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긴급재난지원금에 선심성 흔적 엿보여
포퓰리즘은 좌파, 중도, 우파도 모두 가능
한국사회는 포퓰리즘의 덫에 걸린 상태
코로나19로 휴업한 서울 남대문 시장 상가. 배우한 기자

“건강보험료를 몇 달째 못 내고 있어요. 주방장 내보내고 제 손으로 닭을 튀기는데도 지난달 적자가 200만원입니다. 장사를 아예 접고 싶지만 그러면 임대료 400만원이 매월 손실로 발생하게 되니….” 후배랑 오랜 만에 들른 치맥 가게 사장님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착한 임대인? 없어요. 정부가 몇 달만이라도 임차대료 절반을 내어 줬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을 당분간 면제시켜 주든지…, 이 동네 가게들, 슈퍼마켓과 빵집 빼고는 다 죽게 생겼어요.”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해서도 불만이다. “국민 하위 70% 중에는 그 돈이 절실하지 않은 사람도 많을걸요. 인기영합주의 아닌가요?” 우리 빼고는 손님이라곤 없었다.

하긴 일본 정부도 긴급지원금을 준다. 하지만 신청자가 이번 재난 때문에 소득이 감소한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여당 주도로 국민 70%에게 현금 지원을 약속하는 것은 누가 봐도 ‘선심성’ 냄새가 난다. 그런데 야당도 이에 질세라 ‘모든 국민에게 1인당 50만원 즉각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포퓰리즘, 갑자기 그 정체가 궁금해졌다.

“포퓰리즘은 하나의 언어다.” 마이클 카진 조지타운대 교수의 말이다. 사고는 언어를 통해 그 구조가 완성되고 표현된다. 따라서 포퓰리즘은 일종의 사고 체계이자 소통 방식인 셈이다. 사고의 핵심은 편가르기이고 행동은 소수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한다. 포퓰리스트들은 대중과 엘리트 사이의 적대감을 숙주 삼아 대중의 편에 서서 분노의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하지만 대중을 끝내는 죽게 만드는 것도 이들이다. 이념은 상관없다. 좌파나 중도 혹은 우파 등 다양한 포퓰리즘이 존재하는 이유다.

문제는 이들이 대중을 ‘고귀한 집단’으로 포장하고 소수 기득권층은 ‘자기 잇속만 차리는 속물’로 매도하는 데서 발생한다. 서구의 상류층이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기부나 사회공헌을 생존 전략으로 채택해 왔다면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한국 지배 엘리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걸음마 단계다. 여기에 정치권의 편가르기 광풍이 몰아치면 이들이 그나마 틔우려던 사회 통합의 싹마저 얼어 죽게 된다. 한국 사회는 포퓰리즘에 의해 진영논리가 강화되고 다시 계층 갈등이 심화되는 ‘포퓰리즘의 덫’에 걸린 모습이다.

정치평론가 존 주디스는 포퓰리스트를 좌파와 우파로 나눠 설명한다. 좌파가 사회 상층부에 총구를 겨눈다면 우파는 제3의 그룹, 예를 들어 특정 국가나 이민자를 1차 타깃으로 정하고 이들과 연대한 국내 엘리트 집단을 함께 공격한다. 미국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나 스페인 포데모스의 ‘위험한 남자’ 파블로 이글레시아스가 좌파의 대표라면 우파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프랑스 국민전선의 설립자 장마리 르펜을 들 수 있다. 좌파의 투쟁 구도가 양자적(dyadic)이라면 우파는 삼자적(triadic)인 셈이다.

포퓰리즘을 사회악으로 볼 수만은 없다. 순기능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정치 시스템이 국민 다수의 문제를 간과한다면 포퓰리스트가 앞장서서 경보 시그널을 보낸다. 그 과정에서 불만을 가진 대중은 타협하지 않는 정치 엘리트에 대항하여 진지전에 돌입한다. 그 결과 시차를 두고 상당수 포퓰리즘 공약들을 제도권에 흡수시키는 성과를 보이기도 한다.

포퓰리스트들은 법과 제도 혹은 관행을 무시하는 경향이 짙다. 자신의 카리스마와 이단자 매력을 부각시키기 위해 지지 세력에 트윗을 날리며 감성적인 어필을 계속한다. 전쟁을 일으키거나 국회를 해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파시스트와는 다르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고집하자니 경제가 울고, 당장 경제를 살리자니 코로나 확산이 두렵다. 정부의 고민이 깊은 이유다. 재난 취약계층과 피해 산업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살려 내면서도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절실한 시점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