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두 쪽 사회에서 진실 찾기

입력
2009.12.09 02:34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수만 달러를 건넸다"고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검찰에서 진술했다는 <조선일보>의 지난 4일자 보도를 놓고 야당이 벌집 쑤신 듯 들끓고 있다. 사실 이 보도는 한 달 전 <한국일보>가 '참여정부 실세 3명에 금품 줬다'는 제목으로 보도(11월13일자 1면)한 내용 그대로다. <한국일보>가 H씨라고 익명으로 처리한 것을 <조선일보>는 '한명숙'이라고 실명을 박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익명과 실명의 차이는 크다. 한 달 전에는 별 반응이 없었던 한 전 총리 측과 민주당은 즉각 격렬한 반응을 나타냈다. 무엇보다 보도 주체가 <조선일보>라는 점이 논란을 증폭시켰다. 한 전 총리 측은 보도 내용을 부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검찰과 보수신문의 야당 죽이기로 사안을 규정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주목할 것은 이 사건을 둘러싼 공방이 우리사회의 갈등양상을 또렷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언제부턴가 모든 사회적 이슈는 보수-진보, 네편-내편, 여-야의 틀 속에서 그 의미가 규정된다. 언론은 이미 이 틀 안에서 심판이 아니라 선수로 뛴 지 오래다. 그러니 <조선일보>의 한명숙 보도는 그 진실이 무엇이든 야당과 친노세력에 치명타를 날리려는 현 정권과 보수 언론의 합작품으로 해석될 뿐이다. 한 전 총리 측의 반응이 터무니없다고 할 수만도 없는 이유다. 적대적 언론의 보도를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만일 같은 내용을 <조선일보>와 대척점에 있는 <한겨레>나, 중도를 표방하는 <한국일보>가 보도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반응이 사뭇 달랐을 것이다. 검찰을 비난했을지는 몰라도, 언론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검찰은 이번에도 정치적 논란에 휘말려 들고 있다. 검찰은 부인하고 있지만, '보수신문을 통한 검찰의 언론플레이'라는 야당의 규정에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는 분위기다. 검찰보다 야당의 주장을 그럴듯하다고 믿은 사람이 적지 않다. 검찰이 현재 진행 중인 수사와 관련해 여야 형평을 맞추려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경험상 무리한 억측이라고 할 수만도 없다. 스테이트월셔 골프장 로비 사건에서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과 현경병 의원이 수사선상에 올라있는 상황과 맞물려, 검찰이 형평 차원에서 야권 인사에게 칼을 겨눌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한 반성으로 새로운 검찰상을 주문해왔다. '신사다운 검찰', '수준높은 검찰'이 그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검찰상은 아직 실체가 잡히지 않은 채 오히려 의구심이 솔솔 퍼지고 있다. 취임 후 의혹투성이인 효성 비자금 사건을 서둘러 종결하고, 한상률 전 국세청장 의혹 사건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것 등이 의구심의 배경이 되고 있다.

민주사회의 중추라 할 수 있는 언론과 검찰이 이처럼 극도의 불신을 받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당사자들은 사안에 따라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 탓을 할 수 있을까. 언론의 진영싸움과 검찰의 권력 눈치보기는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고질이 돼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한 전 총리 사건의 진실은 뭘까. 검찰이 어떤 수사결과를 내놓을지 모르지만, 검찰 발표를 그대로 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고 보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결과)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궁금하지만, 진실은 당사자와 하늘만이 알 터.

김상철 사회부장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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