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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골프 오너가 몰아본 푸조 308

입력
2017.10.10 13:34
푸조 308은 폭스바겐 골프를 따라잡기 위해 꾸준히 체질을 개선 중이다. 사진=조두현 기자
푸조 308은 폭스바겐 골프를 따라잡기 위해 꾸준히 체질을 개선 중이다. 사진=조두현 기자

지금으로부터 30개월 전, 폭스바겐 골프와 푸조 308을 두고 한동안 고민했다. 차를 바꿔야 했고, 워낙 해치백 성애자인 탓에 노미네이트된 후보는 골프와 308로 쉽게 좁혀졌다. 하지만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기사를 쓰기 위해 두 차를 각각 시승할 기회가 찾아왔고, 결국 골프의 손을 들어주었다. 아니, 골프가 이겼다기보다 나와 가족에는 골프가 더 적합했다.

혹자는 아이가 있는 3인 가족이 해치백을 패밀리카로 타기에 작지 않냐고 묻는다. 부분적으로 인정한다. 넉넉하진 않다. 하지만 부족하지도 않다. 골프를 살 때 당시 딸 아이는 네 살이어서 큰 유모차를 탈 시기도 지났고, 여섯 살이 된 지금은 트렁크에 작은 킥보드 하나만 넣어 다닌다. 우리 가족은 캠핑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한강 공원에 작은 텐트 쳐놓고 놀다가 해가 지면 집으로 들어온다. 짐을 많이 실어야 할 땐 남은 뒷좌석 하나를 이용하는데, 짐으로 테트리스를 해야 하긴 하지만 크게 불편하진 않다.

개성 넘치는 주행 질감과 실내 디자인과는 달리 외관은 소박하고 평범한 느낌이다
개성 넘치는 주행 질감과 실내 디자인과는 달리 외관은 소박하고 평범한 느낌이다

2년 넘게 7세대 골프를 패밀리카로 잘 타고 있다. 골프를 선택한 이유는 308보다 편안해서다. 7세대 골프는 단단하고 옹골차게 내달렸던 전 세대와 달리 서스펜션에 힘을 뺐다. 덕분에 세단에 버금가는 편안한 주행감을 선사한다. 그래서 가족이 함께 타기에도, 가끔 아내가 운전하기에도 나무랄 데 없다. 골프는 40년 가까이 지켜왔던 ‘근검절약’ 소신에도 힘을 뺐다. 실내에는 크롬과 검정 고광택 패널이 은은하게 빛을 내고, (세심한 컨트롤이 필요하긴 하지만) 해치백 체급에서 보기 어려운 ‘오토 홀드’ 기능도 있다. 차체 크기도 더 커졌다. 골프는 그동안 누려왔던 ‘해치백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운전자의 취향에 맞추기로 작정했다.

차체 길이는 전 세대에 비해 줄었지만 휠베이스는 10㎜ 늘었다
차체 길이는 전 세대에 비해 줄었지만 휠베이스는 10㎜ 늘었다

308 역시 제대로 작정했다. 지금의 2세대 308은 전 세대에서 무게를 140㎏ 줄였다. 7세대 골프보다 40㎏이나 더 뺐다. 체급을 생각한다면 쉬운 다이어트는 아니다. 길이와 높이는 각각 22㎜, 98㎜씩 짧고 낮아졌고, 너비는 48㎜ 넓어졌다. 무게를 줄이고 자세를 낮췄다. 이것만 봐도 달리기에서만큼은 양보할 생각이 없음을 가늠할 수 있다.

설계의 미학은 10㎜ 늘어난 휠베이스에서도 드러난다. 차체 길이는 짧아졌지만 늘어난 휠베이스 덕에 실내 공간은 조금 넓어졌다. 이를 위해 앞뒤 오버행 길이를 줄였다. 뒷좌석은 성인이 타기에 여유롭진 않다. 앉아 있으면 꽉 찬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파노라마 선루프가 머리 위에서 딱 떨어져 답답하진 않다. 인상적인 건 트렁크 크기다. 한눈에 딱 봐도 넓은 공간. 308의 트렁크 용량은 470ℓ로 골프보다 90ℓ나 풍부하다.

308의 진가는 달렸을 때 드러난다. 독특한 주행 질감과 운전 재미가 인상적이다
308의 진가는 달렸을 때 드러난다. 독특한 주행 질감과 운전 재미가 인상적이다

308의 특징을 꼭 하나만 꼽으라면 경쾌하고 순수한 움직임이다. 골프와 미니가 대중화를 위해 그동안 꽉 묶어왔던 운동화의 끈을 풀고 벨크로로 바꿨다면, 308은 오히려 끈을 더욱 단단히 조인 느낌이다. 성격은 다르지만 운전 재미로만 보면 어느 해치백과 겨뤄도 밀리지 않는다. 핸들링에서 브랜드의 개성이 확실히 드러나는 차는 많지 않은데, 푸조는 그 어려운 걸 해낸다. 앞 스트럿, 뒤 토션빔 방식의 서스펜션은 노면의 불규칙한 리듬을 균일하게 만들어 대차게 달릴 수 있도록 돕는다.

"두두두두두" 스포츠 모드에선 사운드 제너레이터가 작동해 박진감을 더하고 계기반엔 출력 게이지가 표시된다
"두두두두두" 스포츠 모드에선 사운드 제너레이터가 작동해 박진감을 더하고 계기반엔 출력 게이지가 표시된다

앞바퀴의 매끈한 움직임은 작은 스티어링휠을 통해 가감 없이 전달된다. 푸조의 트레이드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작은 운전대는 운전 재미를 극대화한다. 낚시에만 손맛이 있는 게 아니다. 차의 핸들링에도 쫀득쫀득 달라붙는 손맛이 있는데, 푸조는 그 맛이 가끔 생각나는 차다. 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시간차와 오차가 거의 없는 차는 308을 포함해 손에 꼽는다. 2년 전 차 구매 목적이 패밀리카가 아니라 주로 혼자 타는 ‘펀 드라이빙’이었다면, 골프가 아닌 308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308이 패밀리카로 부적합하다는 뜻은 아니다. 가족의 취향일 뿐이다.

풀 LED 헤드램프가 눈매를 공격적으로 만든다
풀 LED 헤드램프가 눈매를 공격적으로 만든다

시승차는 지난 5월에 출시한 GT 라인 레더(Leather) 에디션으로 1.6ℓ BlueHDi 엔진을 얹었다. 최고출력 120마력, 엔진회전수 1,750rpm에서 최대토크 30.6㎏·m의 힘을 뽑아낸다. 수치상으로 높은 편은 아니나 이만한 크기의 해치백엔 적당한 출력이다. 디젤 엔진 특유의 소음과 진동은 있으나 거슬리진 않는다.

MCP 대신 아이신 6단 자동 변속기를 넣은 건 옳은 결정이다
MCP 대신 아이신 6단 자동 변속기를 넣은 건 옳은 결정이다

푸조가 308을 작정하고 만들었다는 건 변속기에서도 느껴진다. 호불호가 크게 갈렸던 MCP 대신 아이신에서 만든 EAT(Efficient Automatic Transmission) 6단 자동 변속기를 달았다. 참 잘했다. 수동 변속기가 익숙한 푸조의 고향에선 어떨지 몰라도 자동 변속기를 선호하는 국내에선 이 변속기가 구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변속할 때마다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울컥거림은 국내에선 아무래도 낯설다. 새로운 변속기는 골프의 듀얼 클러치 변속기와 비견해도 큰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엔진의 힘을 매끄럽게 잘 전달한다. 이는 운전 재미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소박하면서 개성 넘치는 인테리어. 푸조만의 스타일은 확고하다
소박하면서 개성 넘치는 인테리어. 푸조만의 스타일은 확고하다

겉모습은 평범한 편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일반적이지 않은 스타일에 처음 보는 사람은 생소할 수도 있다. 일반 차보다 지름이 작은 스티어링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는 엔진회전계, 주요 편의 기능과 설정 버튼을 디스플레이에 몰아넣어 단출해진 센터페시아, 요즘 보기 드문 CD 플레이어 그리고 야박하게 한 개만, 그것도 센터 콘솔 쪽으로 깊숙하게 숨겨 놓은 컵홀더는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하지만 이런 개성엔 높은 점수를 준다. 인기 좋은 다른 차의 장점을 베껴 이것저것 조합해 놓은 차보단 브랜드 고유의 컬러가 분명한 것이 그 브랜드의 발전을 위해서 더 낫다.

차체 크기는 작아졌지만 트렁크 용량은 넉넉해 일상에서 큰 부족함이 없다
차체 크기는 작아졌지만 트렁크 용량은 넉넉해 일상에서 큰 부족함이 없다

시승차인 레더 에디션의 시트는 검정 나파 가죽이 감싸고 있다. 여기에 GT 라인을 드러내는 레드 스티치를 더해 스포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나파 가죽은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한 가죽 가공업체에서 비롯됐다. 가죽을 크롬염이나 알루미늄 황산염으로 무두질해 주름 지지 않고 내구성이 뛰어나 자동차 시트와 소파, 가방에 주로 쓰인다. 308 GT 라인 레더 에디션의 앞 좌석은 꼬물대며 마사지도 해준다. 3,000만원대의 해치백에 마사지 기능이라니!

차에 정답은 없다. 목적과 취향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촬영 장소 협조: 가평 인너 갤러리
차에 정답은 없다. 목적과 취향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촬영 장소 협조: 가평 인너 갤러리

사실 308은 국내에 많이 팔린 모델은 아니다. 지난해 골프의 판매가 중단되고 나서도 대체재로 떠오르지도 않았다. 올해 8월까지 308은 GT 모델을 포함해 293대가 팔렸다. 업계에선 판매 부진의 원인으로 상대적으로 약한 브랜드 인지도와 가격 등을 꼽는다. 하지만 푸조라고 해서 폭스바겐보다 싸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차의 짜임새와 상품성은 골프나 308이나 도긴개긴이다. 골프를 일컬어 ‘해치백의 교과서’라고 하지만 교과서 말고도 인생에 귀감이 되는 책은 많다. 두 차는 경쟁 구도긴 하나 장르만 같을 뿐 캐릭터는 확연히 다르다. 해치백을 고민하는 이라면 308을 한 번쯤 타보고 결정하길 권한다. 올해가 가기 전에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나온다고 한다. 골프가 없는 지금 308은 계속해서 진화 중이다.

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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