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종호의 판사의 길] 법은 완전한가

입력
2017.05.18 14:06

법관은 헌법과 법률, 다시 말해 ‘법’에 의해 심판한다. 이는 입헌민주주의 국가의 대원칙인 ‘법치주의(法治主義)’의 한 측면이고, 대통령이 임명한 헌법재판관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파면시키는 데서 그 위력을 실감한다. ‘법에 의한 재판’의 핵심은 주관적 경험이나 감정에 좌우되기 쉬운 개개 인간의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객관적이고 일관성을 줄 수 있는 통일된 법을 따라 재판하라는 데 있다. 그런데 재판을 함에 있어 법을 따르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재판을 하다 보면 법규정의 미비와 흠결에 부닥칠 때가 있다. 그물(網)에 반드시 공백이 있듯이 인간이 만들어가는 법망(法網)에도 공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미 법으로 편입되어 있는 규정이 시대의 변천으로 규범력을 상실하였거나, 법으로 규제해야 할 당위성은 있으나 사회공동체의 합의가 없어서 아직 법으로 편입되지 못하고 있거나, 강제성을 띤 법을 통해 규제하기보다는 자발적인 도덕 영역에 둘 수밖에 없는 경우에 법의 공백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 때 타인의 자동차 등을 잠시 사용하고 제자리에 놓아 둔 경우 절도죄로 처벌할 수 있느냐에 관해 의견이 분분하였다. 결국 이 문제는 형법 제331조의2에서 ‘자동차 등 불법사용죄’를 신설함으로써 해결되었다. 이처럼 법망을 촘촘히 짜는 일은 재판을 통한 정의의 실현에 크게 기여할 것임은 분명하나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한 경우가 있고, 이럴 때는 법관에게는 어려움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어떤 때는 법 해석 문제에 봉착하기도 한다. 재판에 필요한 법규정을 구체적 사안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규정의 의미가 파악되어야 한다. 법을 제정함에 있어서는 사회현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안별로 규정하는 방식은 가능하지 않고, 구체적 표상들을 일정한 기준에 맞게 유형화시킨 다음 가능한 모든 경우를 포함할 수 있도록 추상적 언어를 통해 규정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규정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추상화된 법규정의 의미를 개별 사안에 맞게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연적이다. 이것이 바로 ‘법 해석’이다.

법 해석은 ‘진실 발견’과 더불어 재판에 임하는 법관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형법 제250조는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위 규정이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쉽게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아 보일지 모르나, 법관의 입장에서는 태아가 사람이 되는 시점은 언제인지, 인공호흡기만 떼면 즉시 숨을 거두게 될 사람에게 부착된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경우 살인죄가 되는지 등 쉽지 않은 해석 문제가 남아 있다.

끝으로, 하위규범의 상위규범 위배 여부를 심사해야 될 때도 있다. 이러한 심사가 불가능하다면 법치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주권자의 의지가 효력을 잃게 된다. 국법체계상 최고의 법은 헌법이고 법률은 그 다음이므로 명령․규칙․조례의 내용이 법률과 헌법에 위반되는지와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에 관한 심사는 필수적이다. 사정상 국법에 담기지 못한 부분까지도 헌법으로 인정하자는 자연법론자의 입장에 따르면 그 부분도 경우에 따라서는 ‘불문헌법(不文憲法)’으로서 위헌 여부에 관한 심사기준이 된다.

따라서 재판에 있어 법관은 당해 사건에 적용될 명령․규칙․조례가 법률과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될 때에는 ‘위헌명령규칙심사권’의 행사를 통해 당해 규정의 적용을 회피할 수 있고, 대법원은 이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을 가진다. 또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 전제가 된 경우에는 헌법재판소에 제청하여 그 심판의 결과에 따라 재판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범행내용상 사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는 사건을 맡은 법관이 사형선고를 회피하기 위해서는 사형 규정에 대해 위헌법률심사를 제청한 다음 헌법재판소로부터 사형 규정이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와 배치된다는 판단을 얻어야 한다. 그 외에는 법관의 책무상 형법 규정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 실정법인 ‘성문헌법(成文憲法)’은 그 규정만으로는 흠결이나 미비점이 없고, 주권자의 의지를 표방한 최고의 법이므로 정당성 판단이 필요 없는 규범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정상 아직 헌법으로 편입되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 데다가 규정이 시대의 상황에 맞지 않는 경우도 생기며, 헌법도 정의 실현 도구이므로 그에 대해서도 정당성(정의적합성) 판단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완전무결한 실정법은 없는 셈이다. 따라서 ‘법꾸라지’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등 완성도 높은 법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을 쥔 자의 잘못에 의해서가 아니라 규정 자체의 문제로 정의를 세워나가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헌법 개정까지 마다해서도 안 된다. 법관도 법과 정의의 수호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냉철한 지성으로 법을 탐구해 나가는 한편 따뜻한 가슴으로 정의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힘써야 한다. 그것이 바로 법치주의를 지켜나가는 길이다.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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