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칼럼] 대선 후보와 토론하는 법

입력
2017.04.02 09:29

대통령 선거가 한 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유권자들은 이 제한된 시간을 활용해서 그나마 나은 후보를 가려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대선 토론회 사회자 혹은 토론자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먼저 어느 후보가 대통령이라는 중책을 감당할 만한 자기규율을 가졌는지 판별해야 한다. 스스로를 규율하지 못하는 사람이 공약을 지킬 가능성은 낮다. 자기규율이 없기 때문에, 공약을 지키지 않은 대통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조차 아무 불편 없이 받아들일 공산이 크다. 후보의 자기규율 정도를 토론회에서 확인해 볼 방법은 발언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자신의 발언 시간을 오남용하는 후보에게는 사회자가 물어야 한다. “발언시간도 못 지키면서 공약은 어떻게 지키시려고?”

제한시간을 지키더라도, 아무런 내실 없는 이야기로 발언시간을 채우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소화하지 못한 멋진 말들을 외워 나열하는 후보가 그 말들을 제대로 실천에 옮길 리 없다. 예컨대 후보가 인권(인간의 권리)을 보장해야 한다고 역설할 때, 토론자는 성소수자나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 질문해야 한다. 만약 그들의 권리에 대해 유보적으로 나온다면, 토론자는 물어야 한다. “성소수자나 이주노동자는 인간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막연히 성소수자의 권리를 인정한다고 할 경우에는, 동성결혼 법제화에 대한 견해를 물어야 한다. 이러한 연속 질의를 통해서 후보가 해당 사안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는지 비로소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장밋빛 공약을 제시할 때마다 “그와 같은 정책을 실현시킬 재원은 어디서 오나요?”라고 물어야 한다. 그 재원이 곧 증세를 의미한다면, 국민들에게 늘어난 세 부담을 어떻게 나누고 설득시킬지 물어야 한다. 이에 대해 대답을 회피하면서 “우리 국민은 역경을 헤쳐 나가는 위대한 국민입니다”라고 옹알이를 할 경우, 사회자는 적극적으로 물어야 한다. “식대를 어떻게 지불할 거냐는 질문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식객인지를 선언하면 식당주인 기분이 어떻겠어요?”

구체적인 공약들은 모여서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구성해야 한다. 올바른 방향감각 없이는 개별 공약들이 제대로 된 비전을 이룰 수 없다. 앞으로 이 나라 사람들에게 험로가 기다리고 있다고 예상되는 바, 동서남북 상하좌우를 분별 못하는 정치적 길치는 리더의 위치에 있어서는 안 된다. 정치적 길치가 토론회에서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상은 동문서답이다. 모르는 것이 어디 동과 서뿐이랴. 남과 북도 몰라서 “종북”이라는 말을 남용하기도 하고, 앞과 뒤도 몰라서 퇴행적인 정책을 진보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좌와 우도 몰라서 “좌파”라는 말을 곡해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사회자는 개입해야 한다. “‘라이트’(right)와 ‘레프트’(left)의 뜻을 모르는 권투선수에게 라이트훅과 레프트훅을 주문하는 국민의 기분이 어떻겠어요?”

잘 입안된 비전이 존재하더라도, 미처 예상치 못한 권력투쟁과 우연(fortuna) 때문에 비전이 실현되지 못하곤 하는 곳이 바로 정치의 세계이다. 수줍어 배시시 웃기만 하는 선한 심성만으로는 비전을 구현해낼 수 없다. 이 세계에서는 임기응변과 능청을 통해서라도 험로를 헤쳐 나갈 정치적 역량(virtue)이 필요하다. 대선토론회는 과연 후보가 그러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후보가 동문서답으로 일관할 때, 사회자는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 거다. “식사하셨습니까?” 먹고 왔다는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룩하게 또 묻는 거다. “준비를 이렇게 엉망으로 하고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던가요?” 이 때, 당황해서 울먹이는 후보는 삼류, 부끄러운 나머지 그 자리에서 후보사퇴를 선언하는 후보는 이류, 밥값을 못했으니 반성하는 차원에서 토하겠다며 그 자리에서 헛구역질을 시작하는 후보, 그가 바로 일류이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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