로만 남을 모양이다. 그리고는 열광의 축제로 잠시 잊었던, 아니 잊을 수 있었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 일상은 개인의 삶도 나라의 현실도 팍팍하다.

평창올림픽에 은근한 기대를 걸었다. 북한이 선수단과 응원단, 예술단을 보내고 형식상 국가원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백두혈통’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고위급 대표단으로 보냈다. 그 배경인 북한의 실상이 어떻든,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의 셈법이 무엇이든, 유례가 없는 특이 사건이다. 그만하면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개막식 참가와 엮어 다양한 북미 접촉 시나리오를 그려볼 만했다. 최근 확인됐듯, 펜스와 김여정이 우리 정부의 중재로 청와대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회동 직전에 북한의 계획 취소로 불발했다니, 터무니 없는 기대는 아니었다.

아직 기회는 있다. 이번에는 폐막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딸인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과 천안함 폭침 사건의 지휘자인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온다. 야당과 보수세력이 김 부위원장의 방남에 극구 반대하지만, 이미 ‘백두혈통’까지 환대한 바 있다. 남북의 대화나 화해가 애초에 적과의 만남이고, 역대 정권이 북한 정권의 우두머리와 만나는 남북정상회담에 의욕을 불태웠던 데 비추어도 공연한 트집잡기에 가깝다. 아울러 김여정이 들고 온 김정은의 방북 초청에 훌렁 넘어가지 않는 등 지금까지 문재인 대통령이 보여 준 대북 자세로 보아 특별히 우려할 일은 없어 보인다.

설사 폐막식을 전후해 북미 양측 대표단이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더라도 실망할 게 아니다. 펜스나 김여정이 그랬듯, 이방카나 김영철도 무언가 메시지를 남기게 마련이다. 펜스와 김여정의 줄다리기는 아직 북미 양측이 만날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켰다. 또한 현재의 북미 대결 구도가 상대적으로 더 불편한 쪽은 북한이고, 미국은 대화의 문은 열어두되 북의 최종적 비핵화 용의를 대화 개시의 기본조건으로 삼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마찬가지로 폐막식을 계기로 한 북미 접촉 성사 여부도 북미 양측의 속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다. 이방카의 방한에 앞서 미 백악관이 ‘대북 문제와 일절 무관’을 강조한 데서조차 읽을 메시지는 있다.

이런 낙관론은 평창올림픽을 통해 세상 변화를 확인한 덕분에 가능하다. 북의 돌연한 선심이 남남갈등과 한미동맹의 이견을 겨냥했을 것이라는 우려가 빗나간 것 또한 그 때문이다. 북 응원단과 예술단에는 부분적 관심만 쏠렸고, 남북 개막식 공동입장이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의 경기가 부른 감동도 제한적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정상회담 등 남북대화에 과욕을 부리지 않을 수 있는 것도 확 달라진 국민의 대북 인식과 무관할 리 없다. 또한 나라 안에 이런 현실 감각만 확고하다면, 한반도 상공에 다시 드리울 안보위기의 먹구름조차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다.

축제가 끝나 간다. 잠시 아른거렸던 남북화해와 평화의 신기루와 함께.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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