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분쟁지역] 18년만의 아프간 평화협정... 신뢰가 없었다

입력
2020.05.02 07:00
19면
2월 29일 카타르 도하에서 진행된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무장조직 탈레반 간 평화협정 서명식에서 잘마이 칼릴자드(왼쪽) 미국 아프간 평화특사와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 탈레반 수석대표가 협정문에 서명하기 전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도하=AP 연합뉴스
2월 29일 카타르 도하에서 진행된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무장조직 탈레반 간 평화협정 서명식에서 잘마이 칼릴자드(왼쪽) 미국 아프간 평화특사와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 탈레반 수석대표가 협정문에 서명하기 전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도하=AP 연합뉴스

올해 2월 29일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무장반군조직 탈레반은 카타르 도하에서 ‘아프간의 평화 도래를 위한 협정’(평화협정)에 서명했다. 9ㆍ11 테러 이후 약 18년7개월만이다. 그러나 체결 불과 두 달 만에 결렬 위기가 찾아왔다. 미국과 탈레반, 아프간 정부 사이의 ‘신뢰의 위기’가 그 핵심 이유다.

평화협정에서 탈레반은 알카에다와 관계를 절연하는 등 아프간 영토가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활동 무대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고, 미국은 그 대가로 아프간에 파병된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의 국제동맹군을 14개월 내로 모두 철수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사자 간 신뢰 확인 절차이자 본격적인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마련됐던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 간 포로 교환에서부터 진전이 없다. 양측의 의견 대립은 물론이고 아프간 정부 내 권력 갈등 탓에 약속한 포로 교환 기일(3월 10일)은 이미 지났다. 아프간 내 폭력이 다시 잦아지면서 평화협정에도 암운이 짙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8일 추수감사절을 맞아 아프가니스탄 파르완주에 위치한 미국 바그람 공군기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아프간 철군을 줄곧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2월 탈레반과 체결한 평화협정을 계기로 조속한 철군을 원하고 있다. 파르완=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8일 추수감사절을 맞아 아프가니스탄 파르완주에 위치한 미국 바그람 공군기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아프간 철군을 줄곧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2월 탈레반과 체결한 평화협정을 계기로 조속한 철군을 원하고 있다. 파르완=AP 연합뉴스

◇18년 ‘전쟁 피로감’서 탈출하고 싶은 당사자들

미국은 2001년 9ㆍ11 테러 직후 ‘테러와의 전쟁’을 기치를 내걸고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과 이를 비호하는 탈레반 정권을 축출한다는 명분으로 아프간전쟁을 시작했다. 이는 아직도 공식 종전이 되지 않아 미 역사상 최장기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아프간으로서는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1979년 소련의 침공 이후 40년간이나 전쟁 상태에 빠져 있다.

그 해 소련군이 아프간을 침략해 공산화시키자 미국은 소련에 맞서 싸운 이슬람반군 무자헤딘을 지원했고 결국 1989년 소련은 철수했다. 이후 아프간 내 정치적 혼란이 계속됐고 1994년 남부에서 순수 이슬람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탈레반이 등장해 권력 공백을 빠르게 메웠다.

탈레반은 1996년 아프간 수도 카불을 점령해 소련의 꼭두각시 정권으로 평가받던 나지불라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어 1998년에는 아프간 영토의 90% 이상을 통제해 집권에 성공했다. 이후 이슬람 율법에 따라 TV 시청과 음악 청취 등을 금지하고,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등 강압적 통치를 자행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빈 라덴은 ‘슈퍼 테러’를 준비했던 것이다.

테러 직후 빈 라덴을 넘기라는 요구에 탈레반이 불응하자 ‘공세적 현실주의’를 대외정책 기조로 삼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1년 10월 7일 아프간을 침공했고, 같은 해 12월 탈레반 정권은 무너졌다. 그럼에도 탈레반은 2004년쯤부터 다시 세력를 확장해 현재는 국토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와 탈레반 사이에 끼어있는 아프간 정부는 평화협정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협상 과정에서 자신들이 소외된 점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18년 넘게 이어진 전쟁이 모두에게 극도의 피로감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브라운대의 ‘전쟁비용 프로젝트’ 연구에 따르면 2001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민간인, 미군ㆍ동맹군, 아프간 군ㆍ경, 무장조직, 인도주의 활동가 등을 포함해 총 15만7,000여명이 아프간전에서 목숨을 잃었고 이 가운데 4만3,000여명은 민간인이었다.

전비도 천문학적이다. 2001년 전쟁 시작 이래 미국이 지출한 공식적인 비용만 총 8,220억달러로 추산된다. 하지만 미군의 아프간전 작전기지인 파키스탄에서의 지출 등 각종 비용을 모두 고려하면 총 비용은 2조달러(2,435조원)에 육박한다는 게 브라운대의 추정이다. 이러한 전쟁 피로감이 당사자 모두에게 평화협정 체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아프가니스탄 무장반군조직 탈레반의 포로 수감자들이 지난 8일 수도 카불 북부의 바그람 교도소에서 석방 절차를 밟고 있다. 카불=로이터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무장반군조직 탈레반의 포로 수감자들이 지난 8일 수도 카불 북부의 바그람 교도소에서 석방 절차를 밟고 있다. 카불=로이터 연합뉴스

◇분쟁에서 평화협정, 평화협정서 다시 분쟁으로?

물론 이전에도 평화를 위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01년부터 아프간 과도정부 수반을 지냈고 2004년 초대 대통령에 당선됐던 하미드 카르자이는 2009년 재선에 성공한 뒤 평화협상의 운을 뗐다. 카르자이 정부는 2010년 9월 평화협상 담당기구인 아프간 고위평화위원회(HPC)를 설립하고, 2013년에는 미국의 제안에 따라 도하에 ‘탈레반 정치사무소’를 설치하는 등 유의미한 진전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카타르가 미국ㆍ탈레반 간 직접 대화를 중재하면서 아프간 정부가 들러리로 전락하자 카르자이 정부는 양측의 직접 대화를 반대하고 나섰다. 이어 2015년 7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은 내전 14년만에 첫 공식회담을 열지만, 탈레반의 테러 등 악재로 이마저도 곧바로 동력을 상실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2018년 중반부터 미국과 탈레반의 직접 대화가 수 차례 이뤄지면서 다시 기대감이 커졌다. 탈레반의 자살테러 등에 대화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올해 2월 양측은 대화 재개를 선언하고 일종의 숙려기간인 7일간의 ‘폭력행위의 대대적 축소’에 합의했다. 합의가 지켜질 경우 미국ㆍ아프간 정부ㆍ탈레반이 평화협정에 서명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를 ‘괴뢰정권’이라고 비판하며 배제하려 했고,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의 근본주의를 비판하며 믿을 수 없다고 맞섰다. ‘신뢰의 위기’가 디시 한번 발목을 잡은 것이다. 결국 일주일 뒤인 2월 29일 미국과 탈레반 측 대표만 서명해 반쪽짜리 평화협정이 되고 말았다.

협정 체결 후 후속작업으로 예정됐던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간 ‘포로 교환’ 협상도 진척이 더디다. 당초 국제동맹군ㆍ아프간 정부군에 수감된 탈레반 대원 5,000명과 탈레반에 포로로 잡힌 아프간군 1,000명을 3월 10일까지 교환하기로 했지만, 도통 진전이 없자 탈레반은 4월 초 “성과 없는 회담”이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이 이달 초부터 각각 360여명, 60명의 상대 측 포로를 석방해 협상의 불씨는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위기로 당사자 간 대화가 아예 멈춘데다 최근에는 정부군과 탈레반 간 무력충돌이 다시 급증해 매일 수십 명씩 인명피해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까지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이유로 예정보다 더 빠른 미군 철수를 밀어붙이고 있어, 아프간의 ‘지속가능한 평화’ 구상은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외곽지역에서 29일 아프간 정부군 기지를 겨냥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민간인 최소 3명이 숨지고 15명이 부상한 가운데 테러 발생 장소에서 한 아프간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외곽지역에서 29일 아프간 정부군 기지를 겨냥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민간인 최소 3명이 숨지고 15명이 부상한 가운데 테러 발생 장소에서 한 아프간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적극적 평화 추구해야 지속가능한 평화가 온다

많은 국제 정치학자나 역사학자들은 세계사를 ‘전쟁과 평화의 역사’라고 말해왔다. 평화를 세력균형ㆍ집단안보ㆍ군비통제ㆍ억지 등 군사력에 의한 전쟁 부재 상태로 인식하는 ‘소극적 평화’는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과 같다. 반면 평화론자들은 정의가 존재하는 구조적 폭력이 없는 상태, 발전ㆍ복지ㆍ평등을 담보하는 ‘적극적 평화’ 체제를 구축할 때에만 지속가능한 평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2달 전 체결된 아프간 평화협정은 사실상 소극적 평화를 목표로 한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당사자들 상호 간 ‘신뢰의 결핍’ 탓에 본질적으로 매우 취약한 협정이었다. 미국과 탈레반 간,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간 평화협정에 대한 입장은 이념적ㆍ종교적ㆍ정책적 측면에서 너무 상이한 탓에 평화협정과 분쟁의 사이클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정상률 명지대학교 중동문제연구소 HK 교수ㆍ한국중동학회회장
정상률 명지대학교 중동문제연구소 HK 교수ㆍ한국중동학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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