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수자만 처벌하는 프랑스 성매매법의 역설... 되레 종사자 위험 커졌다

입력
2018.10.01 16:53
수정
2018.10.01 19:1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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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4일 파리 서쪽 불로뉴숲에서 피살된 성매매 종사자 바네사 캄포스를 추모하고 성매매처벌법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집회를 하고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지난 8월 24일 파리 서쪽 불로뉴숲에서 피살된 성매매 종사자 바네사 캄포스를 추모하고 성매매처벌법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집회를 하고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지난 8월16일 프랑스 파리 서쪽 불로뉴 숲에서 페루 출신 트랜스젠더 성매매종사자 바네사 캄포스(36)가 피살됐다. 이 여성은 고객 지갑을 훔치려는 불량배들에 맞서다 이들이 쏜 총에 가슴을 맞고 숨졌다. 살해 용의자 5명은 경찰에 체포됐지만 캄포스의 동료 성매매 종사자들은 이 사건이 성매매처벌법 이후 더욱 위험해진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법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2016년 4월 프랑수아 올랑드 좌파 정권 당시 약자인 성매매 종사자들을 위한다며 통과된 관련법을 둘러싼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 법은 단속에 걸렸을 경우 성을 판 이는 처벌하지 않고 성매수자들에게만 최대 1,500유로(약 193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인데, 경찰 단속을 우려하는 매수자 요구 때문에 치안이 불안한 곳에서 만남이 이뤄지는 바람에 캄포스와 같은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파리에서 일하는 익명의 한 성매매 종사자는 뉴욕타임스(NYT)에 “법 시행 이후 성매수자들이 경찰에 단속되지 않도록 외떨어진 곳에서 성관계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한 시민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마르세유 지역의 성매매 종사자들은 어두운 건설현장과 같은 지역에서 성관계를 강요당하고 콘돔 사용 거절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캄포스가 살해당한 불로뉴숲 역시 치안이 불안한 곳으로, 프랑스 일간 르 파리지앙에 따르면 불로뉴숲에서 최근 살해당한 성매매 종사자는 12명에 달한다.

성 판매자들을 면책하고 성 매수자만 처벌하는 정책은, ‘성매매 수요근절’ 이 목표로 1999년 스웨덴에서 처음 법제화된 이후 캐나다, 노르웨이, 프랑스 등에 도입됐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법제화까지 2년 반 가까이 걸리는 등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다. 성매매 종사자 노동조합인 스트라스는 성매매 비범죄화만이 성매매 종사자들을 폭력이나 인신매매, 강간 등의 위험을 면하게 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매수자를 처벌하게 되면서 종사자들의 근로조건이 더욱 열악해졌다는 게 이들 주장의 요지다. 프랑스의 9개 시민단체는 최고법원에 이 법에 대한 위헌심판을 구할 계획이다.

반면 성매매 근절을 주장하는 단체들은 이 법을 지지하고 있다. 이 법을 지지하는 시민단체 새둥지운동의 대변인 클레르 퀴데는 “성매매는 위험하고 폭력적인 행위”라며 “이 법은 종사자들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 법은 성매매를 중단하고 전직하려는 종사자들에게 최고 월 384유로(약 5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외국인 종사자들에게 6개월 임시체류를 허가하는 인센티브도 포함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낮다는 주장도 나온다. 프랑스 정부는 올해까지 600명이 보조금을 통해 전직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실제 전직한 이는 55명에 불과했다. 세계의약품기구 조사에 따르면 종사자 61%가 이 프로그램의 존재를 몰랐고, 보조금을 신청하겠다는 이는 26%밖에 안됐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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