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리포트]주문형 프린트 사업 만든 박혜윤 마켓프레스 대표 “어디든 원하는 대로 인쇄해요”

입력
2020.06.02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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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회]화가, 영화제작, VR 등 이색 경력의 박 대표 “코로나 뚫고 ‘마플’로 국내에 없던 독보적 시장 개척”

휴대폰이나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이용해 휴대폰 케이스를 만들 수 없을까. 직접 그린 예쁜 그림을 담요나 쿠션, 가방에 인쇄해 나만의 상품을 만들 수 없을까.

이럴 때 사람들이 찾는 곳이 있다. 박혜윤(43) 대표가 창업한 신생(스타트업) 기업 마켓프레스에서 운영하는 사이트 및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 ‘마플’이다.

図 1 화가, 영화제작, VR개발 등 독특한 경력의 박혜윤 마켓프레스 대표는 국내에 없던 소량 주문 제작이 가능한 주문형 프린터(POD) 시장을 만들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이용자가 급증했다"며 "전세계적으로 POD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켓프레스 제공
図 1 화가, 영화제작, VR개발 등 독특한 경력의 박혜윤 마켓프레스 대표는 국내에 없던 소량 주문 제작이 가능한 주문형 프린터(POD) 시장을 만들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이용자가 급증했다"며 "전세계적으로 POD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켓프레스 제공

◇’1개짜리 상품도 만들어줍니다’, 창작자들의 아이디어를 소량 제품으로 만들어 해외까지 판매

마플은 이용자나 디자이너들이 원하는 그림으로 상품을 소량 제작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주문형 프린트(POD) 서비스다. 이용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나 그림, 디자인 등으로 옷, 담요, 쿠션, 가방, 모자, 휴대폰 케이스 등 무려 600가지 상품을 만들 수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POD 시장을 개척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국내 경쟁자가 없는 독보적인 사업이에요.”

일반 제조업체에서는 비용이 맞지 않아 이런 상품들을 소량 제작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기존 제조업체에 의뢰하려면 생산비용을 뽑기 위해 수백 개 이상 많은 물량을 주문해야 한다. 그만큼 몇 개 또는 몇 십 개 단위로 만들어 소중한 기념품으로 간직하거나 시장성을 알아보기 위해 조금만 만들어 팔아보고 싶은 사람들은 이용하기 힘들다.

하지만 마플은 다품종 소량 생산이 가능하다. 한 개 단위로도 주문이 가능해 세상에 없는 나만의 휴대폰 케이스나 독특한 그림이 들어간 옷을 가질 수 있다. 또 서너 명이 일하는 음식점이나 상점, 소수 인원이 모이는 동호회 등에서 상표나 상호, 고유의 그림이 들어간 유니폼 같은 셔츠도 주문할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마플 사이트나 앱에서 원하는 그림과 사진 등을 올리고 필요한 상품을 선택하면 된다. 비용은 티셔츠의 경우 1벌당 1만5,000~2만5,000원, 휴대폰 케이스는 개당 1만5,900원 등이다.

마플은 개성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잘 맞아 떨어져 폭발적으로 이용자가 늘고 있다. 특히 유튜버들이 팬들과 나누기 위한 기념품을 공동 제작하거나 공동 구매용 상품을 소량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유일한 서비스여서 이용자들의 재방문율이 70% 이상입니다.”

이 점을 감안해 마켓프레스는 지난 3월 1인 창작자들을 위한 온라인 상점 ‘마플샵’도 열었다. 사업모델(BM) 특허를 출원한 마플샵은 소량 제작한 상품을 아예 판매까지 할 수 있는 온라인 장터다. 이 곳에서 창작자들은 자신의 디자인이 들어간 상품을 주문 생산해 판매 및 배송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판매가 손쉽다 보니 티셔츠 하나로 수백 만원 수익을 올린 창작자들도 있어요.”

판매 금액은 창작자들이 직접 정할 수 있다. “창작자가 남기고 싶은 수익을 정하면 마켓프레스에서 생산비용을 알려줘요. 그러면 이를 감안해 판매 가격을 결정하죠. 마켓프레스는 수익의 일부를 수수료로 받습니다.”

오히려 마플샵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더 주목을 받고 있다. 온라인 판매여서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상점 개설을 원하는 신청자가 몰리면서 벌써 마플샵 상점이 2,800개를 넘어섰다. 이 곳에서 판매되는 상품만 2만9,000종에 이른다.

놀랍게도 해외에서도 주문이 들어오면서 1인 창작자들의 소량 상품이 수출되고 있다. K팝 댄스로 유명한 아트비트, 55만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애니메이터 람다람 등 유명 유튜브 창작자들의 상품이 마플샵을 통해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마켓프레스는 최근 배송 국가를 기존 미국, 호주, 아시아지역 등 17개국에서 유럽, 남미권까지 확대해 91개 국가로 넓혔다.

그러나 마켓프레스는 마플샵 상점을 무조건 열어주지 않는다. 디자인의 저작권 문제 때문이다. “상점 개설을 신청하면 마켓프레스에서 저작권 침해 소지가 없는 지 내부에서 꼼꼼히 확인 후 상점 개설을 승인합니다.”

図 2마켓프레스는 서울 구로구 디지털로에 위치한 회사 1개층을 아예 공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티셔츠부터 모자, 휴대폰 케이스 등 600가지 제품을 소량 주문 제작할 수 있는 장비들이 빼곡하다. 마켓프레스 제공
図 2마켓프레스는 서울 구로구 디지털로에 위치한 회사 1개층을 아예 공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티셔츠부터 모자, 휴대폰 케이스 등 600가지 제품을 소량 주문 제작할 수 있는 장비들이 빼곡하다. 마켓프레스 제공

◇’화가에서 영화제작, VR 전공까지’ 박 대표, 독특한 이력으로 황당하게 벌인 사업이 성공

박 대표는 독창적인 사업만큼이나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서울예고를 나와 이화여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그런데 그는 그림을 못 그린다고 손사래를 쳤다. “원래 그림에 관심이 없었어요. 대학 가려고 그림을 그렸죠.”

정작 대학에서는 그림보다 게임에 빠져 살았다. “대학 시절 PC방이 등장했어요. 1년 내내 PC방에서 온라인 모의 전략게임 ‘스타크래프트’를 열심히 했어요.”

대학 졸업 후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방송과 영화분야에 취직했다. “모 지상파 방송사 홍보팀에서 1년 정도 일하다가 영구아트무비로 옮겼어요. 거기서 심형래 감독의 영화 ‘용가리’에 나오는 배경을 제작했죠.”

이왕이면 영화 일을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2003년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착각해서 전공을 잘못 선택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일리노이주립대 대학원에서 가상현실(VR)을 전공했어요. 영화 관련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공대였어요. 그 학교에서 저를 왜 뽑았는지 모르겠어요. 이공계 지식이 없다 보니 너무 힘들었죠.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밤 새워 공부하고 새벽에 귀가하는 생활을 3년 동안 했어요. 그래도 학위를 받아야 하니 열심히 공부했죠.”

대학원 졸업 후 VR과 상관없는 사업을 하게 된 것은 우연히 본 소량 제작 사이트 때문이었다. “개인의 디자인을 넣어서 제품을 만들어주는 사업이 재미있어 보였어요.”

박 대표는 일단 미국에서 소량 제작 상품을 주문 받는 사이트부터 만들어놓고 2007년 귀국했다. 그런데 막상 사업을 하려고 보니 국내에 소량 제작을 하는 공장이 없었다. “전국을 다 돌아다녔는데 소량 제작을 해주는 공장이 전혀 없었어요. 만 원짜리 찍어서 어떻게 돈 버냐며 다들 거절했어요. 한마디로 사업이 불가능했죠.”

이런 상황이면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박 대표는 엉뚱한 일을 벌였다. 인쇄업을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 덜컥 공장을 만든 것이다. “유튜브를 뒤져 셔츠에 인쇄할 수 있는 미국 티젯사 장비를 알게 됐고 이를 들여와 오피스텔에 설치했어요. 국내 유일의 소량 제작이 가능한 장비였죠.”

그때 장비를 들여오며 획득한 통관번호가 해당 업종의 고유번호가 됐다. 사실상 시장을 만든 셈이다. 이제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이 급부상하고 있다.

그렇게 박 대표는 국내 최초로 2008년에 POD 사업을 시작하고 관련 전문가들과 IT 개발자들을 영입했다. 독보적인 사업이니 잘 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서울 홍대 카페와 음식점들의 종사자들은 우리가 만든 옷들을 유니폼처럼 입었어요.”

각종 행사, 공연, 축제 등에서 단체 주문이 늘면서 이용자들의 요구가 늘었고 상품 종류도 증가했다. 그래서 장비를 더 늘릴 수 밖에 없었다. “미국, 유럽 등에서 한 벌 제작이 가능한 2,000만원대 소량 인쇄 장비부터 1억원을 넘어가는 고가 장비까지 들여오게 됐어요. 장비에 수억 원을 투자했죠.” 서울 구로구 디지털로에 위치한 회사의 1개층은 생산 장비로 가득 찬 공장이 됐다.

여기서 그쳤다면 마켓프레스는 공장에 머물렀겠지만 박 대표는 승부수를 던졌다. 사람들이 자동으로 주문 할 수 있는 정보기술(IT) 서비스, 즉 플랫폼을 만든 것이다. “자동으로 주문 받는 플랫폼이 없으면 많은 주문을 처리하지 못해 매출을 늘릴 수 없어요. 카카오 개발자들로 구성된 별도 개발팀을 두고 이용자들이 손쉽게 주문하고 인쇄가 정확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 프로세스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죠.”

박 대표는 다품종 소량 생산은 IT 플랫폼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유사한 IT서비스들은 생산과 유통을 중계하거나 유통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았죠. 마켓프레스는 제조에 유통까지 섞여 있는 독특한 플랫폼이에요. 이게 경쟁력이죠.”

図 3서울 구로구 디지털로에 위치한 마켓프레스 공장에서 개인마다 각기 다르게 주문한 휴대폰 케이스를 만들고 있다. 마켓프레스 제공
図 3서울 구로구 디지털로에 위치한 마켓프레스 공장에서 개인마다 각기 다르게 주문한 휴대폰 케이스를 만들고 있다. 마켓프레스 제공

◇코로나19로 엇갈린 명암, 단체 주문 줄었지만 개인 매출 늘어

박 대표는 올해 2배 이상의 연간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75억원이었고 올해는 150억원 이상을 겨냥하고 있어요. 연간 영업이익률은 15%를 예상합니다.”

변수는 명암이 엇갈리게 만든 코로나19다. “코로나19 때문에 각종 행사가 취소되면서 단체 주문 물량이 많이 줄었어요. 반면 개인 주문은 점점 늘고 있죠. 여기에 유통까지 겸하는 마플샵을 열면서 매출이 다각화된 셈이에요. 창작자들의 마플샵 매출이 늘어난 것은 코로나19의 긍정적 효과죠.”

박 대표는 올해 마플샵을 공격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공장도 늘릴 생각이다. “새로 투자를 받아서 공장을 확대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매출을 늘릴 수 있거든요. 더 큰 규모로 공장을 가동할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있어요. POD라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갔지만 플랫폼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가능성이 많은 시장을 연 셈이죠. 이제 시작입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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