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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4‧3 왜곡… 제주도민 뿔났다

입력
2016.11.2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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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 요구 등 지역사회 강력 반발

법 명칭 등 기본적인 사실도 오류

제주 4ㆍ3유족회, 30일 기자회견

정부의 중ㆍ고등학교 국정 역사교과서의 현장검토본에 제주 4ㆍ3관련 내용이 대폭 축소 기술되면서 제주지역사회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4ㆍ3단체들은 물론 시민단체, 지역정가 등에서 국정 역사교과서의 즉각 폐기를 촉구하고 나섰다.

정부의 중ㆍ고등학교 국정 역사교과서의 현장검토본에 제주 4ㆍ3관련 내용이 대폭 축소 기술되면서 제주지역사회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4ㆍ3평화공원내 행방불명인 표지석를 찾은 유족들. 김영헌 기자
정부의 중ㆍ고등학교 국정 역사교과서의 현장검토본에 제주 4ㆍ3관련 내용이 대폭 축소 기술되면서 제주지역사회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4ㆍ3평화공원내 행방불명인 표지석를 찾은 유족들. 김영헌 기자

제주4ㆍ3연구소는 29일 성명서를 통해 “국정 역사 교과서는 친일의 역사를 축소하고, 이승만ㆍ박정희 정권을 미화하는 등 왜곡된 역사관이 그대로 드러났다”며 “4ㆍ3기술을 보면 4ㆍ3의 역사를 축소했고, 면피성 서술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교육부가 28일 공개한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에 기술된 4ㆍ3 관련 내용을 보면 “1947년 3ㆍ1절 기념 대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1948년 4월 3일에는 5ㆍ10 총선거를 반대하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1954년 9월까지 지속된 군경과 무장대 간의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많은 무고한 제주도 주민들까지 희생되었다”고 짧게 명시됐다.

4ㆍ3연구소는 “교과서 내용으로만 보면 2만5,000~3만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4ㆍ3사건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4ㆍ3사건이 일어난 배경은 전혀 모른 채 ‘대한민국을 거부한’ 남로당의 무장봉기로만 기술하고 있다”며 “당시 3ㆍ1사건에 대한 미군정의 실책, 서북청년단이 제주도민에게 자행한 가혹한 폭력, 경찰의 고문치사 사건 등 4ㆍ3사건이 일어난 배경 설명은 아예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제주4ㆍ3특별법의 명칭은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이지만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으로 잘못 표기돼 있고, 국회가 1999년 제정하고, 정부가 2000년 공포했는데도 2000년 국회가 제정ㆍ공포했다고 돼 있는 등 제주4ㆍ3특별법의 명칭과 제정, 공포의 주체와 연도 등 기본적인 사실조차 오류를 드러내고 있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도 성명을 내고 “전반적으로 제주 4ㆍ3 사건에 대한 서술이 매우 단편적일뿐더러 그 내용조차도 편향적으로 기술돼 있다“며 “국정교과서가 학교 현장에 배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 정부가 학교현장 배부를 강행한다면 도민ㆍ학부모와 함께 나서 교과서 거부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4ㆍ3희생자 유족인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제주시을)을 비롯해 같은 당 강창일 의원(제주시 갑)ㆍ위성곤 의원(서귀포시)도 이날 성명을 내고, 제주 4ㆍ3사건을 축소하고 왜곡한 국정교과서의 중단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했다.

이들 국회의원은 “국정교과서 폐지는 물론 엉터리 교과서를 만드는 데 부역해 제주도민들에게 상처를 준 자들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밝혔다.

또한 학계, 종교, 정치, 교육, 농민, 언론, 여성 등 제주지역 104개 단체가 참여한 ‘박근혜 정권 퇴진 제주행동’을 비롯해 제주4ㆍ3도민연대,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제주도당 등도 성명 등을 통해 한 목소리로 국정 역사교과서의 폐기를 요구했다. 제주4ㆍ3유족회는 30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정교과서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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