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24시] 미국 가정폭력 신고 감소에 위험 경보 “가해자 감시 탓”

입력
2020.04.26 14:00
수정
2020.04.26 19:02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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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로 자택 대피 이후

LA 18% 뉴욕 15% 줄어 예상 밖

상담소 폐쇄ㆍ경찰 방문 중단

외부에 피해사실 알릴 방법 없어

미국 일부 대도시에서 코로나19로 자택대피 명령이 내려진 기간 가정폭력 신고가 줄었지만 신고조차 못하는 상황이 많을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일부 대도시에서 코로나19로 자택대피 명령이 내려진 기간 가정폭력 신고가 줄었지만 신고조차 못하는 상황이 많을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자택대피 명령이 내려진 기간 미 국 일부 대도시에서 가정폭력 신고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길거리 범죄는 감소하는 반면, 가정폭력은 훨씬 심각해질 것이란 당초 우려와 상반된 결과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사법당국과 전문가들은 오히려 신고 감소를 더 위험한 신호로 보고 있다. 가정폭력범과 피해자들이 함께 지내면서 아예 신고조차 못하는 처지에 있다는 판단에서다.

25일(현지시간) ABC방송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LA)시에서는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15일까지 가정폭력 신고가 전년에 비해 18% 감소했다. 마이클 무어 LA 경찰국장은 “가정 내 학대 신고가 하루에 10건 정도 더 줄었다”며 “이는 막후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과는 잘못된 방향을 가리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시의 경우도 지난달 가정폭력 신고가 전년 대비 15% 감소했고, 퀸스 지역은 거의 40% 줄었다고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퀸스 멜린다 카츠 지방검사는 “수치가 소름 끼친다”며 “피해자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신고하느냐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여겨진다”고 말했다.

사법당국 등은 코로나19 사태로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외부로 폭력 사실을 알리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고 확신하고 있다. 주변 상점들이 문을 닫아 당장 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 달려가 도움을 청할 곳이 딱히 없고, 가정폭력법률센터 및 상담소 역시 폐쇄돼 전화 신고 방법밖에 없는데, 폭력범이 하루 종일 감시해 수화기를 드는 일조차 여의치가 않다는 것이다. 또 사회복지사나 경찰의 가정 방문이 폭력 사실을 파악하는 주요 통로였으나 이 같은 절차도 중단돼 피해자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기회를 잃고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코로나19 감염 가능성 탓에 집을 나와 쉼터로 대피하는 선택도 주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가리타 구즈만 ‘폭력중재프로그램’ 상임이사는 “폭력 피해자들이 악마와 같이 집에 있을지, 아니면 쉼터에서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감수할지를 놓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LA시는 가정폭력 실태가 더 악화한 것으로 판단하고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캠페인에 들어갔다. 전화 대신 문자로 가정폭력을 신고하는 방법을 담은 홍보물을 편의점 등에 게시하고, 배달원이나 우체국 직원 등에게 폭력 징후를 발견하면 경찰에 알리도록 권고하고 있다. LA카운티 마이크 퓨어 지방검사는 “전례 없는 감염병 사태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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