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거 같은데? 군대 안 갔다와 눈치가 영~” 폭언 넘어 혐오의 말 예사

입력
2018.07.17 04:40
수정
2018.07.17 17:2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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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되고 무시 받기 일쑤

어디 문제있나? 남자 구실 못해?

처음 본 사람도 시비걸기 다반사

친구ㆍ동료마저 ‘하자’ 비하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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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비웃는 현실

헌재 ‘면제사유 비공개’ 결정했지만

알바 면접 때 대놓고 캐묻거나

군필자 우대 조건 내거는 곳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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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의 기나긴 싸움

병역 회피 문제 해마다 터져

‘일부러…’ 왜곡된 시선도 많아

현역 입대 위해 자발적 재검사도

군대 문화에 젖은 한국 사회에서 군 면제자ㆍ보충역과 현역 복부자들과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높은 유리벽이 존재한다. 사진은 유리벽 뒤로 보이는 군복을 입은 현역 출신 예비역의 뒷모습. 김주성 기자
군대 문화에 젖은 한국 사회에서 군 면제자ㆍ보충역과 현역 복부자들과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높은 유리벽이 존재한다. 사진은 유리벽 뒤로 보이는 군복을 입은 현역 출신 예비역의 뒷모습. 김주성 기자

“넌 왜 이렇게 빠릿빠릿하지 못하니. 군대만 갔다왔어도 그렇게 어리바리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야.”

3년을 다니던 첫 직장을 그만 두고 지난해 새 직장에 정착한 이정수(33ㆍ가명)씨가 이직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직장 상사의 지속적인 무시와 차별’이었다. 그는 2006년 유전성 신장질환으로 병역판정검사에서 군 면제 판정을 받았는데, 상사가 면제자라는 이유로 폭언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대에 안 다녀와서 눈치가 없다’는 등 황당한 근거로 다른 남성 동료들과 비교하기를 여러 번. 이씨는 “스트레스 때문에 손발이 퉁퉁 붓고 결석도 생기는 등 증상이 악화해 결국 이직하게 됐다”며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군 면제자나 사회복무요원(보충역)은 ‘어딘가 모자란 사람’으로 치부 받는다”고 토로했다.

‘병역 사회’라 불릴 정도로 군대 문화에 젖은 한국사회에선 현역으로 군 복무를 하지 않은 남성들은 소외되고 무시 받기 일쑤다. 16일 병무청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 32만3,800명이 병역판정검사를 받았는데, 이 가운데 16.1%(5만1,972명)가 보충역이나 면제자(전시에 소집되는 면제자인 전시근로역 포함)로 판정을 받았다. 현행 병역처분 기준에 따르면 고졸 미만 학력 미달자나 신체 4등급 판정을 받은 사람은 보충역, 신체 5등급이나 1년6개월 이상의 징역을 선고 받은 사람 등은 전시근로역, 그리고 신체 6등급 등은 면제자로 분류된다.

사회생활 미숙, 군대 문화 모르는 때문?

군 보충역이나 면제자들은 “편한 복무 생활을 했다”는 이유로 현역 출신들의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일상 속 편견의 시선과 맞닥뜨려야 한다. 특히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복무 기간 중 생전 처음 본 사람에게도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고 입을 모은다. 2009년 병역판정검사에서 4등급 판정을 받아 한 지하철 복무요원으로 일한 김모(30)씨는 “일반 직원들보다 사회복무요원에게 취객이나 시비 거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게 사실”이라며 “’남자 구실도 못하는 애’라는 폭언을 서슴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이러한 대우를 자주 받다 보니 상당히 위축되고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이들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은 실수나 약간의 미숙함을 보일 때면 ‘군대를 다녀오지 않기 때문’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2010년 고도난시로 보충역 판정을 받은 이모(28)씨는 “군대 문화가 강하다는 영화ㆍ광고 촬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작은 실수를 해도 ‘쟤는 공익(사회복무요원)이니까’ 라는 식의 시선과 대우를 받다 보면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고 털어놨다.

사회에서 마주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친구와 동료들마저도 이들을 무시하기 일쑤다. 지난해 통풍으로 4급 판정을 받아 보충역이 된 대학원생 박찬호(27)씨는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모습보다, 면제자나 사회복무요원 등을 ‘병신’ 등의 단어로 비하하는 모습을 더 많이 봤다”고 말했다. 2006년 기흉 등으로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았던 인모(32)씨도 “친구나 동료들끼리 군 복무 경험을 대화 소재로 삼는 때가 많은데, 힘든 근무를 하면 자랑스러워 하고 쉽게 복무했으면 비하 대상이 된다”며 “이러한 구조 속에서 면제자나 보충역은 부러움의 대상인 동시에 놀림감이 된다”고 했다.

심지어 온라인에서는 ‘공익’이라는 용어가 어떤 사람이나 주제를 혐오하는 용어로까지 사용되고 있다. 2013년 서울중앙지검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한 대학생 정벼리(28)씨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공익 게임’ ‘공익 게시판’ 등의 용어가 사용되는데, 이는 특정 사이트나 게임을 깎아 내리는 뜻”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공익이 비하 용어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기자
그래픽=김경진기자

“자네, 무슨 하자가 있는 건가?”

수십년 전부터 군 면제자ㆍ보충역에 대한 채용 차별이 문제가 돼 온 탓에 국가인권위원회는 2003년 기업들이 입사지원서에 병역면제 사유를 적지 못하도록 제동을 걸었다. 당시 인권위는 2002년 50명 이상을 채용한 38개 업체의 입사지원서를 분석한 결과 35개 업체(92.1%)가 병역면제사유를 적도록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해당 란을 삭제하도록 권고했다. 헌법재판소도 2007년 5월 국회 별정직 4급 정모씨가 ‘공직자 등의 병역사항 신고 및 공개에 관한 법률’의 병역 면제 사유 공개 규정이 사생활 비밀과 자유 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청구한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업 채용 절차에서는 물론 아르바이트 구인 과정에서조차 보충역ㆍ면제 판정 사유를 캐묻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릎십자인대 파열로 군 면제 판정을 받은 황성하(25)씨는 “편의점이나 PC방 등도 아르바이트생을 구할 때 군필자 우대 조건을 내걸고 있다”며 “아르바이트를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데도 면접 때마다 내가 얼마나 정상인지를 증명하는 데 진땀을 빼야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는 장애로 군 면제를 받고 충남도 공무원 임용시험에 응시한 한 남성이 “면접 과정에서 군 면제 사유를 질문 받았고, 장애가 있는 신체 부위까지 보여주며 사유를 증명해야 했다”며 도 인권센터에 조사를 요청한 일도 있었다.

이 때문에 취업준비생 다수가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들에는 ‘군 면제자들에 대한 취업 불이익이 있느냐’ ‘면접 때 보충역 사유를 솔직히 말해도 되느냐’는 등 채용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하는 글들이 상당수 게재돼 있다.

“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거지?”

병역판정제도의 사각지대 때문에 병역회피 문제가 매년 터져나오면서 모든 군 면제자ㆍ보충역들이 ‘현역에 못 간 것이 아니라, 일부러 안 간 것’이라는 오해의 시선을 받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병무청의 특별사법경찰에 적발된 병역면탈(회피) 사례는 59건이나 됐고, 고의 체중 증ㆍ감량이 22건(37%), 정신질환 위장 14건(23.7%), 고의 문신 12건(20.3%), 학력 속임(2건), 허위 장애 등록(2건) 등 적발 유형도 다양했다. 습관성어깨탈골로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한 직장인 최모(28)씨는 “어깨탈골 때문이라고 얘기를 해도 곧이 곧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며 “주변에서 신체검사 당시에 살을 쫙 빼고 몸무게를 낮춰 현역을 피한 것 아니냐는 식의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고 씁쓸해했다. 최씨는 특히 “일상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어깨가 아픈 날이면 너무 서럽다”며 “검사를 앞두고 체중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문신을 하는 등 병역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근절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편견은 더 커진다”고 강조했다. 박찬호씨도 “군 면제자나 보충역에게 흔히 ‘꿀빨러(편하게 일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라는 편견을 덧씌우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현역을 가야 할 사람과 가면 안 되는 사람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신뢰성이 훼손된 데 있다”고 했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왜곡된 시선을 너무도 잘 알기에 군 면제ㆍ보충역 판정을 받고도 현역 입대를 위해 여러 차례 재검사를 받으며 고군분투하는 이들도 많다. 병무청에 따르면 지난해 병역판정검사에서 보충역ㆍ전시근로역으로 구분됐던 821명이 자발적으로 재검사(병역처분변경) 신청을 했고, 이중 72.5%(595명)가 실제 현역 입대 대상이 됐다. 첫 병역판정검사에서 간 질환으로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가 재검사를 받아 2016년 현역으로 제대한 김형세(27)씨도 비슷한 사례자 중 하나다. 김씨는 “증세가 조금 나아졌다는 생각에 재검을 받았다”며 “워낙 군 면제자에 혹독한 한국 사회의 면모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정혜지 인턴기자(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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