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창(窓)] 우리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입력
2020.05.12 18:00
수정
2020.05.12 18:11
26면

백악관 사이트에 등장한 한국 총선 조작설

국내문제 외세 의존하던 구한말 연상케

달라진 위상에 걸맞은 국격 갖춰야

제21대 국회의원선거일인 지난달 15일 서울 영등포 다목적 배드민턴체육관 개표소에서 개표가 시작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21대 국회의원선거일인 지난달 15일 서울 영등포 다목적 배드민턴체육관 개표소에서 개표가 시작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달 미국 백악관 청원 사이트에 한국 관련 청원 하나가 올라왔다. “한국의 총선이 조작”되었으니, “도와달라”는 것이다. 5월 18일 현재 이 청원 서명은 10만건을 넘어섰다.

선거는 근대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치과정 중 하나이다. 근대국가는 민족자결과 민주주의에 기반한다. 민족자결이란 한 국가의 의사는 그 국민이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결정의 방법으로 대부분 국가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선거로 실현된다.

민족자결과 민주주의의 실현 수단인 선거에 조작이 있다면 이는 중대한 문제이다. 국가의 기초가 흔들릴 수 있다. 하나 아무리 중대해도 이 문제는 ‘우리’ 문제이다. 다른 나라에 청원할 일이 아니다.

우리 문제를 남에게 해결해 달라 하면 민족자결과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우리 의사를 스스로 정하겠다는 것이 민족자결이고 민주주의인데, 그 의사결정을 못하겠으니 남더러 ‘도와달라’ 하면 민족자결과 민주주의가 유지될까?

우리나라에는 언론자유와 사법절차가 있으니 조작이 의심되면 토론할 수 있고,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잘못이 있으면 고칠 수 있는 정상적 절차가 이미 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 뭘 도와달라는 것인가?

우리 문제를 남에게 해결해 달라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1882년 부정부패에 분노한 조선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당시 조정은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청의 무력 개입으로 반란은 진압됐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들어온 청군은 나가지 않았고, 청나라는 사사건건 내외정에 간섭하며 노골적으로 조선을 “속국”이라 했다. 10여년뒤 학정에 분노한 동학교도들이 들고 일어섰을 때 조선 왕실은 또 외세를 불러들였다. 수많은 백성이 속절없이 희생당했다.

청이 일본에 패퇴하자 고종은 러시아에 몸을 맡겼고 이후에는 미국이 조선을 지켜 줄 것이라는 허황된 꿈을 꾸기도 했다. 결국 힘을 키운 일본이 청과 러시아를 누르고 영미와 타협하여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다. 이것이 총 한 번 제대로 못 쏴 보고 조선왕조가 멸망한 과정이다. 수십 년 동안 스스로 힘을 키우지 못하고 외세에만 의존하다 결국 식민지가 됐다.

아마도 백악관 청원에 서명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소위 보수세력일 것이다. 그들은 대한민국 보수의 시조 격인 이승만과 박정희가 미국에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이미 잊은 것 같다. 이승만은 미국을 잘 알고 이용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미국과 대결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반공포로를 북송하겠다는 미국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반공포로 석방으로 대응한 것이 이승만이다. 베트남전 말기 미국이 방위공약을 약화시키자 박정희는 미국에 애걸복걸하지 않았다. 미국 유력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대놓고 핵개발 의사를 천명했다.

미국에 의존하는 태도는 문재인 정부라고 다를 것이 없다. 남북교류가 중요하다더니 집권 3년간 미국 허락을 못 받아서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 해결도 트럼프 대통령 입만 쳐다본다. 정녕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인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면서 대북 억지력은 맨날 미국에 의존만 하려 하니 미국이 방위비를 터무니없이 올리자 해도 수세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천명했을 때 식민 치하에 신음하던 전세계 피압박 인민대중들이 환호했다.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민족자결의 요구는 제국주의의 총칼에 짓밟혔다. 민족자결이 아무리 고귀한 원칙이라 한들 독립과 자존은 외세가 선물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보든 보수든 이제는 이 간단한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 인구가 많아지고 경제가 커졌다고 기뻐하기만 할 일이 아니다. 달라진 위상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적 각오가 필요하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각오를 다질 때 비로소 우리의 높아진 경제적 위상에 걸맞은 정치외교상의 국격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ㆍ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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