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용출 칼럼] 미국 예비선거와 한국의 총선

입력
2016.04.03 14:25

요즈음 미국정치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수수께끼는 아무도 도널드 트럼프나 버니 샌더스가 대변하는 미국사회의 분노를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장 권위 있는 뉴욕타임즈조차 이를 예상하지 못했다. 미국의 지식층이나 언론 및 정당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트럼프와 샌더스 돌풍은 한국에게 두 가지 점을 시사한다.

그 하나는 민주주의 하에서 선거라는 절차만으로는 사회의 변화가 제대로 정치에 반영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미국 공화당 지도부의 당황한 모습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즈의 중도보수 논객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트럼프 현상의 원인으로 1980년대 시작된 공화당 레이건주의 종말을 들고 있다. 전형적인 시장주의에 입각한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경제중심적 사고가 더 이상 힘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공화당이 심각한 패러다임 위기에 빠져 있으며 밑바닥 정서에 기초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브룩스의 이런 관찰은 원론적으로 의미가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소위 뿔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미국에서조차 경제적 양극화와 대규모 실업이 초래하는 사회적 불안을 주로 경제적 차원에서 통계적으로만 이해해왔을 뿐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정치적 폭발성은 오랜 동안 감지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경우 예비선거제도가 있어 민초들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표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비선거에는 기본적인 자격요건만 갖추면 거의 누구나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감춰지거나 억압된 감정과 정서가 정치에 반영될 수 있다는 장점을 이번 기회를 통해 볼 수 있다.

위기로 말하자면 한국위기가 미국의 그것에 못지 않게 심각할 것이다. 세계화와 기술발전이 가져오는 경제사회적 충격은 한국도 미국 못지 않다. 또한 그 정치적 폭발성도 미국 못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작금에 나타나는 총선 분위기는 경제적 위기 속에 내재된 국민들의 정치적 분노를 제대로 반영할 것 같지 않다.

영ㆍ호남 지역주의에 의존하려는 여야의 행태는 실의와 분노에 빠져있는 밑바닥 정서의 반영에 대한 기대를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오히려 국민들의 실상을 외면하고 봉합하는 결과를 가져 올 가능성이 높다.

형식적인 경선을 내세우면서 당내 다른 의견을 묵살하려는 여당의 모습, 선거직전에 당의 정체성을 운운하거나 준비 없이 새정치를 주장하는 야당, 이 모두는 국민 경시에서 나올 수 있는 현상들이며 총선 이후 한국 정치의 혼란상만 짐작하게 해주고 있다. 수 많은 공약들이 남발되지만 이를 실천할 정치 전략에 대해서는 한 마디 없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선출된 국회의원들에게서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것이다. 더욱 답답한 것은 기성정치인들의 부분적 교체에 그치는 현 선거제도하에서는 미국과 달리 국민들의 진정한 상태를 읽고 이를 표출할 수 있는 기제가 사전에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시작된 지 거의 30년이지만 민주주의의 공헌이라 내세울 만한 것이 별로 없다. 특히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대외 영향력을 국내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공존을 위한 제도와 가치의 합의에 완벽하게 실패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과정은 중심세력과 중도세력을 파괴했고 모든 분야를 정치화시켜왔을 뿐이다. 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 위기의 전모와 심각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국론화되지 못했다. 한국민주주의는 통합과 문제의 근본적 해결보다는 균열과 봉합을 일삼아 한국의 생존적 위기 대응 방안 창출에 실패했다.

정치에 실망한 국민들은 선거를 포기하거나 불량한 정치상품인 지역주의등에 마지못해 적응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의 진정한 불만과 기대는 이렇게 구태정치에 의해 수렴되지 못하고 현상유지의 재판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총체적 위기는 마치 더운 물속의 개구리와 같아 물속에서 헤어나오지 않으면 오랜 동안 그럭저럭 지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번 총선이 비록 소수이지만 한국을 더운 물속에서 구해 낼 수 있는 비젼과 의지가 있는 미래 지도자를 배출하길 기대해 본다.

미국 워싱턴대 잭슨스쿨 한국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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