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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아서, 날이 적당해서… 도깨비 찾아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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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낭독의 힘은 강하다. 더구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공유라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절제된 음성으로 전달된 시어(김인육의 ‘사랑의 물리학’)는 시청자들을 ‘심쿵’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드라마 ‘도깨비’에 홀린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촬영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가고 있다. 김신(공유 분)과 지은탁(김고은 분)의 900년을 뛰어넘는 인연의 고비마다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는 강원 평창과 강릉의 촬영지로 겨울여행을 떠났다.
▦날이 좋아서… 발왕산과 용평리조트
발왕산 산정의 용평리조트 하늘정원은 김신과 은탁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장소로 등장한다. 간접광고(PPL)로 선정한 곳이지만 실제 광고 영상 못지않게 빼어난 설경이 부각된 곳이다. 그래서 스키가 아니라 여행이 목적이라면 좋은 날을 가려서 가는 것이 중요하다. 밤에 눈이 내리고 다음날 아침 개는 날씨라면 최상이고, 눈부신 상고대라도 보려면 춥고 맑은 날 아침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이 눈인 듯 얼음인 듯 하얗게 변신한 모습에선 숭고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동으로는 정선 백복령과 동해 두타산, 강릉 노추산으로 첩첩이 이어진 능선이 장대하고, 북으로는 풍력발전단지 바람개비가 줄지어 선 백두대간 선자령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대관령의 고원 설경도 알프스 산자락 부럽지 않을 만큼 이국적이다. 하늘정원에서 발왕산 정상(1,458m)까지는 약 800m, 경사가 완만해 눈길이라도 20분이면 넉넉히 오를 수 있다.
하늘정원까지는 용평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면 20분만에 닿는다. 가격은 1만 5,000원. 곤돌라는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20분까지 운행한다. 첫 번째 곤돌라를 타도 일출은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날이 좋지 않아서… 주문진 영진해변 방사제
강릉 주문진 방사제(防沙堤)는 열아홉 번째 생일을 맞은 은탁이 자축 케이크의 촛불을 끄고 소원을 빌어 처음으로 김신을 소환한 장소다. 방사제는 해변으로 모래가 밀려와 수심이 얕아지는 것을 막는 시설이다. 파도를 막기 위해 항구를 둘러 설치하는 방파제와 달리 바다 방향으로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그래서 얼핏 밋밋하게 보이는데, 그 단순함 때문에 파도의 영상미가 돋보인다. 넓지 않은 해변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5개의 크고 작은 방사제가 있는데, 촬영무대가 된 곳은 아래서 두 번째 것이다. 첫 번째 방사제와 길이가 같아 어느 쪽에 서더라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주문진 방사제는 제작진이 공들여 일대의 해변 사진을 찍어가며 선정한 장소다. 에메랄드 빛 바다색이 좋아서 낙점했는데, 정작 촬영 당일에는 비가 내려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시원하게 부서지는 파도가 반짝이는 바다를 대신해 준 셈이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은탁이 두른 빨간 목도리와 김신이 전한 메밀꽃다발을 사진 소품으로 대여해주는 노점상이 생겼다는 소문에 주위를 둘러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관련 기사가 나간 후 곧바로 세무서에서 조사가 나왔고, 사흘 만에 자취를 감췄다는 게 인근 횟집의 전언이다. 이를 목적으로 영업하는 다른 가게도 없는데, 기껏 1,000원짜리 대여 아르바이트도 눈감아 줄 여유가 없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둘이서 가면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을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곳을 찾은 지난 5일은 비가 내렸고 하늘까지 어둑했는데도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젊은 커플이 많았지만 중년층과 가족여행객도 적지 않았다. 순서를 기다리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다양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주문진항과는 1.3km 떨어져 있다.
해변의 폭도 넓지 않고 평상시 관광객이 많지 않은 곳이어서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건 흠이다. 횟집 주차장이 아니면 왕복 2차선 해안도로 갓길에 일렬로 차를 대는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날이 적당해서… 월정사 전나무 숲과 상원사 선재길
극중 도깨비 김신의 나이는 무려 939세, 월정사 전나무 숲은 ‘천년의 숲길’이다. 월정사 창건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약 1,400년 전이다. 이곳은 검을 뽑으라는 말에 울음을 터트린 은탁에게 김신이 덤덤하게 고백하는 장소로 등장한다.
전나무 숲길은 일주문에서 시작해 사찰입구 금강교까지 약 1km에 달하는 산문(山門)이자 산책로다. 드라마에서처럼 눈이 내리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1,700여 그루의 침엽수림이 뿜어내는 기운은 고스란히 느껴진다. 걷기 편한 흙 길은 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넉넉하지만, 높이 수십 미터에 이르는 전나무가 감싸고 있어 오솔길처럼 아늑하다. 오대천의 물소리와 바람소리까지 어우러져 누구라도 구도자가 된 듯 마음이 평온해진다.
길 중간쯤에는 2006년 스러져 텅 빈 속을 드러낸 고목이 화석처럼 버티고 있다. 수령 600년으로 이 숲에서 최고령으로 추정된다니, ‘천년’은 아무래도 조금 과장된 수사인 듯하다. 스러진 나무도 생태의 일부로 여겨 그대로 두었듯, 자연물을 이용한 다양한 설치작품도 볼거리다. 팔각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 등을 보유한 월정사는 강원지역에 60여 개의 말사를 거느린 큰 사찰임에도 오대산의 너른 품에 안겨 번잡하지 않다.
여기까지 와서 상원사를 가지 않으면 후회할 게 분명하다. 월정사에서 계곡을 따라 9km 상류에 위치한 상원사는 국내 문수신앙의 중심임을 자부하는 사찰이다. 목조문수동자좌상, 상원사 동종과 중창권선문 등 작은 사찰에 국보가 셋이나 된다.
절도 절이지만 상원사까지 이르는 선재길의 설경은 이맘때 놓칠 수 없는 풍광이다. 화엄경의 선재(동자)에서 이름을 딴, 숲과 계곡을 오가며 월정사와 상원사를 잇는 걷기 길이다. 비포장인 찻길도 선재길 못지 않다. 월정사와 고도차이가 크지 않은데도 계곡이 깊어 겨울에는 거의 상시적으로 눈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수시로 제설작업을 하기 때문에 폭설이 아니면 차량을 통제하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그래도 눈길 운전에 자신이 없는 이들은 월정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진부공용버스정류소에서 월정사까지 하루 12차례 노선버스가 운행하는데, 이중 8대가 상원사까지 오간다. 대략 1시간에 1대 꼴이다. 월정사와 상원사는 외길로 이어져 있어 입장료도 한꺼번에 받는다. 승용차 기준 주차료 4,000원, 1인 입장료 3,000원이다.
▦모든 날이 좋았다… 도깨비 여행 코스 짜기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월정사~주문진~발왕산 혹은 반대 순으로 동선을 짜면 이동 거리를 줄일 수 있다. 월정사에서 주문진으로 갈 때는 6번 국도를 이용해 진고개를 넘으면 거리도 가깝고 풍광도 빼어나다. 단 눈이 내릴 경우에는 안전하게 고속도로를 이용하길 권한다. ●월정사는 영동고속도로 진부IC, 용평리조트는 대관령IC에서 가깝다. 주문진 방사제(내비게이션에 ‘해랑횟집’)는 동해고속도로 북강릉IC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1년 여 앞으로 다가온 동계올림픽에 맞춰 문화체육관광부는 강릉 평창 속초 정선을 연결하는 ‘평창로드(가칭)’를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으로 선정하는 한편, 주요 관광지를 연계한 ‘글로컬 관광상품’도 개발했다. ‘Hello! 2018평창’이라고 명명한 관광상품은 평창의 대관령 양떼목장, 동계올림픽 스키점핑타워, 효석문화마을, 강릉의 오죽헌과 안목커피거리, 정선의 삼탄아트마인과 아라리촌 등을 포함하고 있다.
강릉ㆍ평창=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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