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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공간 사람] 맞춤옷처럼 내 몸에 꼭 맞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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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거 하나면 돼’. 집 짓기를 꿈꾸는 이들의 모든 마음은 그렇게 출발한다. 작은 마당, 별이 보이는 천창, 옥상 텃밭. 그러나 막상 땅을 사고 붉은 흙을 퍼 올릴 때쯤엔 딴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마음에 안 들게 지어지면? 그런데 되팔 수도 없다면? 한번 미래로 떠난 마음은 다시 지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결국 집은 미래의 어느 순간을 위한 공간이 된다. 경기 용인시 ‘이이자기’는 30대 중반 맞벌이 부부의 집이다. 아내는 남편을 ‘이이’로 남편은 아내를 ‘자기’로 부른다. 아이 없이 둘만 살기로 한 이 부부는 지금, 여기, 자신들의 삶에 꼭 맞춤한 집을 짓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집이 담장이 되다, 골목을 등진 집
아내와 남편은 나란히 공대를 나와 전자 관련 회사에 다니지만 성향은 정반대다. 남편은 목공, 사진, 자전거, 커피, 조경까지 각종 취미 활동에 분주한, 그의 말을 빌면 “취미를 만드는 게 취미”인 사람이다. 반면 아내는 일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누워 있는 걸 선호한다. 활동을 위해 원기를 충전하는 개념의 눕기가 아니라, 눕기 자체에 의미를 두는 고차원적 눕기다.
이렇게 정반대인 부부가 집을 짓기로 한 건 원룸 생활 1년, 아파트 생활 3년을 보내고 나서다. “아파트 방 하나를 목공 취미실로 썼어요. 옆 집에 시끄러우니까 톱과 끌, 대패만 써서 조심조심 나무를 잘랐죠. 그런데 계산해보니 아파트에 살든 집을 짓든 대출을 내는 건 비슷하더라고요. 그래서 꿈을 조금 앞당기기로 했어요.”
‘이이자기’가 자리한 곳은 단독주택지로 조성된 용인 동백지구다. 단독주택 행렬의 끝에 있는 땅이라 남쪽으로 집 대신 야트막한 산을 마주한다. 이곳에 ‘남편은 놀고 아내는 누울 집’을 짓는 과제가 박현근 건축가(재귀당 건축사사무소 소장)에게 떨어졌다. 신도시에 주택 작업을 여러 차례 해온 박 소장은 “주택에 어느 정도 폐쇄성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요즘 신도시 중 동네 커뮤니티를 활성화한다고 법으로 담을 못 짓게 해놓은 지역들이 있는데 가보면 유령 도시 같아요. 사람들과 억지로 눈 마주치기 싫으니 다 커튼 치고 집에만 있는 거죠. 사생활이 확실하게 보장돼야 이웃과 교류할 여유도 생긴다고 봅니다.”
동백지구 역시 ‘1.2m 이하의 투시형 담장’이라는 규정이 있다. 건축가는 본채와 별채를 나눈 뒤 두 채가 마당을 ‘C’자로 감싸는 건물을 설계했다. 골목으로 들어오는 이들에게 보이는 것은 별채의 ‘등’이다. 남편의 목공취미를 위해 지은 곳이라 큰 창문이 필요 없어, 이게 사실상 집의 담장 역할을 한다. 부부가 생활하는 본채는 별채 옆으로 꺾어지며 마당을 감싸고 야산을 마주한다. 마당 쪽으로 들어올 시선을 고려해 낮은 담 위엔 키가 큰 에메랄드 그린을 줄지어 심었다.
별채에 본격적으로 목공소를 차린 남편은 1층에서 가구를 만들고 2층에서 원두를 볶는다. 그동안 아내는 본채 거실에 마련된 실내 평상에 누워 책을 본다. 거실 한쪽을 돌출시켜 설치한 널찍한 붙박이 평상은 현관과 동선이 일자로 연결돼,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방과 옷을 던지고 눕기에 안성맞춤이다. 바닥이면서 바닥과 구분된다는 점도 청소할 시간 없는 맞벌이 부부에게 적합하다. “아파트에서 살 땐 청소를 못해서 바닥에 눕질 못하고 계속 소파에만 앉아 있었다”는 남편은 “평상은 여기만 치우면 되니까 소파보다 훨씬 편하더라”며 웃었다.
별채는 취미생활, 본채는 온전한 휴식
본채는 딱 2인용이다. 침실엔 2인용 침대가 쏙 들어가고, 드레스룸은 2인분의 옷으로 꽉 찬다. 방도 1,2층 통틀어 부부침실 딱 하나. 이 집에서 ‘여분’이나 ‘만약’이란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땅이 부족해서는 아니다. 229.10㎡(약 69평) 크기의 대지에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은 101.20㎡(약 30평). 한 마디로 땅에 건물을 다 채우지 않았다. 건축가는 “사람들이 집 지은 뒤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내부가 너무 크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설계과정에서 방 한 개가 두 개로, 두 개가 세 개로 바뀌는 건 예삿일이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러나 부부는 불확실한 미래를 집의 중심에 놓고 싶지 않았다. “매매를 염두에 두고 집을 짓는다면 정말 매매하게 될 것 같았어요. 여기서 얼마나 살진 모르지만, 지금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어야 애착을 갖고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실내에서 아낀 면적은 본채와 별채 사이의 외부공간에 쓰였다. 지붕으로 덮여 비와 눈을 피할 수 있고 마당과도 연결된 이곳을 건축가는 “외부 거실이자 실내 마당”이라고 불렀다.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보면 이상하게 마당을 잘 안 쓰게 돼요. 외부와 내부가 뚝 단절돼 있어서 그렇습니다. 결국 마당은 보는 용도가 되고 말죠. 마당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내부와 외부의 경계에 있는 이런 공간이 꼭 필요합니다.
외부 거실은 뭘 갖다 놓느냐에 따라 공간이 달라진다. 식탁을 놓으면 여럿이 고기를 구워 먹는 식당이 되고, 의자를 놓으면 비 내리는 마당을 보며 차를 마시는 카페가 된다. 부부는 내년 여름 여기서 양동이에 발 담그고 맥주를 마시며 무더위를 날릴 계획이다.
자신에게 꼭 맞춘 집에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아내는 이사 온 뒤부터 음악을 틀지 않게 됐다고 말한다. “아파트에서 살 땐 늘 음악을 틀었어요. 여기 와서 또 습관적으로 음악을 틀었는데 너무 거슬리더라고요. 필요가 없는 느낌이랄까요. 공간만으로 충분하다는 게 뭔지 처음으로 알았어요.”
용인=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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