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수상한 호출… 회유… ‘총선 후 사퇴’ 약속 미적대다 결국 퇴진

입력
2020.04.23 17:29
수정
2020.04.24 19:5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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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집무실서 성추행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오전 부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시장직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자리를 뜨고 있다. 연합뉴스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오전 부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시장직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자리를 뜨고 있다. 연합뉴스

오거돈 부산시장이 여직원 성추행 사실을 인정, 전격적으로 시장직에서 사퇴하면서 그 배경과 사건 전말이 주목되고 있다.

23일 부산시 관계자 등에 따르면 발단은 이달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 시장은 수행비서를 통해 시청 시장집무실로 여직원 A씨를 불렀다. A씨는 처음 있는 일이라 의아했지만 오전 업무시간이었던 만큼 업무상 호출로 생각, 서둘러 집무실로 갔다.

집무실로 온 A씨를 오 시장은 신체 일부를 만지며 추행했다. 오 시장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한 사람에게 5분 과정의 짧은 면담 속에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했다”고 밝혔다.

사건 발생 이후 오 시장은 주변 사람을 통해 회유를 시도했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다. A씨는 부산성폭력상담소에 피해 사실을 알렸다. ‘명백한 성추행이었고, 법적 처벌을 받는 성범죄인 강제 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상담소 측은 부산시청 관계자를 통해 피해 사실 확인 작업을 거쳤고, 오 시장 측은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다.

이에 A씨는 “이달 안으로 시장이 공개적인 사과를 하고 시장직에서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 부산시는 이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피해 여성의 요구사항을 따르겠다는 내용의 ‘사퇴서’를 만들어 상담소와 피해 여직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사퇴서의 법적 효력을 담보하기 위해 부산의 한 법무법인을 통해 가족의 입회 하에 ‘공증’ 절차를 밟았다.

당시 4ㆍ15 총선이 임박한 시점이라 부산시는 총선 이후 절차를 진행하자고 제안했고, A씨도 성추행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원하지 않아 부산시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오 시장 사퇴 이후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치권의 어떠한 외압과 회유도 없었고, 정치적 계산과도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또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 시장의 사퇴를 요구했다”고 했다.

A씨는 오 전 시장 측에 사퇴 사유에 추행 사실을 명확히 밝히고 선거 후, 4월 말 전 사퇴를 요구했다. 사퇴 관련 기자회견을 하면서 오 시장은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바로 사퇴”라고 밝혔다.

오 시장은 최근 각종 외부 행사에 불참했다. 지난 14일 연가를 내는가 하면 15일 국회의원 선거일에는 투표 모습을 언론에 공개하는 여느 자치단체장들과 달리 비공개로 투표했다. 또 20일로 예정됐던 기자들과의 만남까지 취소하자 일각에서는 건강 이상설이 나오기도 했다.

또 일부에서는 지난 4ㆍ15 총선에서 부산지역 민주당 참패 원인으로 ‘오 시장의 실정’이 가장 비중이 높았다는 시민단체들의 설문조사 내용을 근거로, 정치적 부담이 컸다는 말도 나왔지만 뜻밖의 성추행 인정과 사퇴로 이어졌다.

오 시장 사태와 관련해 사단법인 부산성폭력상담소는 성명을 내고 “그간 오 시장이 보여 온 낮은 성인지감수성과 성찰 없는 태도는 언제든 성폭력 사건으로 불거질 수 있었다”면서 “사퇴로만 끝나서는 안 되고 피해자 보호와 회복을 위한 최선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부산=권경훈 기자 werth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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