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무거워” vs “이불은 어디 담나” 100리터 쓰레기봉투 두고 시끌

입력
2020.05.28 08:00

 [시시콜콜What] “미화원들 건강에 위험” 비판에 지자체들 폐지 잇따라 

100ℓ 종량제 봉투를 사용한 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100ℓ 종량제 봉투를 사용한 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100리터 쓰레기봉투도 준비하셔야 해요.”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직장인 오모(30)씨는 이사를 앞두고 준비를 하던 중 종량제 쓰레기 봉투 여러 개가 필요해졌습니다. 기존 집에서 버릴 물건도 많았지만, 이삿짐 업체가 오씨에게 콕 집어 알려준 준비물 중 하나가 ‘10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였기 때문인데요. 이불 한 채는 들어갈 커다란 이 봉투는 쓰레기를 여러 개로 나눠 담지 않아도 돼 편리해 보였지요. 문제는 가득 찬 봉투를 옮길 때 생겼습니다. 막상 봉투를 들어 보니 20㎏짜리 쌀 한 포대와 맞먹는 무게에 진땀을 빼야 했던 거죠.

 환경미화원은 어쩌라고 

자주 쓰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쩌다 한 번 겪는 어려움이겠지만, 종량제 봉투를 매일 들어 옮겨야 하는 환경미화원들은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실제로 민주노총 경남본부 등 환경미화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단체들에 따르면 100리터 봉투는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의 허리 부상 등 근골격계 질환을 불러일으킨다고 해요. 또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환경부가 파악한 환경미화원의 안전사고 재해 현황에는 환경미화원의 15%(1,822명 중 274명)가 어깨와 허리 부상을 호소했다고 하지요. 이에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지난 3월 성명을 통해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 직업병 예방을 위해 노동자들의 허리를 휘게 하는 100리터 이상 일반용 종량제 봉투 제작 금지에 나서달라”고 촉구했어요.

 “우린 100리터 봉투 폐지합니다” 

문제가 표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해 초부터입니다. 환경미화원의 건강과 근로 환경 문제점을 인식한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100리터 봉투 제작을 중단하자 그 이유를 궁금해하는 주민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이유를 묻고 대답한 내용이 퍼지면서 인데요. 이에 동참하는 지자체도 늘었다고 해요.

경기 부천ㆍ용인ㆍ의정부ㆍ성남시, 광주 서구와 북구 등은 100리터 봉투 제작을 전면 중단하고 대신 75리터 봉투를 쓰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부터 100리터 종량제 봉투를 아예 제작하지 않고 있는 광주 북구는 지난해 기준 전년도 대비 75리터 봉투 판매량이 825% 증가했고, 반면 100리터 봉투 판매량은 75% 감소했다고 하고요. 이마저도 지난해 12월 이후부터는 판매량이 아예 없었다고 해요. 줄어든 봉투 용량만큼 가격도 줄어들었지요. 지난해 3월 기준 100리터 봉투는 3,640원이었던 데 비해 75리터 봉투는 2,730원입니다. 봉투 가격은 지자체마다 다르니 각 구청 등을 통해 확인하셔야 해요.

 “이불은 어쩌라고?” 

광주 북구 블로그
광주 북구 블로그

실제 환경미화원들의 근로 환경은 나아졌을까요? 광주 북구 청소행정과 관계자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확실히 100리터 봉투를 들 때보다는 나아졌다는 반응”이라고 밝혔습니다. 관계자는 “앞서 100리터 봉투를 사용하는 경우 특히 패스트푸드점이나 마트 등 기계로 압축해 쓰레기를 담는 곳은 무게가 무겁다. 조례로 25㎏까지만 담도록 정해져 있어도 30㎏을 넘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75리터 봉투도 비슷한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용량 자체가 100리터 보다 작다 보니, 전보다 확실히 나아졌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100리터 종량제 봉투가 없어져야 할 이유는 환경미화원의 건강과 직결하다 보니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데요. 일부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00리터 종량제 봉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불이나 큰 인형 등 대형 쓰레기를 버릴 때는 어떻게 하냐는 겁니다. 지자체에 따라 폐기물 봉투 또는 이불 전용 종량제 봉투가 마련된 곳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곳도 있다 보니 대안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용량 줄이면 뭐해, 더 무거운데 

게티이미지 뱅크
게티이미지 뱅크

용량뿐만 아니라 무게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관련 지침이 없는 건 아닌데요. 환경부에 따르면 100리터 종량제 봉투에는 쓰레기를 25㎏이하로 담도록 규정돼 있지만, 강제로 적용되는 게 아니다 보니 100리터 종량제 봉투 무게는 최대 45㎏까지 불어나기 쉽습니다.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성명에서 “무게 상한을 지자체 조례 등을 통해 제한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정부가 나서기 전, 각 가정에서도 스스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역 소식을 공유하는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100리터 종량제 봉투 사용법을 묻는 글에 “이불이나 인형 등 가벼운 것만 버려야 환경미화원의 부상을 줄일 수 있다”며 독려하는 글과 댓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고요. “가급적 50리터 봉투를 사용하자”는 대안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실천하기 크게 어렵지 않다면, 100리터 종량제 봉투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버릴 때도 편하고 수거하는 환경미화원도 안전하겠네요.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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