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족이야기] 한의사 신준식

입력
2000.03.17 00:00

처음 인터넷을 배워 네티즌 대열에 끼었을 때는 병원이나 연구소 일에 적용해 보려는 욕심이 대단했다. 물론 인터넷을 배운 이유도 업무와 연관된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미국에 있는 둘째 딸과 E-메일을 교환하는 게 주목적이 돼버렸다. 컴퓨터를 켜면 딸에게 온 메일부터 확인해야 일이 손에 잡힌다.나는 8대째 한의사의 가업을 잇고 있다. 선친은 한의사면서 동시에 양의사셨다. 어릴 적 아버지가 왕진을 가실 때마다 자전거 뒤에 매달려 따라 다니곤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버지는 자전거 뒷자리에 곧잘 쌀이며 계란과 같은 먹을 것들을 주렁주렁 실어놓곤 하셨다. 당시만 해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 치료비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도와주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선친의 뜻대로 나 역시 당연한 듯 한의사가 되었다. 집안 분위기 탓인지 어렸을 때 동네 개구장이들과 어울려도 성냥개비로 침 놓기 흉내를 내는 게 고작이었다. 내 아들 역시 의사가 되어주리라 내심 믿었던 것도 이런 집안내력과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큰 딸에 이어 둘째도 딸을 얻게 되자 솔직히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내 마음을 모를 리 없는 아내가 무슨 죄라도 지은 듯 미안한 얼굴을 하자, 난 아내에게 되려 나무라듯 말했다. “고리타분하긴…, 딸이면 어때. 좋은 의사 되는데 무슨 상관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 말은 허전한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했다.

부모의 마음은 아랑곳 없이 큰 딸은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되기 싫다고 선언해 버렸다. 큰 딸은 지금 미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 낯선 곳에서 혼자 공부하는 것도 안쓰러운 일이건만, 아직도 부모가 원하는 길을 가지 못한 게 미안한 듯 마주칠 때마다 조심스럽기만 하다.

큰 딸이 그림공부를 하고 싶다고 처음 말했을 때,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작은 딸이 내 귀에 대고 속삭이며 달래주었다. “난 그래도 의사가 좋아….”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작은 딸이 정말 의사가 되겠다며 현재 의대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미국 존스홉킨스의대와 콜럼비아의대에서 입학 승인을 받고 어느 쪽으로 갈지 고민 중이다.

큰 딸에 이어 작은 딸까지 미국으로 간 뒤 제일 신경이 쓰이는 건 아내다. 딸들이 크면 어머니에겐 둘도 없는 친구일 터인데, 그런 재미도 모른 채 늙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아내는 노상 객지에 나선 딸들 걱정 뿐이다. 그런 아내를 위해 한 달에 두어 번 영화라도 보러 나서곤 한다. 집을 나설 때면 아직도 소녀같은 얼굴로 좋아하면서도 내가 피곤하진 않은지 연신 눈치를 살피는 아내. 겨우 이런 외출이 그 동안 조용히 가족을 지켜온 아내에게 작은 보답이라도 될 수 있을런지….

작은 딸은 자랄 때 치마 한 번 입지 않고, 대를 이어 의사가 될 아들처럼 행동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작은 딸의 그런 마음이 부모의 기대에 대한 부담일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었다. 늦둥이 막내 아들이 태어나기까지는.

막내가 태어나자 중학생이던 작은 딸이 어느 날 언니가 입는 원피스를 어색하게 걸치고는 부끄러운 듯 내게 다가와 이야기했다. “내가 아니어도 막내가 할 꺼야.” 그 말에 아내와 나는 그제서야 아이의 속 깊은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작은 딸은 막상 진로를 결정할 때가 되자 스스로 의사가 되기를 원했다.

신통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아직도 내가 알게 모르게 무언가 강요하나 싶어 슬쩍 물어 보았다. “의사는 쉽지 않은 직업인데, 고생만 할 껄….” 내 말에 작은 딸은 혼자 머쓱한 웃음만 지었다. 그 웃음 뒤에 뭔가 할말이 있다 싶었는데, 언젠가 미국에서 온 E-메일에 그 말을 담아 보냈다.

“아빠가 혼자 품고 있는 고생도 보람도 같이 지고 싶어요. 언젠가는 아빠의 동료가 될거예요.”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졌다. 그놈, 버르장머리없이 아버지를 울리는구먼. 작은 딸이 메일로 담아온 그 메시지. 난 그때야 딸이 굳이 한의학보다 양의학을 선택하고 외롭게 미국까지 건너간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오랫동안 한의원을 운영하다가 지난 해 양한방 협진병원으로 확대한 데는 선친의 유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 선친은 양한방의 장점을 살려 치료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몸소 체험하셨고, 적어도 나의 대에서는 제대로 된 양한방 협진병원을 세울 수 있기를 기대하셨다.

아마도 작은 딸은 자신이 양의학을 공부한다면, 할아버지의 소망대로 언젠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한의학의 줄기에 서양의학을 접목하는 교량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더욱이 요즘 미국에선 젊은 의사들 사이에 대체의학 연구붐이 일고 있다. 딸이 서양의학과 한의학이 제대로 한 번 만나는 신의학의 선구자가 돼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이들에게 내 꿈을 강요하는 일은 하지 말자며 늘 조심했는데, 언제 벌써 딸에게 욕심을 부렸던 걸까. 아니면 8대조 할아버지부터 내려오는 의사로서의 의무감이 딸 아이 마음에도 각인돼 부심여심(父心女心)이 되어버렸던 걸까.

■신준식은 누구인가

1952년 충남 당진 출생. 경희대 한의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8대째 한의학을 가업으로 잇고 있다. 현재 양한방 협진병원인 자생한방병원 원장. 경희대 경영대학원 의료경영학과 외래교수이자 동서의학대학원 겸임교수도 맡고 있다. 허리 건강에 특별히 관심이 많아 ‘허리가 생명이다’ 등 많은 척추질환 관련 책을 냈으며, ‘대한추나학회’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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