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구멍 뚫린 공공재정환수법

입력
2020.05.27 04:30
27면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이익공유ㆍ고용안정을 전제로 기간산업에 40조원을 지원하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이익공유ㆍ고용안정을 전제로 기간산업에 40조원을 지원하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로 자금난을 겪는 기간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조성되는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이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다. 금융당국과 KDB산업은행이 오는 28일 첫 기금운영심의회를 개최하는데 여기서 지원대상과 지원조건 등이 확정되면 곧바로 실제 지원 대상 기업에 대한 심사절차가 시작될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각국이 천문학적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어 놓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유동성위기를 겪고 있는 기간산업에 대한 지원책을 강구하는 것은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막대한 정부의 재정이 투입되는데도 이에 따른 감시체계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기안기금은 국가가 재정을 직접 투입하는 대신 산업은행이 기금채를 발행해 기금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조성된다. 하지만 기금채의 원리금 상환을 정부가 보증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기안기금은 국가재정법상의 기금이 아니므로 기금운용 실적보고 의무도 없고 국회에 보고하는 절차도 없다고 한다.

높은 부채비율에도 불구하고 그룹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계열사 부당지원을 하였거나 대주주에게 거액의 퇴직금이나 상표권 사용료를 지급하는 등 사익편취행위가 여전한 상황에서 막대한 공적기금은 부실경영 책임을 덮고 총수일가의 배를 불리는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자금지원의 신속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므로 사전 심사 절차를 강화하는데 한계가 있다면 더욱 신경 써야 할 부분은 각종 부정을 적발하는 사후 감시 시스템이다. 기금을 신청하는 단계에서 사기 등의 부정이 있을 수 있고 기금으로 지원된 자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횡령이나 배임, 낭비 등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부정을 7명으로 구성된 기금운영심의회나 산업은행내 신설조직인 기안기금본부가 일일이 막아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법률이 바로 금년 1월부터 시행된 ‘공공재정 부정청구 금지 및 부정이익 환수 등에 관한 법률’, 약칭 ‘공공재정환수법’이다. 미국은 링컨 대통령시절인 1863년 남북전쟁 당시 연방보급품 구매 과정에서 군수품 업자들의 사기가 만연하자 이를 저지할 목적으로 ‘부정청구금지법 (False Claim Act)’을 제정했다. 공공재정환수법은 일명 링컨법으로도 불리는 미국의 부정청구금지법을 본뜬 법으로서 부정한 방법으로 국가 재정을 축낼 경우 해당 금액을 모두 환수할 수 있도록 하고 공익제보자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등 내부고발을 활성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포상금의 한도가 없고, 공익제보자가 직접 환수를 위한 소송 (Qui Tam Lawsuit)까지 제기할 수 있도록 한 미국의 부정청구법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공공재정환수법은 ‘나랏돈’을 눈먼 돈 인양 취급하는 폐단을 시정할 것으로 기대되는 법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무려 40조원에 달하는 기안기금은 이 공공재정환수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공공재정환수법이 보호하는 ‘공공재정’은 공공기관이 조성하거나 관리하는 금품 등을 말하는데 이 법에서 말하는 공공기관에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도 포함되기 때문에 산업은행의 기안기금도 공공재정의 범위에는 포함된다. 하지만 문제는 처벌이나 환수조치의 대상이 되는 ‘부정청구’가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상 보조금이나 국가재정법상 출연금 등으로 한정되어 있어 기안기금의 허위청구나 과다청구 또는 부정사용에는 공공재정환수법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40조원 규모의 기안기금 출범을 계기로 이제 막 시행된 공공재정환수법의 구멍이 확인된 셈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공공재정지출의 증가추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처럼 ‘부정청구’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공익제보자의 포상금 한도를 없애는 등 공공재정환수법을 강화하는 조치가 시급해 보인다.

김주영 변호사ㆍ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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