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K스포츠 신드롬’의 경고

입력
2020.05.2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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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의 KBO리그 중계 화면. ESPN 중계방송 캡처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의 KBO리그 중계 화면. ESPN 중계방송 캡처

“이런 날도 있네요.”

요즘 스포츠 현장 취재를 가면 구단ㆍ기관 관계자들이 하는 말이다. 비록 관중석은 텅 비었고 선수단과 접촉도 제한돼 경기장은 썰렁하지만 전 세계로 송출되고 있는 ‘언택트(untact) K스포츠’의 파급력에 대한 반응이다.

프로야구로 점화된 해외 팬들의 관심은 프로축구로 옮겨 붙어 축구 종가 영국을 비롯 중국,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이미 36개국에서 K리그 경기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7일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챔피언십은 호주 캐나다 일본 뉴질랜드 등에 중계권이 판매됐고, 화면에는 영어 이름까지 표기됐다. 우리가 1997년 박찬호와 박세리를 보며 외환위기를 극복한 것처럼 외국인들도 코로나19로 인한 상실감을 K스포츠로 달래는 분위기다.

K스포츠의 선두에 있는 K베이스볼의 열풍은 놀랍다. 선수 분석부터 구단별 팬투표에 이르기까지 KBO리그를 완전히 ‘분해’하고 있다. ‘빠던(빠따 던지기)‘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다.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의 모창민이 홈런을 치고 배트를 뒤로 집어 던지자 이를 미국 전역으로 중계하던 해설자는 “와우, KBO리그 첫 배트플립(bat flip)이네요”라며 흥분한다. 메이저리그에선 투수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해 빈볼로 응수하지만 한국에선 당당한 홈런 세리머니다. KBO리그를 매일 생중계 중인 미국의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은 한술 더 떠 ‘이 주의 배트플립’을 선정해 발표할 정도니 어지간히 신기한 모양이다. 미국팬과 미디어는 메이저리그도 화려한 배트플립을 용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예상치 못했던 ‘한류’는 다방면으로 퍼져 있다. 국내에선 아직 많은 팬덤을 확보하지 못한 NC 구단의 경우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주의 약자와 같다는 이유로 많은 노스캐롤라이나 지역 팬을 흡수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시를 연고로 하는 마이너리그 팀 더럼 불스는 트위터에 “이제부터 여기는 NC 다이노스의 팬 계정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현지 시민단체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지역번호 919와 초식공룡 트리케라톱스를 조합한 이미지를 제작해 NC에 “새로운 마스코트로 삼아 달라”는 요청까지 했다니 반갑고도 ‘당황’스럽다.

올 초 코로나19가 확산되고 팬데믹이 선언되면서 세계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와 질병관리본부, 또 이에 따른 지침을 잘 준수한 한국의 ‘K방역’은 경이롭다는 극찬을 받았다. 전 세계에서는 사실상 올스톱된 스포츠 역시 한국에서만 재개되면서 벌어지고 있는 믿기 힘든 현실이다.

한국 스포츠가 세계의 중심에 설 줄 누가 알았겠나.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려는 국내 스포츠계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프로축구연맹은 K리그 일부 경기를 영어 해설 자막을 곁들여 유튜브와 트위터로 전 세계에 생중계하고 있다. 여행업계에선 K스포츠를 관광 상품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하지만 지나친 시선은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영국 BBC는 K리그 FC서울의 ‘리얼돌 논란’을 자세하게 보도해 온 국민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다. KBO리그에선 개막 초반부터 오심 논란으로 심판 6명이 2군으로 강등됐는데 이 역시 외신에 고스란히 보도됐다. 평소라면 우리끼리 한바탕 소동으로 끝낼 수 있는 감추고 싶은 민낯마저 생생하게 전파된 셈이다.

시간은 많지 않다. 문화 차이에서 오는 그들의 호기심은 어느 순간 바닥날 것이고 메이저리그, 프리미어리그가 다시 열리면 열기도 사그라들 것이다. 감염자 발생 없는 방역 리그 완주가 첫 번째지만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작은 흠까지도 방지해 언제 다시 올지 모를 K스포츠의 호황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성환희 스포츠부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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