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본다, 고전] 건조한 묘사가 주는 슬픔… 전쟁 속에서 쌍둥이 형제가 남긴 ‘비밀노트’

입력
2020.05.15 04:30
19면

 ※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다시 조근조근 얘기해 봅니다. 작가들이 인정하는 산문가, 박연준 시인이 4주마다 ‘한국일보’에 글을 씁니다 

 <28>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 ⓒYvonne Bohler / Editions Zoe 한겨레출판 제공
아고타 크리스토프 ⓒYvonne Bohler / Editions Zoe 한겨레출판 제공

이 소설은 우선 재미있다.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부터 눈을 뗄 수가 없다. 긴 분량을 다 읽을 때까지, 무얼 하든 이야기가 몸에 붙어 따라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아고타 크리스토프(1935-2011)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얘기다. 소설이 ‘재미’라는 요소를 획득하려면 주인공이 매력적이거나 시종일관 흥미로운 사건이 일어나거나 작가의 문체가 작품의 완벽한 옷이 되어 읽는 이를 끌어당겨야 한다. 이 소설은 세 가지를 다 충족시킨다.

“우리는 대도시에서 왔다. 밤새 여행한 것이다. 엄마는 눈이 빨개졌다. 엄마는 커다란 골판지 상자를 들었고, 우리는 각자 작은 옷 가방을 하나씩 들었다. 아버지의 대사전은 너무 무거워서 우리 둘이 번갈아 가며 들었다.” (9쪽)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흥미로운 것은 화자가 한 목소리를 내는 둘이란 점이다. 화자인 ‘우리’는 루카스와 클라우스, 어린 쌍둥이 형제다. 전쟁이 터져 국경 근처의 시골 할머니 집에 맡겨진 이들은 매일 훈련을 한다. 욕을 먹어도 무감각해지기, 얻어맞아도 무감각해지기,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기…. 그들은 연습을 통해 강한 존재가 되어 간다. 1부 ‘비밀 노트’는 쌍둥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기록하는 이야기다. 그들에게 기록, 즉 글쓰기는 중요한 임무이자 일과다.

“우리가 ‘잘했음’이나 ‘잘못했음’을 결정하는 데에는 아주 간단한 기준이 있다. 그 작문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들,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한 일들만을 적어야 한다.” (35쪽)

쌍둥이는 감정을 나타내는 말을 믿지 않는다. 감정을 나타내는 말의 모호성 때문이다. 가능한 “사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를 사용해 비밀 노트를 작성한다. 전쟁 중에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판단하지 않고 쓴다. 생각하지 않고 쓴다.

무자비할 정도로, ‘있는 그대로의 상황 묘사’ 앞에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슬픔도 독자의 몫이다. 쌍둥이는 괴로움, 절규, 황망함을 취하지 않고 우리에게 넘겨준다. 죽은 사람, 죽어가는 사람, 인색한 사람, 타락과 슬픔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신부, 핍박 받는 언청이 처녀, 헤어진 가족, 삶의 기형적인 모습, 그 속에서 방치된 채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아이들의 처절한 성장을 기록한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1986년 1부 ‘비밀 노트’를 발표하고, 5 년여에 걸쳐 차례로 ‘타인의 증거’와 ‘50년간의 고독’을 발표해 3부작을 완성한다. 세 이야기는 이어져있지만, 각각 독립된 이야기로 읽어도 무방하다.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진실은 모호해지고, 무엇이 거짓말인지 확신할 수 없다.

“이 소설은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중략) 이 소설에서 기술하고자 했던 것은 이별―조국과, 모국어와, 자신의 어린 시절과의 이별―의 아픔이다. 나는 가끔 헝가리에 가지만, 어린 시절의 낯익은 포근함을 찾아볼 수가 없다. 어린 시절의 고향은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는 느낌이 든다.” (559쪽, 작품해설에서 ‘작가의 말’ 인용)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ㆍ용경식 옮김 

 까치발행ㆍ560쪽ㆍ1만6000원 

짧고 건조한 문체 때문에 작가가 심어놓은 블랙 유머, 압축해 놓은 듯한 슬픔이 더 돋보인다. 그녀는 일찍이 헝가리어(모국어)로 시를 썼고, 스위스 망명 후엔 프랑스어로 글을 썼다. 시 쓰기로 단련했을 문장, 외국어로 쓰는 일의 낯선 감각이 밴 탓일까. 그의 문체는 독특하다. 20년 전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땐 내용과 형식 면에서 ‘충격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했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얼마 전 다시 읽었을 땐 참을 수 없이 슬픈 이야기라 생각했다. 읽다가 여러 번 울었다. 충격과 슬픔 사이, 20년이 흘렀다. 소설이 변할 리는 없으니 아마도 내가 변했으리라.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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