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갔다가 감염될라”… 이태원發 코로나 확산에 상경 기피

입력
2020.05.24 18:58
수정
2020.05.25 01:2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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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등 지방 기피 분위기서 역전… 자녀 자취방 못가고 반찬 택배로

서울 이태원 클럽발 ‘n차 감염’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4일 용산구 이태원 우사단로에 ‘유흥주점, 클럽, 콜라텍은 집담감염 위험시설’이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1
서울 이태원 클럽발 ‘n차 감염’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4일 용산구 이태원 우사단로에 ‘유흥주점, 클럽, 콜라텍은 집담감염 위험시설’이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1

“아빠, 서울 안 가면 안돼요? 그래도 간다면 꼭 마스크 쓰고 다녀요!”

“수도 서울이 뚫리면 대한민국이 뚫린다”던 서울시의 방역구호가 현실화 하고 있다. 이태원발 ‘n차감염’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이른바 ‘서울 기피’ 현상도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2월 말 신천지대구교회 신도들을 중심으로 한 집단감염 확산에 일었던 ‘대구 기피’ 현상이 이번에는 수도 서울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3일 대구에서 서울로 교육출장을 다녀간 A씨는 “이태원 클럽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차단이 급선무로 떠오르면서 ‘서울 기피’ 분위기가 나올 정도로 태세가 역전됐다”고 전했다. 신천지 사태 당시에는 일각에서 ‘대구를 봉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곱지 않은 시선이 팽배했다.

이태원 클럽, 학원강사, 보습학원, 코인노래방, 뷔페 식당, 택시 등을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차별 확산하자 서울로 발길을 끊는 이들이 늘고 있다.

부산에 사는 회사원 이모(50)씨도 그 중 하나다. 그는 서울 강남에서 내달 5일 열리는 대학 동기 모임에 가지 않기로 했다. 이씨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잇따라 나오는 서울로 가는 게 영 찜찜하다”며 “대구 사는 동기는 ‘어떻게 지금 시기에 서울에 가느냐’며 만류하고 나설 정도로 ‘서울 기피’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전에서 사업을 하는 김모(49)씨도 6년 넘게 매년 봄마다 재경 선배 사업가들과 함께 갖던 서울 모임도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딸을 둔 충북 청주시의 가정주부 이모(54)씨는 서울행 버스에 오르는 대신 수시로 우체국을 찾는다. 열흘에 한 번 꼴로 직접 음식을 싸들고 딸의 서울 자취방을 찾았는데 이태원 클럽발 확진자가 쏟아진 이후 서울 발길을 끊었다. 지난 22일에도 그는 딸이 제일 좋아하는 육개장과 고추튀김을 만들어 택배로 부쳤다. 이씨는 “딸이 자취방 근처 커피숍을 다녀간 학생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면서 서울에 오지 말라고 하고 있고, 나도 못 이긴 척 딸 말을 듣고 있다”며 “코로나19 사태가 어서 진정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원 클럽발 7차 확진자까지 나온 현재 서울에서 오는 사람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이모(35)씨는 최근 제주에 사는 부모님 생신 축하를 전화 한 통으로 대신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가족들과 제주 나들이 삼아 어른들을 찾았던 그다. 그는 “제주는 코로나19 청정지역인데 서울에서 간 나 때문에 코로나19가 퍼질까 봐 걱정이 보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ㆍ경기 지역에 자녀를 유학 보내 놓고 있는 지방 학부모들은 직접 차를 몰아 ‘자식 구하기’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부산에 사는 김모(45)씨는 최근 자녀가 다니던 경기의 한 기숙재수학원까지 왕복 8시간 거리를 직접 차를 몰았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학원이 잠정 휴업에 들면서 자녀를 직접 데리러 오라는 학원 측 요청을 받았다”며 “쏟아지는 신종 코로나 확진자 뉴스를 보니 직접 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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