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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메르스 공포’ 키운 방역당국의 뒷북 대응

입력
2015.05.27 17:09

중동호흡기증후군으로 불리는 메르스(MERS) 감염환자가 국내에서 첫 발견된 지 일주일 만에 5명으로 늘었다. 처음 확진 판정을 받은 70대 남성 A와 그의 부인, 딸, A와 같은 병동을 사용했던 환자가 차례로 감염됐다. 급기야 그제는 A를 치료하던 의사마저 유전자 검사결과 감염이 확인됐다. A와 접촉을 했던 또 다른 2명도 한때 감염 의심환자로 분류됐으며, 지금도 격리 이송된 채 생활 중이다. 감염 확진 환자들과 접촉, 이미 자가(自家) 격리중인 인원만 60명을 넘고 있어 이들 중 추가 감염자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감염환자가 속속 발생하면서 추가 확산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방역 당국은 뒤늦게 자가 격리자에게 주변 인물과 2m 이상 떨어져 지내고, 집안에서도 방역 마스크를 착용할 것을 당부하는 등 사후약방문격 대응에 나섰다. 38도 이상 고열이 있을 경우에 한해 실시하던 유전자 검사 기준도 37.5도로 낮췄다. 자가 격리 대상자가 희망할 경우 고열이나 호흡기 증상 없이도 인천공항검역소 내 격리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어제도 전북 정읍에서 중동 지역에서 체류한 20대 여성이 메르스가 의심된다고 자진 신고하는 등 사회적 동요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번 ‘메르스 공포’는 방역 당국의 안일한 초기대응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첫 감염환자가 발생했을 당시 전염성이 낮다는 이유로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고열증세로 입원한 A가 입원한 병실에서 4시간 동안 간호한 딸이 감염을 의심, 스스로 격리 검사를 요청했으나 보건 당국은 검사 대상이 아니라며 거절했다. 이 여성은 결국 나흘 만에 감염환자로 판정 났다. 만일 그가 보건 당국의 말만 믿고 길거리를 활보하며 많은 사람들과 접촉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 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방역당국은 메르스가 한때 아시아에 창궐했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ㆍ사스) 만큼의 위협적인 전염성이 없어 과도하게 걱정할 질병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메르스가 발견된 이후 감염환자 1,142명 중 465명이 사망, 치사율이 40%나 되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아직까지 예방백신이나 치료약조차 개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코 안이하게 대할 질병이 아니다. 다른 예로 조류독감은 가축과의 접촉을 통해서만 감염된다는 것이 기존 학설이었지만 사람과의 접촉으로도 전염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종 전염병은 워낙 변종 등장 속도가 빠르고 예측 불가여서 좀더 면밀하게 관찰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뒷북 방역으로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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