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창(窓)] ‘흔들리는 북한정권’에 대한 위험한 환상

입력
2020.04.28 18:00
26면

北 정권 취약해지면 오히려 핵 의존 커져

급변사태 대비하되 지향해선 곤란

김정은 건강이상설 불구, 대북정책 일관돼야

김일성 주석ㆍ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 뉴스1
김일성 주석ㆍ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 뉴스1

북한의 딜레마는 핵무기, 경제발전, 절대권력체제, 세 가지 모두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이상 대북 제재가 지속될 것이고 북한은 현 체제를 유지할 수는 있어도 경제발전을 추구하기는 어렵다. 올해 초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 관한 보도는 “적대 세력들의 제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정면돌파전을 감행해야 한다고 논하고 있다. 문제는 대북 제재 속에서 경제의 “장애와 난관” 이 지속되는 가운데 언제까지 절대권력체제가 지속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비핵화의 길로 나서면 경제를 발전시키고 현 체제를 유지할 가능성은 있다. 효율적이면서 실용적인 정책으로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내부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를 포기했을 때 정권의 정당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미국과 협상을 벌인 상태에서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성공한 핵개발에 대한 반대급부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불만이 싹틀 수 있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하노이 협상 결렬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군부와 핵 과학자로부터 핵을 포기하지 말라는 수천 통의 청원 편지를 받는 등 내부 반대에 부딪혀왔다고 공개했다.

북한의 핵 포기는 경제발전은 물론 체제 보장에 대한 확신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전원회의 보도는 미국의 소위 대북 적대시 정책 속에서 “가시적 경제성과와 복락만을 보고 미래의 안전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하여 단기적 경제보상에 대한 회의를 표하고 있다. 비핵화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다양한 요구에 직면할 것이다. 주민들의 충분한 생활 개선, 군부를 포함한 엘리트층의 만족, 체제 유지에 필요한 정당성 확보 등이 관건이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이들을 극복할 충분한 정치 권력이 확보되었다고 확신해야 비핵화의 길로 나설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경제발전이 북한의 체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 대외 개방도 불가피해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이 절대권력체제를 유지하려면 전면적 이행기를 관리, 통제해 나갈 강한 리더십과 최소 지배연합이 유지되어야 한다. 결국 핵 포기 이후 정권 유지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강한 북한 정권이 존재해야 비핵화 협상이 진전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은 북한 정권이 취약해질수록 핵을 포기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북 제재와 군사력 불균형, 경제적 난관 등에 의해 북한 스스로 약체화되었다고 판단하면 더욱 핵에 기댈 것이다. 이는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안보 딜레마로 연결된다. 한국은 안보 태세를 강화하고 군사력 우위를 추구하며 한미동맹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다시 핵 증강에 의존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북한이 약화되면 비핵화로 활로를 모색하거나, 내부 분란으로 흡수 통일 당할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누구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지만 정책 수립에서 이러한 상황들을 상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한국은 북한의 두 지도자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때마다 북한의 급속한 약화에 대한 기대를 걸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는 한국에 대한 불신을 학습했고 핵개발은 가속화되었다. 한국의 대북 전략은 일관될 필요가 있다. 급변 사태에 대비하되 지향하지는 않으며, 북한의 핵 포기를 추구하되 북한의 약체화에 비합리적 기대를 걸 수 없다. 북한 정권의 성격보다 북한의 정책, 남북관계 발전, 북한과 국제사회의 관계가 핵심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로 한국과 국제사회가 요동치고 있지만, 김정은의 북한이든, 김정은 이후의 북한이든 대북 전략의 큰 줄기는 일관되어야 한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는 대북 전략에 대한 시민사회의 큰 줄기를 보여 준다. 군사적 억제와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하되 무리한 흡수 통일과 높은 통일 비용을 피하고 장기적인 화해 협력과 통일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진보, 보수의 대립이 문제가 아니라 진보, 보수가 힘을 합쳐도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충분한 정책수단이 있는지가 문제이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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